등록 : 2011.09.15 11:33
수정 : 2011.09.15 11:33
[매거진 esc] 밥스토리-밥알! 톡톡!
1996년 1월, 나름 보람차고 지긋지긋한 군 생활이 2개월여 남았을 때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한다는 말년, 여유롭고 따분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혹한기 훈련에 열외 없이 전 대원이 참석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 전해 가을에 부임한 깐깐한 대대장이 정당한 이유 없는 혹한기 훈련 열외자를 최소화하라는 서릿발 같은 명령을 내린 것이다.
헉! 군 생활 말년에 갑자기 캄캄한 절벽을 만난 기분이라니. 훈련 나가서 먹어야 하는 밥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동식 취사기로 하는 떡밥에는 제대를 앞둔 시점까지도 적응을 못하고 있었기에, 숙영지의 맹렬한 추위보다 ‘떡밥’으로 견뎌야 하는 상황이 더 짜증났다. 나는 떡인지 밥인지 도저히 구별이 안 되는 이 정체불명의 괴물이 대한민국 육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주범이라고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어찌어찌 시간은 흘러, 매서운 강바람이 몰아치는 홍천 강가에 숙영지를 꾸리고 있는 처량한 내 모습! 그런데 화불단행이라고 날벼락은 한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워낙 인원이 적은 관계로 보초근무까지 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 하늘이시여~. 그래도 후임들의 배려(?)로 간부용 천막의 말번 불침번을 배정받았다.
새벽녘에 일어나 어슬렁어슬렁 간부 천막으로 기어들어갔더니 심사가 뒤틀리는 흔적을 발견했다. 간부들이 지난밤 향어회와 매운탕으로 술판을 벌인 듯했다. ‘말년 병장도 부르면 어디가 덧나냐!’ 간부 중에는 성격 좋고 화끈한 하사관 소대장이 뒤척이며 일어나더니 먹다 남은 매운탕을 난로에 올려놓고 한마디 하는 것이다. “잘 봐라!” 여기서 ‘잘 봐라’ 소리는 잘 데워 적당히 먹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들라는 소리였다.
비몽사몽간에 끓는 매운탕을 내려놓지 않고 ‘잘 보고’ 만 있노라니, 냄비 바닥이 보일 정도로 졸아들기 시작했다. 기상 시간에 맞춰 일어난 간부들은 다 졸아버린 향어매운탕을 발견했고, 나에게 원성과 욕설을 쏟아부었지만 어쩔 테냐? 산전수전 다 겪은 말년 병장의 포스로 살포시 무시해주었다. 비난은 아침식사 시간까지 이어졌다. 추운 강가에서 예의 떡밥을 매운탕에 말아서 한끼 해결하려 했던 간부들은 자신의 눈앞에 닥친 작은 시련 앞에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급기야 소대장은 걸쭉한 욕설과 함께 떡밥을 먹던 숟가락을 집어던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훈련장에서 사사로운 취사 및 난방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던 터이고, 두어달 뒤면 전역하는 사람이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도 않을 테고, 어쩌나 당신들이 참아야지….
하여간 무사히 군 생활을 마쳤고, 가끔은 아주 가끔은 그 시절을 흐뭇하게 되새겨 보기도 한다.
김영락/서울 관악구 봉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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