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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낮 추자항에서 20분 정도 배를 타고 도착한 직구도 앞바다에서 esc팀이 낚시를 하고 있다. 그 앞으로 팀원들을 태우고 온 나바론호가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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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 욕심 지나쳤나?
이병학 기자 → 월척 꿈 깨고 나니 팽팽한 손맛 일품이네
“추자도? 진짜 낚시 천국이지. 갯바위든, 주변 무인도든, 방파제든 사철 손맛을 볼 수 있는 곳이거든.”
제주항에서 추자도행 배를 타고 흔들리며 두근거리며, 앞서 만난 30년 경력의 한 바다낚시 전문가의 경험담을 떠올렸다. 퍼덕이며 끌려나오는 대어를 꿈꿨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준비되지 않은 ‘생초보’의 대어를 향한 꿈은 현장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적’을 알기는커녕 총 쏘는 법도 모르고 적진에 뛰어든 꼴이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상태로 적진으로 돌진했다. 바다낚시 경험? 갯바위·무인도 낚시 완전 생초보. 낚시 채비? 채비 일체를 현장에서 대여한다. 낚시 포인트? 당일 현장에서 듣고 결정한다. 목표 어종? 나오는 대로 잡는다.
추자항에 도착해서야, ‘많이도 필요 없어, 묵직한 놈 몇 마리만!’ 하는 막연한 희망사항이 어긋나고 있다는 느낌이 왔다. ‘구름이 낄 때 조황이 좋다’고 했는데, 기상예보와 달리 하늘은 맑고 쾌청했다.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해야 입질이 좋아진다’고 했으나, 추석 지났는데도 한여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푹푹 찌는 무더위 한복판이었다.
추자도에서 240년째 조상 대대로 이어 산다는, 조업 경력 30년의 박종혁(49)씨는 이미 무더위에 지쳐 늘어진, 바다낚시 생초보의 기를 팍 꺾어주었다. “흐흐, 대물 욕심 거두시고 마릿수로 잔손맛이나 느껴보시죠.” 모르면 더 용감한 법. 선장의 조언에도 아랑곳없이 애써 대물 희망을 부풀리며 상추자도 북서쪽의 직구도로 향했다. 깎아지른 바위절벽은 아름다웠고, 바다는 짙푸른 빛깔로 ‘생초보’ 일행을 반겼다. 절벽 밑에서 찰싹이는 잔잔한 파도는 어떻게든 ‘묵직한 놈 몇 마리’ 건져보려는 일행의 의욕을 선선히 받아주는 듯했다.
결전 각오 다진 장수들, 졸들의 ‘인해전술’에 힘 빠지고
크릴새우를 통째로 끼운 바늘 두개가 달린 민장대를 휘두르자마자, 낚싯대 끝이 크게 휘어지며 입질이 왔다. 옳거니, 대물이닷! 잡아채자, 길이 10㎝가량의 ‘용치놀래기’ 한 마리가 올라왔다. 실망했지만, 손맛은 짜릿했다. 이어진 잦은 입질은 초보자의 대물 욕망을 잦아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울긋불긋한 빛깔의 용치놀래기들 세상이었다. 박 선장의 예측은 정확했다. 놀래기·돌돔·자리돔 등이 미끼를 갈아끼우기가 바쁠 정도로 딸려나왔다. 대가 휠 때마다 느껴지는 자연산 활어의 몸부림은 생초보를 정신 못 차리게 했다.
그러나 달리 보면, 결전의 각오로 전장에 뛰어든 장수들(일행)이, 줄기차게 달려드는 졸들을 상대하느라 쉽게 지쳐가는 형국이었다. 크릴새우는 낚싯바늘에 끼워 던지자마자 달려드는 놈들에게 작살이 났다. 놈들에게 정확히 20초 간격으로 크릴새우 두세 마리씩을 끼워 입에 넣어줘야 했다. 고역이었다. 다시 대물 욕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상추자도 나바론 절벽 부근 갯바위로 옮겨 보기로 했다.
나바론 절벽 옆 용둠벙 너머의 절벽에서 다시 크릴새우를 끼워 던졌다. 여긴 돌돔들의 세상이었다. 물속에서 새우를 던져주길 기다리는 어린 돌돔들이 득실거렸다. 석양에 붉은빛을 더해 가는 나바론 절벽의 경치는 황홀했고 짭짤한 손맛은 저물도록 이어졌다. 대어의 꿈도 그렇게 저물어 갔다.
이른 가을, 무모하게 대든 초보의 낚시 도전. 대어를 낚겠다는 계획은 공부 부족, 정보 부족에 장비 부실, 시간 제약 등으로 보기 좋게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낚싯대에 전해져 오는 팽팽한 손맛은 다음을 기약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추자도=글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쥐치 낚고 내가 낚였다
이정연 기자 → 추자도에서 낚시에 대한 편견 버리다
어렸을 적 좋아하지 않았던 게 몇 가지 있다. 주말 낮, 재미있는 드라마 재방송 시청을 방해하는 징하게 긴 야구 경기와 마찬가지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낚시였다. 온 가족이 바다는 아니지만, 민물낚시에 나설 때면 시무룩한 표정으로 따라나서곤 했다. “조용히 해! 고기 도망간다!” 조금이라도 시끌벅적해질라치면 꼭 어른들의 혼찌검이 돌아왔다. 그들은 또다시 정말 잔잔하기만 한 수면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낚시 따위가 정말 재미가 있기는 한 거야?! 짧은 1박2일 바다낚시 성지순례를 마친 지금, 회개했다. 그동안 낚시를 ‘낚시 따위’라 여기며 무시했던 지난날을 용서하소서. 지금 알고 난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지난 세월 낚시를 그리 매도하지 않았을 게다.
이 모든 인식의 전환은 지난 16일 오후 2시부터 2시간 반 정도 경험한 무인도 직구도에서의 갯바위 낚시 덕분이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민낚싯대가 아닌 릴낚싯대로 시작했다. 줄을 감았다 풀었다 해야 하는 게 처음에는 번거로웠다. 줄을 풀 때와 감을 때 릴 손잡이를 돌리는 방향조차 헛갈렸으니! 그러나 20여분 뒤 조금 익숙해지고 나니 민낚싯대보다 ‘맛’이 있었다. 무엇보다 고기가 미끼를 물고 나서 도망치려 힘껏 치고 나갈 때, 역회전 방지 레버를 풀어놓아 줄이 소리를 내며 스르륵 풀려 나가자 흥분 지수가 높아졌다. 이 찰나를 놓치지 않고 줄을 감아올리는 순간 물속 고기와 실랑이가 벌어졌다. 결국 낚싯바늘을 빼내지 못하고 뭍으로 나온 고기를 만났을 때의 그 희열. 아, 이 맛이구나!
1시간 정도 지나 민낚싯대로 바꿔 들었다. 좀더 공격적으로 나가보자는 계산. 지겹게 올라온 용치놀래기 말고, 다른 고기도 좀 구경해보자는 욕심이 고개를 내밀었다. 가만히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있는 것은 체질에 맞지 않았다. 정공 낚시법은 알지도 못했기에 그냥 내키는 대로 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미끼 물고 도망치려는 그놈 잡아 당기는 그 맛!
우선 낚싯대를 가만두지 않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바닷물이 워낙 깨끗한 덕에 모여드는 고기 종류가 훤히 보였다. 용치놀래기가 모여들자 낚싯대를 움직였다. 그렇게 다른 녀석들을 기다리길 30여분째, 미끼 주변에는 검은 줄무늬 선명한 작은 돌돔들이 꼬였고 다른 얼굴을 기대하는 마음은 부풀었다. 그 순간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입질이 왔다. 용치놀래기가 제아무리 용써도 안 나올 강한 힘이 느껴졌다. 앞서 몇 마리의 입질이 왔으나 미끼만 먹고 내뺀 녀석들을 경험하고 난 뒤라 힘이 센 녀석이라는 판단이 들자 힘껏 낚싯대를 들어올려 갯바위에 패대기를 쳤다. 일부러 패대기를 친 것은 아니었지만…. 바늘에 걸린 고기가 도망치려고 낚싯줄을 워낙 팽팽하게 당긴 탓이었다. 이놈 봐라.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다른 놈이 올라왔다. 바로 쥐치였다. 주둥이가 길고 몸통이 납작한 흙빛 쥐치는 그렇게 뭍으로 올라왔다. 크기는 자그마치(첫 바다낚시인 것을 참작해 달라) 25㎝! 누가 뭐래도 스스로는 ‘월척’이라 여기고 싶다. 자리돔, 줄돔 등이 줄줄이 올라왔지만 이날 낚시를 통틀어 가장 큰 녀석은 쥐치, 이놈이었다!
낚시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지 이틀이 지났지만, 그 손맛이 아직 아릿하다. 11월부터 추자도에서는 제법 큰 감성돔이 잘 잡힌단다. ‘월척, 한 번 더?’ 추자도는 이렇게 도시인 한 명을 낚았다.
추자도=글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쫙쫙 당기는 손맛이 말이지…
김성환 기자 → 미끼만 남은 낚싯바늘에서 인생을 깨닫다
“일단 쭉 던져. 그리고 허리띠 위에 낚싯대를 푹 꽂는 거지. 입질이 오잖아? 그러면 쫙쫙 당기는 그 손맛이란…캬!”
나에게 낚시를 향한 ‘환상’을 불어넣은 이는 수업시간마다 11자로 두 다리를 벌린 채 낚시 이야기에 정열을 쏟아부었던 고등학교 영어선생님이었다. 그렇게 한때 턱 괴고 빠져들었던 낚시의 세계는 몇 년 전 제주 우도 앞바다의 첫 경험 뒤 곧바로 잿빛으로 바뀌었다. 물고기는커녕 어깨 빠지고 손목만 쑤시던 그 지루하고 고통스럽던 순간들로 말이다.
‘낚시 기피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지 얼마 안 돼 떠난 추자도 낚시는 가는 내내 망설임으로 가득했다. esc팀장의 침 튀기는 낚시 예찬론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저 무의식중에 가련한 내 어깨와 손목을 어루만질 뿐….
푸른빛 제주도를 가차없이 등지고 추자도에 도착한 16일 낮. 팀원들을 태운 나바론호가 파란 물살을 가르며 직구도를 향했다. 옅게 깔린 바다안개를 가르고 등장한 직구도의 우둘투둘한 모습에 눈이 즐거워졌다. 선장의 지시에 따라 갯바위에 자리를 잡았다. 4~5m 높이의 갯바위에서 내려다본 에메랄드빛 바닷속은 물고기떼가 보일 정도로 맑았다.
마음 비우고 낚싯줄을 담갔다…부르르 느낌이 뭔가 다르다
힘차게 낚싯대를 쭉 뽑았다. 꼬리를 딴 크릴을 낚싯바늘에 끼워 물속에 던졌다. 너무 깊이 넣었더니, 팽팽했던 낚싯줄이 금세 구불구불해진다. 바다 밑까지 미끼가 닿았나 보다. 낚싯대를 들어올려 각도를 잡았다. 벌써 손목이 시큰. 자세를 잡기가 무섭게 부르르~ 격한 움직임이 낚싯대를 흔들었다. 오호라, 벌써 왔구나!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낚싯대를 들어올렸더니 뜯겨나간 크릴 한 점만 쓸쓸히 나부끼고 있었다. 역시 세상엔 쉬운 거 하나 없구나. 첫술에 배부르냐며 심호흡하고 다시 정성스레 미끼를 꽂았다. 그러길 몇 번. 물고기에게 미끼만 낚이는 일이 반복된다. “오오~!” 주변에서는 벌써 물고기 낚은 환호성이 들렸다. 이 초조한 기분은 뭐지. 신경질 내며 낚싯대를 걷어올렸다. 아앗. 낚싯바늘 하나가 손가락에, 다른 하나는 청바지에 보기 좋게 꽂혔다. 물고기는 물지 않고 나를 무는 낚싯바늘을 원망한다.
다시 마음을 비우고 낚싯줄을 담갔다. 부르르르르. 낚싯줄이 팽팽해졌다. 뭔가 느낌이 다르다. 그래그래. 침착하게. 흔들리던 낚싯대가 핑핑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으쌰! 미끼를 꽉 문 붉은 용치놀래기가 튀어올랐다! 낚시 인생의 첫 수확이다.
신기하게도 잡히기 시작하니 줄지어 잡힌다. 영어선생님을 떠올리며 허리춤에 낚싯대를 살짝 끼워봤다. 자신감이 붙어 난이도가 좀 있는 릴낚싯대에 도전했다. 망망대해를 향해 긴 포물선을 그리던 낚싯줄은 발밑 바위틈으로 떨어졌다. 초조하게 감아올린 낚싯줄은 엉망진창이 됐다. 주저앉아 꼬인 줄을 풀었다. 꼬여도 한참 꼬였다. 서두르지 말지어니…. 참회하는 마음으로 낚시의 교훈을 되새긴다.
추자도의 자연은 초보 낚시꾼에게도 ‘어획의 기쁨’을 나눠줄 만큼 넉넉했다. ‘낚시 기피자’가 ‘낚시에 우호적인 인사’로 전향할 만큼 말이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쫙쫙 당기는 그 손맛이 말이지….”
추자도=글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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