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9.22 11:08
수정 : 2011.09.2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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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도 최고봉인 하추자도의 돈대산(164m)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신양항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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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부서지는 바위섬들의 군무…‘나바론 절벽’ 붉게 물든 노을도 인상적
추자도는 꾼들에게만 ‘꿈의 섬’이 아니다. 손맛에 빠진 낚시꾼도, 걷는 맛에 길들여진 올레꾼도, 빼어난 섬 경치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며 탄성을 지른다. 아기자기하면서도 웅장한 풍광을 두루 갖췄다. 차를 타고 언덕을 넘을 때, 발품 팔며 산굽이를 돌 때 아담한 포구들과 깎아지른 바위절벽, 푸른 물결 틈틈이 솟은 바위섬들이 시시각각 새로 씻은 얼굴을 보여준다.
추자도 경치 중 으뜸은 산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전망이다. “쾌청한 날엔 요 자리서 한라산과 완도·진도까지 다 보인단게요.” 지난 17일 추자도 최고봉인 하추자도 돈대산(164m) 정상. 주민 이태재(56)씨가 횡간도(비께니·빗갱이) 쪽과 사자섬(수덕이·수덕도) 너머를 가리켰다.
연무에 가려 한라산은 보이지 않았지만, 올망졸망 솟고 누운 섬들이 색다른 그림을 펼쳐 보인다. 진도군 조도의 섬무리와 다르고, 통영 미륵산 전망과도 다른 느낌을 주는 건, 많은 섬들이 나무 하나 없는 바위섬(여)이기 때문이다. 돈대산은 상추자도 등대전망대와 함께 섬 주변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추자도의 양대 전망대로 꼽힌다.
수직 절벽으로 이뤄진 부속 섬들의 풍광도 아름답다. 멀리서 보면 아담해 보이는 바위섬들이, 배를 타고 가까이 가면 어느샌가 아득한 절벽·기암괴석들이 되어 눈앞을 가로막는다. 수덕도도 그렇고, 직구도도 그렇다. 상추자도의 감성돔 갯바위낚시 포인트로 이름 높은 이른바 ‘나바론 절벽’도 볼만하다. 석양 무렵 절벽 전체가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추자도엔 낚시꾼들이 임의로 붙인 지명이 꽤 있다. 나바론 절벽(큰산·대왕산)이나 사자섬(수덕이) 등이 그런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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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항에서 주민들이 불을 밝힌 채 그물의 조기를 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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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 손맛 앞서 기암괴석 절경에 탄성
추자도는 상·하추자도와 횡간도, 추포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이뤄졌다. 물이 빠지면 모습을 드러내는 작은 바위섬들까지 포함하면 108개를 헤아린다는 섬무리다. 제주항에서 북서쪽으로 45㎞ 거리. 제주특별자치도에 속하지만 주민들의 말투, 관습, 음식 맛이 전남 식이다.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도 전남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고려 때는 영암, 조선시대엔 완도 등에 속했다가, 일제강점기(1910년)에 제주도로 편입됐다.
주민 2500여명 가운데 3분의 2가, 크기는 더 작은 상추자도(하추자도의 3분의 1)에 모여 산다. 태풍이 불 때 남동쪽에 놓인 크고 높은 섬 하추자도가 상추자도의 바람막이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상·하추자도는 다리로 연결돼 있다. 상추자도의 중심 포구인 추자항의 옛 이름은 당포였다. 뒷산 중턱에 최영 장군 사당이 있다.(사당을 복원하기 전엔 산신당이 있었다.) 고려 공민왕 때 탐라에서 일어난 난을 진압하러 가던 최영 장군이 풍랑을 만나 후풍도(추자도)에 들렀다가, 주민들에게 그물 짜는 기술을 가르쳐 줬다고 한다. 주민들이 이를 기려 해마다 제를 올린다.
추자도를 거쳐간 이 가운데, 다산 정약용의 맏형인 정약현의 딸 정난주(정마리아)와 그의 아들 황경헌 이야기도 흥미롭다. 천주교 신자였던 정난주는 신유사옥 때 남편(황사영)을 잃고(순교) 자신은 탐라도로 유배돼 관노로 살았다. 유배 갈 때 2살 난 아들(황경헌)을 추자도 예초리 신대(센데·물살 센 곳) 해변의 물쌩이끝 바위에 내려놓았는데, 주민이 발견해 키웠다고 한다. 황경헌의 묘가 예초리 산자락에 있다.
일출은 쇠머리에서, 낙조는 직구도에서
추자도 상·하도의 주요 볼거리들은 지난해 조성된 추자도 올레(18-1 코스) 구간에 대부분 포함돼 있다. 상추자도 추자항에서 출발해 상추자도·하추자도 산 능선길과 해안길을 돌아 다시 추자항으로 돌아오는 17.7㎞, 7시간 안팎이 걸리는 걷기 코스다. 효자각인 순효각, 박씨 입향조 제각인 박씨처사각, 나바론 절벽 정상과 등대전망대, 돈대산 정상과 황경헌의 묘, 억발장사의 전설이 깃든 엄바위장승 등을 두루 거친다. 추자도의 대표적 풍광을 뽑아 1960년대에 이름붙인 우두(쇠머리)일출·직구낙조·추포어화 등 추자 10경도 볼거리다.
추자도 여행의 즐거움이 싱싱하고 풍성한 해산물에 있다는 이들도 많다. “조기·멸치·삼치 등 거친 듯하면서도 싱싱한 원재료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기철이 시작된 추자도엔 요즘 근래 보기 드문 참조기 풍년이 들었다. 그물을 털던 어민이 말했다. “이렇게 이른 시기에, 이렇게 밤낮없이 조기가 많이 잡히는 건 근래 없던 일입니다.” 추자도는 본디 조기보다는 삼치잡이로 이름을 떨쳤던 섬이다. 일제강점기부터 70년대 초까지 삼치 파시가 열려 성황을 이뤘다. 예전 같지는 않아도 삼치잡이는 지금도 이어진다. 길이 1m 안팎에 이르는 대형 삼치들을 채낚기로 잡는다.
추자도=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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