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0.06 15:33
수정 : 2011.10.0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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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없는 일상 속에서 내 삶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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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첫 책 ‘굿바이, 게으름’으로 20만부 베스트셀러 작가 된 문요한
책쓰기도 꿈만 같은데 첫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건 왕대박 꿈 같은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꿈을 이뤄낸 이가 있다. 문요한(43·정신과 전문의·사진)씨다. 그는 2007년 <굿바이, 게으름>이라는 첫 책을 냈고 20만부가 넘게 팔리면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게으름이라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 책이었다.
가 지난달 30일 그와 만났다.
책을 내기 전까지의 그의 삶은 지루할 정도로 ‘모범생’ 그 자체였다. 대학에 갈 때도 가고 싶은 학과가 없어 부모님 뜻대로 의대에 진학했다. “예정된 삶, 주어진 삶만 살아온 거죠.” 그렇게 이끌려 온 ‘의사의 길’에서 고민과 의심이 내내 끊이지 않았다. “6년에 마치는 의대를 8년 동안 다녔어요. 이 길이 나의 길인가 고민을 하면서 2년 정도 휴학을 했죠. 정신과를 택한 것도 이런 저를 분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고요.”
막다른 길에 다다른 모범인생…내 삶 살아보자,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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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요한(43·정신과 전문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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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군의관 복무를 마치고, 의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된 그는, 우연히 선배가 운영하던 개인병원을 물려받았다. 장사는 잘됐지만 너무 힘들었다. “계속 말라죽어 가는 느낌이었죠. 내 길이 아닌 거 같다, 이렇게 살면 답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2004년 초 병원을 접은 그는 문득 결심을 하게 됐다. “‘3년 정도는 내가 원하는 삶을 좀 살아보자’라고 정했죠. 병원을 정리하고 석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하면서 명상 프로그램 등을 기웃거렸어요.”
모든 것을 내려놓은 그는 정신과 상담과 리더십 연마를 한데 모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길이 정해지니 다시 ‘월급 의사’로 일에 나설 수 있었고, 생각을 정리하려고 본격적으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의 1기 연구원으로 들어가 책 쓰기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연구원 활동을 하기 전 모아둔 자료를 들고 본격적으로 책 쓰기에 빠져들었다. 일도 다시 그만뒀다. 온종일 매달렸더니 한달 만에 초고가 나왔다. 주변 사람들은 초고를 보고 “너무 논문 같다”고 말했다.
“고쳐 쓰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시간은 가는데 답답하게 진행은 안 되고….” 고민 끝에 나온 두 번째 원고는 편지글 형태였다. “친한 친구 가운데 당시 직업적인 성취를 이루더니 방탕한 삶에 빠졌던 친구가 있었어요. 제가 조언을 해도 잘 받아들이지 않더라고요. 그 친구가 불현듯 생각나, 그 친구에게 이야기를 한다 생각하고 글을 써내려갔죠.” 여전히 이상했다. 서너달 퇴고를 거듭한 뒤에야 출판사에 보낼 만해졌다. 출판사의 선택을 받는 건,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인터넷·이메일을 통해 올린 원고에 즉각 반응이 왔기 때문이다. “여러 군데 보낼 생각을 하고 처음 보낸 4~5개 출판사 중에서 다행히도 관심을 갖고 연락을 해온 곳이 있었죠. 아무래도 의사라는 직업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아요.”
첫 책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주제를 잡는 것이었다. “원래 처음 쓰려고 했던 건 ‘휴먼 에너지’가 소재였어요. 인간의 정신 에너지에 대한 책.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고 너무 거창하죠. 나중에야 더 구체화해서 나름 생각한 게 ‘게으름’이었죠.” 사실 그는 스스로 글솜씨가 뛰어나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좌절의 순간이 많았다고 한다. “원래 글을 즐겨 쓰지도 않았어요. 서른살부터는 책도 잘 안 읽고, 술 먹고 즉각적인 쾌감을 추구했죠.”
글쓰기에 관심을 다시 갖게 된 건 2003년 아는 이의 제안으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내 마음속 비타민’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쓰면서부터였다. “일을 그만두고 의료계 전문지인 <청년의사>에 수필 응모를 했는데 3년 내리 떨어졌어요. 아, 내가 글쓰기 인연이 아니다, 재능이 아니다 하는 생각을 이때 했죠.” 스스로 정서적인 글쓰기에는 소질이 없다고 느낀 그는 이때부터 나만의 글쓰기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책 써서 삶 바뀐 것 아니라 삶 바뀌어서 책 쓴 것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면서 자연스레 책 쓰기로 이어졌다. “내 인생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던 때는 언제일까 생각하며 제 과거를 돌아봤어요. 생각해보니 제가 중3, 고3 올라갔을 때 친한 10여명의 친구들에게 ‘열심히 공부하자’는 격려 편지를 썼더라고요.” 고2 때에는 다른 곳에서 전학 와 적응 못하던 짝을 격려하려고, 그 친구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소설을 쓰기도 했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흉내 낸 소설이었는데, 그때도 뭘 바라지도 않고 일주일 내내 몰입해서 썼었죠.”
정신과 의사라는 전문직 덕에 책 내기가 더 수월했던 건 아닐까. 그는 여동생 이야기를 꺼냈다. “제 동생은 쌍둥이 키우는 엄마인데 책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육아 카페 활동을 하고, 엄마들끼리 모임을 하면서 받은 도움을 모아서 다른 쌍둥이 엄마와 책을 쓰고 있어요. 평범한 주부인 제 동생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전문성이 직업에 국한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얼마나 깊이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 아닐까요?” 결국 전문성은 자격증으로 정해지기보다는 관심과 경험의 깊이에서 오는 차이라는 것이다.
첫 책 내기를 꿈꾸는 이들에게 그는 “작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솔직히 내가 책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심리적인 장벽이 진짜 큽니다. 준비되지 않았는데, 내가 책을 쓸 수 있을까? 전문성을 가지고 쌓아나가야 하는 거 아닐까? 조건들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미루게 되는데, 제 얄팍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전문가라 책을 쓰기보다는 책을 써서 전문가가 되는 마음가짐이 필요해요.”
그는 책을 썼기 때문에 삶이 바뀌었다기보다는, 삶이 바뀌었기 때문에 책을 쓴 것 같다고 말했다. 생각에 갇혀 있던 내용들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 확인할 수 없었던 삶의 축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독자들로부터 첫 책에 대한 피드백이 와요. 그럴 때마다 제가 쓴 글이 누군가의 삶에 힘이 된다는 생각이 들죠. 그래서 보람이 있구나, 내가 잘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작은 부분이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 자체가 의미죠.” 점점 책 쓰기가 어려워진다는 그는 곧 세 번째 책을 내려는 준비를 한창 하고 있다.
글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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