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10.13 11:17 수정 : 2011.10.13 11:17

[esc] 밥스토리-밥알! 톡톡!

사춘기 중학생 시절엔 부모님의 친목계 날이 잔칫날이었다. 집에서 음식을 모두 장만했는데 친목계 날이면 아주머니들이 음식 만드느라 우리집이 시끌벅적했다.

스무명이 넘는 부부동반 친목계원들이 우리집에 모인 날이었다. 학교 끝나고 귀가하노라면 집 근처부터 아주머니들의 화통한 웃음소리가 들려 누가 보아도 잔칫집이었다. 그 웃음소리를 들으면서부터 왠지 모를 기대감이 부풀었다. 평소와 달리 맛있는 음식들이 큰 그릇에 가득 채워져 있어서, 내심 ‘언제쯤 저녁을 먹을까’ 하는 생각에 설레었다. 양념게장이며 잡채며 마카로니가 들어간 ‘사라다’(그땐 사라다였다)에, 음식 종류도 다양했다.

그런데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그날은 항상 배고픔과 기다림에 울음이 터져 나왔던 기억만 있다. 손님을 치르는 주인으로서 엄마는 너무 바쁘셨던 탓에 항상 언니들과 나는 뒷전이었기 때문이다. 손님이 올 때까지 모든 음식들은 그림의 떡이었고, 방에서 저녁 먹기만을 목 빠져라 기다리는 우리들은 엄마의 “밥 먹어!” 소리만 애타게 기다렸다.

하지만 친목계 인원만 파악할 줄 알았던 엄마는 우리를 결국 부르시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먼저 나가서 밥 달라고 했으면 됐는데 말이다. 사춘기 소녀의 감성으로는 도저히 먼저 밥 달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급기야 책상에 앉아 짝꿍에게 눈물 젖은 엽서를 썼다. 엽서 속 대답 없는 친구에게 엄마가 밥 먹으란 말을 안 한다며 눈물을 떨어뜨렸다.

결국 밥상을 치울 때쯤 짝꿍에게 엽서를 다 썼고, 내 눈물도 마를 그때쯤 엄마는 우릴 부르셨다. “나와서 밥 먹으라”고. 엄마는 바쁜데 안 불러도 알아서 나와서 먹지 왜 기다렸냐고 하신다. 안 챙겨줘서 엄마에게 화까지 났는데, 꾸중까지 들으니 또다시 핑 도는 눈물에 밥맛도 달아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눈물 젖은 저녁을 먹으며, 나중에 나는 ‘우리 딸에게 밥 꼭 잘 챙겨줄 거야’라고 다짐했다.(그땐 왜 그리 감수성도 예민하고 엉뚱한 생각만 했던지.) 다음날 나는 눈물 젖은 엽서를 등교하자마자 짝꿍에게 주었다. 답장에 하얀 쌀밥 한 그릇을 그림으로 그려주던 내 짝꿍! 그 뒤로 내 짝꿍은 밥에 맺힌 한을 풀어주겠다며 모든 인사를 “밥 먹었어?”로 대신했다. 등교하자마자 “밥 먹었어?”라고 인사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나에게 제일 먼저 “밥 먹자”고 말해주고, 하교할 때는 “저녁밥 꼭~ 먹고 자라”고 했다. 나에게 밥이란 짝꿍이 그려준 고봉밥과 그때 지었던 흐뭇한 미소다.

조진영/경기 남양주시 오남읍 오남리


그동안 ‘밥스토리-밥알! 톡톡!’에 사연을 보내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