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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0.20 11:10 수정 : 2011.11.09 17:03

올초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스티브 잡스(대통령 왼쪽) 등 아이티(IT)기업가들이 모인 자리.

이응일판 가상극화 ‘잡스의 재림’…비정한 현실 속 스티브 잡스 부활의 바람을 담아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최초의 아이폰 키노트(기조연설)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다시금 전율이 밀려오면서 그가 물 건너 캘리포니아에 멀쩡히 살아있을 것만 같다. 그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넘어 불안과 당혹을 느낀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애플 임원과 이사진이다. 슬픔은 짧고 탐욕은 영원하며, 개인은 나약하되 조직은 굳건한 법이라. 모든 영욕을 맛보고 편히 잠든 실리콘밸리의 해적 스티브 잡스를 놓아주지 않는 자들이 여기에 있다.

시초는 다음과 같았다. 2011년 2월19일, 미국 캘리포니아의 벤처기업인 존 도어의 집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정보통신업계의 거물들과 오찬을 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이 스티브 잡스에게 건강을 염려하자 누군가 농담으로 “스티브, 아이월드(i-world)에서 부활하시라”고 말했다. 이 말은 애플 이사진 중 누군가(그를 ‘X’라 칭한다)의 귀에 들어갔고, 그의 마음에 곧바로 뿌리내리며 자라기 시작했다.

2011년 8월24일, 잡스는 최고경영자직을 사임하고, 팀 쿡을 후임으로 지명했다. 떠나기 직전까지 잡스는 2012년 출시될 아이폰5의 프로젝트를 혼신을 다해 진두지휘했고, 향후 4년간 애플사의 로드맵을 작성해 조너선 아이브, 필 실러, 스콧 포스톨 등 핵심 간부들과 공유했다.

10월5일 오전, 애플 임원들은 잡스의 임종이 임박했다는 전화를 받는다. X는 팰로앨토로 달려가 그와 독대한다. “스티브, 자네는 그간 미래가치가 보이는 특허를 잔뜩 사들였어. 그중엔 이해할 수 없는 것들도 많은데… 미국국방과학연구소(DARPA)의 인공신경망 시뮬레이션 기술도 다수 있지. 이건 대체 뭔가?” 거의 말을 할 수 없는 지경의 잡스는 희미하게 웃을 뿐이었다.

“만약… 우리가 자네를 가상세계에서 부활시킨다면 어떻겠는가? 자네는 기술을 통해 영생을 얻을 수도 있어.” 잡스는 다시 희미한 미소를 짓다가 손가락을 들어 물리쳤다. “내버려 두세요. 그이는 떠날 준비가 됐어요.” 엿듣고 있던 부인 로린이 들어왔다. 그날 오후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사망 증명서에 기재된 사인은 오랜 전이성 췌장암에 의한 호흡 정지.

새 사옥인 애플 캠퍼스2의 조감도.

X의 어두운 음모…장의사의 입막기란 식은 죽 먹기

X는 이사회의 승인 없이 단독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로린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아인슈타인의 경우처럼, 천재의 뇌를 연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사에서 죽음과 세상의 순환을 설파한 잡스의 뜻에 따라 그를 놓아주길 고집했다. 잡스의 가냘픈 육신은 이틀 뒤 샌타클래라의 공동묘지에 몇몇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장되었다. 그러나 여러 명분과 돈다발로 영안실 관리자와 장의사의 입을 막기란 X에겐 식은 죽 먹기였다. 순환의 원리를 표현한 듯 거대한 원형 구조의 애플 신축 사옥. 그 지하 깊숙한 곳에는 문패 없는 방 안에 자그마한 액체질소 냉동보존 시설이 24시간 작동했다.

그 뒤 4년간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곶감 빼먹듯 잡스의 로드맵을 하나하나 실행하면 되니까. 먼저 그가 죽기 전날에 발표된 아이폰4S. 일부 정보기술(IT) 기자와 블로거들의 실망과 달리, 4S에 탑재된 대화형 음성인식기능 ‘시리’(Siri)는 멀티터치스크린에 이어 애플이 이룩한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진정한 혁명이다. 시리에게 “파주의 날씨는 어때?”라고 묻거나, “우리 딸 언제 오나 문자로 물어봐”라고 명령할 수 있다. 진짜로 대화하듯 말이다.(필자의 지난번 기사-2068년, 문명의 등불은 기계에게-의 예언이 대폭 앞당겨진 셈이다.)

2012년, 잡스의 진정한 유작인 아이폰5가 출시됐다. 시리는 한국어도 지원한다. 그리고 이제 애플티브이 3세대는 음성으로 조작한다. 대화형 음성 인터페이스의 응용범위는 무궁무진하다. 현재 아이폰 호환 오디오 기기가 유행하듯, 아이폰을 통해 음성으로 조작 가능한 가전기기-가습기, 로봇청소기, 보일러, 조명, 차고 개폐기 등등-가 쏟아져 나왔다.

2014년, 애플은 드디어 대화면의 일체형 애플티브이를 출시한다. 스티브가, 애플이 늘 그래 왔듯 이는 스마트티브이를 새롭게 정의하는 물건이 됐다. 음성인식에 시선인식, 동작인식이 덧붙여지고, 시리의 대화 능력도 진보해 농담도 곧잘 받아친다. 세계 각국에서 애플티브이 첫 출시를 기다리는 장사진이 화제가 되고, 티브이 앞에서 떠나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늘어만 갔다. 티브이 화면이 꺼져 있어도 시리는 카메라로 우리를 지켜보며(!) 대화를 주고받고, 명령에 따라 다른 가전기기를 조종하는 구실을 했다. 안타깝게도 가사도우미 일자리는 줄어만 갔다. 아이폰 위치정보 수집이 논란이 되었듯, 애플티브이가 사생활을 침해하는지 여부로 떠들썩해질 것이다. 이사진을 장악한 X는 조용한 대응을 주문한다. 그는 최고경영자 팀 쿡에게 꾸준히 인공신경망 관련 특허를 사들이고 대규모 서버 구축에 힘쓸 것을 주문한다.

르노의 콘셉트카.

가장 괴팍하고 포악한 새 CEO 임명하고 새 프로젝트 가동

2016년, 애플은 잡스의 마지막 곶감을 빼든다. 그가 생전에 자동차 기술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음을 알 만한 이는 안다. 그동안 발전한 내비게이션 기술과 휴먼 인터페이스, 인공지능 운전기술을 융합하여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아이카’(iCar). 심플하게 잘 빠진 알루미늄빛 동체 라인, 배터리가 닳으면 알아서 충전하는 전기자동차의 등장에 이제 세계 자동차업계가 긴장한다. 한국의 H자동차는 한동안 언론플레이로 애플을 깎아내리더니, 급기야 전기자동차 관련 특허를 두고 소송 전쟁을 벌인다. X는 막후 전략을 진두지휘한다. 하지만 위기를 느낀 다른 자동차 회사들의 협공을 받고, 자동차의 본고장 유럽 연방법원에서 패소하면서 애플은 카운터펀치를 맞는다.

2021년, 가게무샤(그림자 무사)와도 같은 잡스의 로드맵이 동이 난다. 그동안 애플은 혁신과 융합의 새 귀재를 찾고 찾았건만, 강호에 그만한 호걸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달이 차면 기울듯 조직은 나태해져만 간다. “우리는 ‘그 스티브’(the Steve)를 원한다.” 마침내 X는 자신의 오랜 복안을 끄집어내 흔들 날을 맞고 만다. 그는 비밀 이사회를 소집해 빠른 시일에 애플의 대규모 서버에 인공신경망 제반 기술을 융합해 스티브 잡스의 두뇌를 부활시키기로 의결한다. 온건한 팀 쿡을 쫓아내고 애플 간부 중 가장 잡스처럼 괴팍하고 ‘포악한’ 스콧 포스톨을 새 최고경영자로 임명한다. 포스톨은 애플을 장악하고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한 뒤 뇌과학, 인지과학, 인공지능 분야의 전문 인력을 대거 충원한다. 그리고…, 애플 원형 사옥 지하에 잠들어 있던 잡스의 두뇌가 드디어 봉인이 풀린다. 그의 뇌를 구성하는 1000억개의 신경세포를 뇌 스캐너로 읽어내 서버에서 재구성하는 작업…, 이것은 인류 역사상 또 하나의 바벨탑이자 조직의 명운을 건 작업이다. 프로젝트 코드명은 ‘아이브레인’(iBrain).

다음은 이사회 비밀 속기록에서 X가 한 말이다. “스티브 잡스 부활에 있어서, 우리는 그의 천재적 능력이 필요할 뿐이지 그가 진짜로 살아 돌아오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의 개인적 기억들을 모두 삭제하라.” 다음은 신경모듈 설계담당자의 개발일지에서 발췌. “(개발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융합적·창의적 사고를 관장하는 인간 전두엽의 회로를 구현하는 것. 이 부분은 결국 엄청난 경우의 수의 조합을 동시에 발생시키는 양자컴퓨터 모듈로 해결. 최적화된 성능은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영화 <아이로봇> 중.

씁쓸한 듯 자신만만한 그만의 미소…워즈니액은 다짐했다

마침내 2025년 가을, 스티브의 의식은 서버에 완전히 복구(restore)되었다. “너는 누구냐?”, “내 이름은, 나는… 스티브다.” X는 애초에 기대한 빼어난 신제품 창조 능력뿐 아니라, 진정으로 고뇌할 줄 아는 이 전기적 존재의 상품성에 주목한다. 아이브레인이 다소 유치하다는 내부 의견에 따라, 의식(consciousness)을 본뜬 아이콘(iCon)이란 이름을 이 존재에게 부여한다.

이미 인공지능 대중화의 시대가 도래해 경쟁사들의 로봇이 거리에 활개치고 다녔고, 애플은 부도 일보직전이었다. 다급한 애플은 10월의 연례 키노트에서 비밀병기를 발표하겠다며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날 X는 스콧 포스톨의 키노트를 전용 비행기 안에서 생중계로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오늘 인류 역사의 새로운 혁신, 진정으로 의식을 지닌 인공지능을 소개합니다. 그 이름은 아이콘.”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콘, 기분이 어때?”, “미칠 듯이 좋다(Insanely great).” 그리고 얼굴은 다르지만 씁쓸한 듯 자신만만한 그만의 미소. “이제 아이콘은 애플의 모든 신제품 개발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아이클라우드(iCloud) 서버와 통합되어 여러분에게 일대일 서비스를 제공할 것입니다.”

(클릭하면 확대)

이 광경을 티브이로 지켜본 이 중에는, 우리의 또다른 스티브-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액-가 있었다. 그도 이제 생의 황혼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는 비록 눈과 기억이 흐리지만, 곧바로 사태의 전말을 파악했다. 워즈니액은 노구를 이끌고 오래간만에 샌타클래라의 묘지를 찾았다. “스티브… 자네는 날 죽는 날까지 괴롭힐 작정이군. 내가 자네의 기억을 되찾아 주겠네. 해적으로 돌아가서 말이지….”

이 글은 사실과 허구가 마구마구 뒤섞인 ‘팩션’이오니 절대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응일/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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