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0.27 10:40
수정 : 2011.10.27 10:40
[esc] 사랑은 맛을 타고
지난해 봄이었다. 자장면을 1년에 한두번도 안 먹을 만큼 중국 음식을 좋아하지 않던 내가 중식 요리사와 연애를 시작했다. 서글서글한 눈매도 매력적이었지만 주방장을 상상하면 떠오르는 풍채와 달리 그의 손은 작고 마른 모습이라서 반했다.
그와 연애가 무르익을 무렵, 그가 해주는 요리를 먹고 싶어 그의 집에서 자장면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가볍게 거절당했다. 중국 요리의 핵심은 화력! 즉 불맛인데, 집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니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거기다 왜 하필 자장면이냐고, 식당에서 특별한 도미찜을 해주겠다고 했다. 주위 친구들도 말렸다. 집에서 해주는 요리에 실망하지 말고 자기들 데리고 가서 코스 요리를 먹자고 난리였다. 하지만 오직 나만을 위해 집에서 해주는 자장면이 먹고 싶었을 뿐! 결국 그는 억지춘향의 심정으로 사나흘 고민하더니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잔뜩 긴장한 그의 표정에 기대감은 더욱 높아졌다.
요리는 옆에서 구경하는 것도 맛이라고 했던가. 그가 날렵한 솜씨로 양파와 감자를 다듬어 단숨에 볶아낼 때, 팔목의 가느다란 힘줄이 꽤 멋있다고 느끼는 순간, 볶은 채소를 능숙하게 그릇에 담는 모습은 점점 더 나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미 내 머릿속 자장면의 맛은 세상 최고의 맛이 되고 있었다. 그는 이제 면만 삶아 건져내면 끝이라며 들어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몇 분이 지나 그가 자장면을 정성껏 담아 내왔다. 그는 내 눈치를 보며 심사평을 기다리는 학생 같았다.
그런데 이 자장면! 뭔가 이상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면발, 가늘게 꼬불거리는 면 뭉치!? 약간 불어난 라면 사리가 시커먼 자장 소스 속에 파묻혀 있었다. 라면에 자장 소스를 뿌린 건가? 아니면 혹시 짜파게티? 분명히 자장 소스를 만들었는데, 내가 자장면을 안 먹은 지 너무 오래돼서 신제품 면이 나왔나?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던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침묵 속에 시식이 끝나가고 자장면을 목으로 넘기는 내 표정이 점점 이상해져 갈 무렵, 그가 고백했다. “자기야, 미안해. 면을 깜박 잊고 안 챙겨 와서 짜파게티 면으로 했는데, 너무 삶아 버렸나봐.” 헉! 그랬던 것이다. 그것은 일품 자장 소스에 담긴 짜파게티 면이었다. 모든 사실을 알아버린 순간 다시 너무나 맛있는 자장면이 된 것은 당연한 일! 그는 내가 자장면을 아무런 토 달지 않고 먹어준 것에 지금까지 고마워하고 있다. 물론 나도 이상한 자장면을 만들고 너무 미안해하는 그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조은미/광주광역시 서구 금호동
조은미님은 사연 속의 중식 요리사와 11월6일 백년가약을 맺게 됐습니다.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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