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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동 모자 전문점 해츠온에서 가을·겨울 신상품 모자가 소비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모자 전문가들은 온라인숍보다는 실제 매장에서 모자를 써보고 구입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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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모자는 대비효과…큰 얼굴엔 넓은 챙, 화려한 옷엔 단색으로
시험기간 대학가는 모자의 바다다. 남녀 가릴 것 없이 ‘모자 장착 패션’에 돌입한다. 후줄근한 복학생도, 깔끔한 신입생도, 스타일에 목숨 거는 여학생도 모자 눌러쓰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모자는 무지갯빛이다. 없는 색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색상이 물결을 이룬다. 그런데 모양은 천편일률이다. 몽땅 다 야구모자다. 다 같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페도라라도 썼다간 왕따라도 당할 분위기다.
모자의 패션 심리 → 헌팅캡 쓴 모던 보이는 어디로?
모자는 얼굴에 가장 가까운 패션 아이템. 그래서 눈에 가장 잘 띈다. 모자는 모자로만 보이질 않고 쓰고 있는 사람과 하나로 인식된다고 한다. 이런 특징이 모자를 한국인으로부터 멀리 떼어놓았다. 개성을 두려워하고 어쩐지 부끄러워하는 이들에게 모자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안 감은 머리 감추기용 야구모자가 한국의 특징이 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지금 여기에 모자패션은 아직 멀었다.
그래도 꿋꿋하게 모자패션에 도전하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간다. 가리기용 모자와 너무 튀어 손가락질 받을까 저어하는 모자 사이에서 나만의 개성을 향해 정진하는 이들. 나를 드러내고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 늘어간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아직은 대다수가 모자를 어려워한다. 한국 길거리를 점령한 모자계의 제왕 야구모자는 모자패션의 최대 적이다. 멋보다 가리기에 치우친 모자가 야구모자니까. 톡톡 튀는 모자로 맵시 냈다간 ‘멋만 부린다’는 인상 받을까 걱정하는 게 일반적이다. 야구모자 외에도 50대 이상 숱 없는 아저씨들이 즐기는 중절모나, 운동하는 아주머니들이 쓰는 선캡 정도가 대세인 이유다.
이 모자들의 공통점은? 역시 드러내기보다는 가리기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 특히 젊은 여자가 야구모자 쓰면 십중팔구 듣는 말. “너 오늘 머리 안 감았구나?” 아니라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쌩얼’ 외출을 했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야구모자도 패션이라고? 국내 야구 인기가 야구모자 유행으로 이어졌다고? 그런데도 야구모자에 박힌 로고가 모조리 미국 메이저리그 팀의 것인 까닭은 뭘까.
외국인들은 야구모자 일색의 대한민국 거리를 의아해한다. 중국인 유학생 예샤오핑(29)은 “한국 사람들은 웬 야구모자를 그렇게들 많이 쓰냐”고 물었다. “중국에 있을 때도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딱 알아볼 수 있었어요. 야구모자 쓰고 베이징 거리 돌아다니는 사람은 딱 한국 사람이던데요.”
우리나라에서 모자가 늘 가리기 용도였던 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모자는 당당히 패션의 중요한 요소로 등장했다.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을 찾아보라. 이들을 묘사한 그림이나 사진을 보면 모자가 거의 빠지지 않는다. 모던 보이 머리에 얹힌 헌팅캡과 모던 걸이 쓴 단아한 모양의 클로시는 지금 봐도, 멋들어진 패션을 완성하는 데 훌륭한 구실을 했다. 계급이나 관직을 나타내는 데에서 벗어나, 모자는 훌륭한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아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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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동 모자 전문점 해츠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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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의 컬처 코드 → 개성에 도전하려는 몸부림…그러나 불편해 지난 28일 오전, 서울 명동의 모자전문점 해츠온(Hat’s on)에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들이 이리저리 모자를 뒤지고 써보느라 왁자지껄했다. 한국 남자들이 모자를? 이게 웬일? 알고 보니 수학여행 온 일본 고등학생들이다. 일본만큼은 아니어도 모자를 즐겨쓰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이 쓰는 모자도 2년 전에 견줘 보면 유형이 훨씬 다양해졌어요. 2년 전에는 매출의 60%가 야구모자에서 나왔는데 이제는 그 비중이 40%까지 줄어들었죠. 20%는 햇과 캐릭터 모자 종류로 옮겨졌습니다.” 일명 ‘공효진 모자’로 불리는 캐릭터 모자를 디자인한 신민용 엘스팅코 과장은 모자를 즐기는 나이대도 두터워졌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모자를 구매하는 30~40대 남자가 거의 없었는데, 최근에는 오히려 구매력 있고 멋내기 신경 쓰는 남성 소비자들이 많이 찾고 있어요.”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진 이들이 늘고는 있지만 모자를 쓴다는 건 여전히 대단히 색다른 개성 표현이다. 무엇보다 모자는 도전이다. ‘멋쟁이’와 ‘멋 내는 데 지나치게 신경쓰는 사람’이라는 평가 사이에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다. 그걸 즐기면서도 애매하게 불편한 구석이 없지 않다. “모자를 쓰는 게 좀 애매한 게 있어요. 멋져 보이기는 하는데, 너무 ‘멋 낸다’는 느낌이 든다는 게 문제죠. 튀는 걸, 좀 신경써야 말이죠.”(32·회사원·여성) “회사에 모자를 쓰고 가면, ‘어, 오늘 모자 썼네?’라고 한마디씩 하죠. 기분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 뒤에 ‘너무 과한 거 아냐?’라는 말이 괄호 속에 숨겨진 게 아닐까 신경이 좀 쓰이긴 해요.”(29·회사원·여성) 패션을 완성시키는, 약방의 감초 같은 모자. 그 안에는 아직 ‘불편한 개성을 위한 도전’이 숨어 있다. 모자 ‘제대로’ 쓰는 법 → 얼굴 크기가 핵심 기준 모자를 고를 땐 신경써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얼굴에 가장 가까이 자리잡으니 미묘한 차이가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낳는다. 모자와 거리가 잘 좁혀지지 않는 것도 모자 고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자를 선택하는 데도 간편한 원칙이 없지 않다. 가장 신경써야 할 세가지는 얼굴형, 크기, 색상이다. 해츠온 매장에서 챙이 짧은 캡모자를 무심코 썼다 좌절했다. “얼굴이 좀 크신 분은 챙이 작은 캡모자는 피하시는 게 좋아요.” 점원의 핀잔인가 직언인가. 거울을 보니 분명히 달덩이 같은 얼굴이 울상을 짓고 있다. 이처럼 얼굴형은 모자 고르기의 아주 중요한 기준이 된다. 얼굴이 사각형이라면, 헌팅캡이나 베레모는 피하는 게 좋다. 대신 챙이 넓은 햇이 더 어울린다. 모자 디자이너인 이형렬 카오리 대표는 “모자 매장을 직접 방문해 여러 모자를 써보고 결정할 것”을 권유했다. 모자는 머리에 바로 쓰는 특성 때문에, 크기와 깊이가 잘 맞지 않으면 맵시를 살릴 수 없기 때문이란다. 그는 맞춤 모자도 있다고 제안했다. 남들보다 크거나 작은 머리는 고민인데 멋진 모자를 시도해보고 싶다면 맞춤 모자를 알아보는 것도 좋다. 수제 맞춤 모자 전문점에서는 꼭 맞는 모자를 맞출 수 있고 어울리는 모자 종류를 구체적으로 추천받기에도 좋다. 카오리의 맞춤모자 가격대는 10만~20만원대로 기성품보다 비싼 편이다. 색상 역시 중요하다. 옷이 화려하다면 같은 색 계열의 단색 모자를, 단조롭다면 과감하게 장식된 모자를 써야 어울린다. 다양한 모자 스타일을 경험하며 눈을 높이고 싶다면 루이엘 모자컬처센터(전북 전주) 등 박물관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글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박원순의 모자, 나경원의 운동화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폭풍처럼 지나갔다. 넘실댔던 약속의 말들은 떠났지만, 이미지는 남는다. 이미지로 남은 두 후보의 양대 퍼포먼스는 한마디로 아쉽고 안타까웠다. 나경원(사진) 전 의원의 운동화 퍼포먼스를 기억하시는지?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자 추천장 수여식에서 홍준표 대표는 나 전 의원에게 운동화를 선물했다. 그 자리에서 나 전 의원은 운동화 끈을 질끈 맸다. ‘열심히 뛰라’는 의미의 선물. 은색에 분홍색 포인트를 준 새 운동화는 그 자체로는 보기에 좋았다. 그러나 선물받은 운동화의 쓰임새는 거기까지였다. 사진 촬영용? 운동화 끈을 매는 장면을 보면서 상상했다. 편안한 차림새로 시민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그러나 고운 자태, 온화한 미소와 함께 땀방울은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홍 대표가 걸치고 있던 파란색 점퍼라도 걸치고, 당찬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운동화 퍼포먼스가 어색하지 않았을 텐데. 박원순(사진) 서울시장이 선거 유세 때 쓰고 나온 ‘피터팬 모자’를 보는 순간, 살짝 손발 오그라들었다. 생기있어 보이긴 하는데, 뭔가 억지스럽다. 무슨 뜻이지? 분명히 멋을 내려고 쓴 것은 아니고. 후크 선장을 무찌르겠다는 뜻인가? 제멋대로 해석을 해본다. 엉거주춤 머리 위에 얹은 초록색 모자를 멋진 페도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 멋진 모자를 쓰는 멋진 시민 후보면 어떤가? 너무 ‘노는 이미지’인가?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 멋 제대로 부릴 줄 아는, 때로는 잘 놀기도 하는 세련된 시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바람은 바람일 뿐일런가. 이정연 기자 오리너구리·신문팔이 소년…모자는 이렇게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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