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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스쿠트의 점프 자세. 스노스쿠트는 핸들이 달린 앞데크와 뒷데크를 따로 360도 회전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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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초읽기 들어간 스키장 개장…스키 물렸으면 이색스키 어때요
“쯧, 저것도 스키라고.” “판때기 하나 타고 슬로프를 휘저으니 불안해서 ‘스키’를 탈 수가 있나.” 10년 전쯤 국내 스키장들에서 흔하게 들리던 스키어들의 볼멘소리다. 스노보드 얘기다. 당시엔 ‘안전’을 이유로 스노보더에게 슬로프 출입을 제한하는 스키장이 많았다. 지금은 절반 이상이 스노보더일 정도로 대세가 뒤바뀌었다. ‘제2, 제3의 스노보드’를 꿈꾸는 이색 스키 마니아들이 있다. 스키와 스케이트를 결합한 스키에이트, 자전거와 보드를 합쳐놓은 스노스쿠트, 스키 한쪽에 두발 나란히 올리고 타는 모노스키 등 별난 스키 애호가들이다. 아직은 즐기는 이들이 적어, 일반 스키어·스노보더들에게서 호기심과 눈총, 찬탄과 질시의 시선을 동시에 받는다. 이들은 저마다 조만간 자신들 세상이 올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한번 맛들이면 절대로 빠져나오기 힘든 강력한 매력” 때문이라고. 개막 초읽기에 들어간 스키 시즌. 올해엔 색다른 스키에 눈을 돌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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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에이트 입문 2년차인 최석범(29·병원근무, 사진 아래)·이진숙(30·교사, 사진 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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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순간, 바로 이거다 싶었죠.” 스키에이트 입문 2년차인 최석범(29·병원근무)·이진숙(30·교사) 짝은 몇년 전 레저용품 전시회에서 스키에이트를 접하곤 “첫눈에 꽂혔다.” 둘은 각각 10년, 5년 경력의 인라인스케이트 마니아. 좀더 신나고 새로운 즐길거리를 찾던 이들에게 스키에이트는 취미생활에 새 지평을 열어주는 ‘환상의 장비’였다.
길이 45㎝밖에 안 되는 짤막한 플레이트, 폴대가 필요없는 자유로움, 신발만 신고 걷는 듯한 가벼운 발걸음…. 기다란 두 짝의 ‘신발’을 신어야 하는 번거로움도, 수시로 폴대를 휘둘러야 하는 거추장스러움도 없었고(이상 스키), 발이 묶인 채 옆을 보고 달려야 하는 불편함(스노보드)도 없었다.
“첫날부터 여친이 중급자 코스를 한번도 넘어지지 않고 내려오는 걸 보고 놀랐어요.” 최씨는 초보자도 배우기 쉽고, 넘어져도 다리가 꼬이거나 발목을 다칠 우려가 적으며, 넘어진 뒤 자연스럽게 일어나면서 곧바로 주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스키에이트의 매력은 “기동력·순발력이 뒷받침된 묘기 부리기에 있다”고 최씨는 설명했다. “인라인을 타는 느낌 그대로 점프·회전·펭귄워크 등 묘기를 눈밭에서 펼칠 수 있죠.”(최씨) “둘이서 손잡고 춤도 출 수 있어요. 탈수록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깜찍한 스키죠.”(이씨) 둘은 그동안 타던 스노보드·쇼트스키를 접었다.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으며 스키에이트 묘기를 선보일 생각에, 스키장 열릴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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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에이트 개발자 이지하씨가 슬로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자세로 커브를 돌고 있다(위). 모노스키(아래 왼쪽)과 스노스쿠트(아래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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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스쿠트 마니아 하재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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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밭에서 타는 자전거 형식. 산악자전거(MTB) 마니아들이 스노스쿠트 동호인들의 주류다. “자전거 프레임에 앞뒤로 두개의 스노보드를 달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마니아 하재규(33·JK스포츠 대표)씨. 산악자전거와 스노보드를 즐기던 그는 2004년 뉴질랜드 북섬의 한 스키장 렌털코너에서 한 시즌 일하면서 스노스쿠트를 처음 접하고 곧바로 빠져들었다. “꼭 들판에서 자유자재로 자전거를 타는 편안한 기분이었어요.” 당시 국내엔 즐기는 이가 10여명에 불과했다. 장비를 사들고 돌아온 그는 이후 한 시즌에 10차례 이상씩, 스노스쿠트에 ‘호의적인’ 곤지암리조트나 무주리조트(현 덕유산리조트)를 찾아 스노스쿠트를 즐겼다.(일부 스키장은 안전을 이유로 스노스쿠트 출입을 제한한다.)
“자전거 원리만 알면 노약자도 쉽게 조종할 수 있고, 숙련되면 에어 묘기 등 산악자전거·스노보드의 다양한 기술까지 펼칠 수 있다는 게 매력이죠.” 마니아들은 공중에 떠서 펼치는 기술 중에서도 핸들 돌리기(프런트 휩)와 뒷데크 돌리기(테일 휩)를 백미로 꼽는다. 스노스쿠트를 처음 본 이들이 가장 걱정하는 게 충돌 등에 따른 안전성 문제다. 또다른 마니아 서재환(35·자영업)씨는 “직접 타보면 스키보다 훨씬 다루기 쉽다는 걸 알게 된다”며 “넘어져도 손잡이를 잡고 있어 뒹굴 가능성이 적고, 발이 자유로우므로 즉시 출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일찌감치 시즌권을 사놓고 스키장 개장날을 기다리는 하씨는 “언젠가는 스노스쿠트 전용 슬로프도 생길 것”이라고 확신했다. “빠져들면 다른 종목은 쳐다보지도 않게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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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스키 경력 13년차 김재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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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 경력 13년째인 김재협(57·변호사·사진)씨는 ‘모노스키를 탄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2004년 모노스키를 만난 뒤로 일반 스키는 안 탄다고 했다. “스키 기술은 기본이죠. 여기에 강한 체력과 감각이 요구되는 특별한 스키입니다.” 김씨는 특히 “눈이 많이 내렸을 때 자연설을 흩뿌리며 고속으로 내달리는 맛은 일반 스키에서 느낄 수 없는 묘미”라고 자랑했다.
모노스키는 스키 한 짝에 두 발을 나란히 고정시키고 폴을 사용하며 타는 스키다. 플레이트 형태는 보드와 비슷하지만, 두 발이 앞을 향해 있는 까닭에 일반 스키와 같은 주행을 하게 된다. 활강 때 직진성이 강하고 일정 속도를 내야 안정된 자세가 유지된다. 따라서 턴할 땐 반드시 점프턴을 해야 한다. 방향 전환을 돕는 폴 사용은 필수다. 턴과 속도 조절에 체력 소모가 크다. 모노스키를 ‘스키장의 체력측정기’로 부를 정도다. “이거 1년 타고 몸무게가 7~8㎏이나 빠진 사람도 있어요.” 중급 이상의 스키 실력과 체력을 겸비해야 이 특이한 스키를 즐길 수 있다.
국내 모노스키 인구는 50~60명가량. 스키장의 희귀종족이라 할 만하다. 동호인 대부분은 50~60대 중장년층이다. 경력 10년의 이윤영(58·자영업)씨의 말. “스키를 탈 만큼 탄 사람들의 새로운 도전이죠. 남들 쉽게 못하는 기량에 도전하고 즐기는 맛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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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사진 제공 곤지암리조트, 이지하·하재규·김재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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