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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에서 파는 천연유약을 바른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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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우리 맛의 본류…김치 익어가는 세가지 빛깔
몸에 좋아 맛도 좋은 김치 가풍 → 한살림 회원 손순향(54)씨는 건강김치 만들기의 달인이다. 번잡한 서울 한복판 아파트에서 무려 21년간 겨울바람이 불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동네 주민들을 다독거려 김치를 담가왔다. 손맛 좋기로 소문난 시어머니의 솜씨도 고스란히 배웠다.
그의 비법 중 하나는 ‘제철 식재료’를 100% 활용하는 것이다. “무도 배추도 제철일 때 단맛이 나죠.” 이뿐만 아니라 김치 양념도 제철인지 따진다. 꽃피는 4, 5월이면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한다. 그러곤 제철 맞은 부산 기장멸치 한 상자(15㎏)를 떡하니 싸들고 돌아와 천일염을 송송 뿌려 ‘손순향표’ 멸치젓을 만든다. 이 멸치젓은 3년은 묵어야 비로소 배추를 만날 수 있다. 매년 건더기를 건져 버리다 보면 찰랑거리는 까만색의 맛깔스러운 멸치젓이 탄생한다. 소금 대신 이 멸치젓을 쓴다. “쓴맛 때문에 소금을 안 넣고 젓갈을 써요.” 건강김치 비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설탕을 전혀 넣지 않는다. 그럼 단맛은? 단맛 내는 일등공신은 양파다. 배추 한 포기당 양파 한 개씩을 갈아 넣는다. 자연이 선사한 달콤한 맛이 하얀 배추를 만나 우아한 날개를 단다. 공장에서 찍혀 나오는 플라스틱 같은 단맛과는 완전히 다르다.
김치 식재료의 대표주자인 고춧가루도 예사롭지 않다. 전라도 완도산을 가져온다. “해풍이 키운 건강한 고춧가루죠. 병충해가 거의 없어요.” 요즘 유행 따라 김치 양념에 들어가는 낙지, 오징어 등도 언감생심 그의 김치에는 출입금지다. 그저 기본적인 식재료로 담백한 맛을 살린다. 완성된 김치는 시어머니가 “그 옛날”부터 쓰던 고색창연한 독이나 천연유약을 바른 독에 들어간다.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한 신입사원처럼 싱그러운 김치는 그 안에서 숨을 마음껏 쉬고 넉넉한 인품을 가진 베테랑처럼 익어간다. 김장하는 날, 손씨의 마무리는 보쌈용 굴, 돼지수육 등으로 한 상을 차려내는 데서 빛난다. 상에는 아삭아삭한 배추전이 일품이다. 소금에 절인 배추로 노릇노릇하게 지져내는데, 짠 듯 안 짠 듯한 맛 사이에서 사각사각 소리가 난다.
“김치는 가풍”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요즘 절인 배추를 사서 담그는 김치풍속도에 대해 그다지 고운 시선이 아니다. “배추는 절이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집집마다 절이는 정도가 다르고 그게 맛을 결정하는데 모두 같아지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는 올해 27살이 된 딸에게 ‘건강김치 만들기’를 꼭 전수해줄 생각이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바닷소금의 소중함, 예전엔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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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기숙사에서 담근 김치는 가난한 유학생활의 든든한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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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없으면 당근이라도 →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한국’이라는 단어는 슈퍼마켓에서 처음 만났다. 샐러드 코너에서 발견한 정체불명의 당근채 샐러드에는 ‘한국식 당근’이라고 쓰여 있었다. 러시아 티브이 프로그램 <알고 싶어요>에 편지를 보낸 시청자 덕분에 이 음식에 대한 내 궁금증도 해결됐다. 프로그램 리포터는 한국식 당근의 기원을 찾아 무려 사할린섬까지 날아갔다! 이 음식 개발자는 소비에트 한인, 즉 고려인들이었다. 소련 시절 그들은 배추나 무를 구할 수 없어 당근채를 썰고 거기에 소금과 식초, 고추를 곱게 간 향신료 등을 넣어 ‘김치’ 대용을 만들었다고 한다. 1999년 연수생으로 처음 모스크바에 왔을 때만 해도 배추 대신 양배추로 김치를 담가 먹거나 그것도 아니면 근교로 나가 민들레를 따다 민들레김치를 해먹었다. 배추는 김장철 즈음에나 교회를 통해 특별 주문해야 구경할 수 있는 귀한 존재였다. 언젠가부터 상점에 중국 배추가 등장했고 ‘용’이라는 이름의 기다란 단무지용 무도 들어섰다. 김치 맛을 결정하는 것은 배추 외에 역시 소금·젓갈·고춧가루인데 이 세 가지 모두 모스크바에서는 구하기 힘들다. 소금이 왜? 여기 소금은 대부분 암염이고, 바닷소금이라고 해도 한국 소금처럼 맛있게 짜지 않다. 배추는 암염에 잘 절지도, 맛있게 절여지지도 않는다. 우리 천일염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지, 마치 공기에 감사하지 않듯, 모스크바에 오기 전에는 몰랐다. 고시원만한 기숙사 방에서 샤워기로 배추를 씻고, 책상에서 김치를 버무리다 책에 온통 고춧가루가 튀는 수난을 당해가며 만든 내 겉절이의 ‘기똥찬’ 맛도 몰랐겠지.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다. 고작 세 포기 배추를 씻는데도, 손은 꽁꽁 얼고 마늘·양파 까다 보면 손과 눈은 왜 이리 매운지. 다행히 이웃이 한국 문화와 김치에 아주 관대한 대만 학생이었다. 매운 고춧가루 냄새가 미안할 땐, 내 별명이 ‘모스크바 김장금’이라고 떠벌려 모면하곤 했다. 다행히 그의 어머니께서 대장금을 사랑하셔서 가끔 한국 김치를 시도해 본다며, 나중에 어머니에게 레시피를 알려 달란다. 모스크바는 이번주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춥고 긴 겨울이 시작된다. 배추를 만나기도 쉽지 않은 계절인 것이다. 글·사진 김진성/모스크바국립대 인문학부 박사과정
그 자체로 성격 좋고 품격 높은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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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셰프 할머니의 레시피로 만든 백김치. 아삭아삭한 김치의 맛이 스테이크와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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