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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2.01 14:32 수정 : 2011.12.01 14:32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esc’판 가상극화 <2023 사투리 멸종시대>

서울~부산 거리를 3시간 만에 번쩍 움직일 수 있고, 사통팔달 인터넷이 안 통하는 데 없는 ‘스마트한’ 시대다. 게다가 서울로 모든 게 수렴되는 생활로 국어학계에서는 세대 변화를 겪으며 도시로 이동하는 이들이 늘며 지역 사투리를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심지어는 앞으로 10여년 안팎으로 사투리의 상당 부분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이에 가 사투리가 사라진 세상의 이야기를 상상으로 꾸며봤다. 너무 황당한 내용이라고? 믿거나 말거나는 여러분의 몫!

2023년에는 그랬다. 아니 그렇게 될 줄 알았다. 10년 전 서울과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서더니, 지금은 한반도의 70%가 넘는 이들이 서울 주변에 꾸역꾸역 모여 살고 있다. 오래전 지방혁신도시, 수도 이전 등으로 시끄러웠던 시절이 있었다지만…. 요즘은 서울 중심의 정책에 표를 던지는 과반수의 사람들 때문에 모든 정책은 수도권 중심으로 돌아간다.

<토지> 불온서적 지정 사건

그래서일까. 지난해 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모든 정책에서 ‘무조건 서울 우선주의’를 외친 ‘레알 서울’ 당의 대표 나표준(55)씨가 수도권의 몰표를 받으며 새 대통령에 당선됐다. 뼛속까지 서울사람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그는 국회의원 시절부터 유독 지역색을 나타내는 정치인을 혐오했다. “나 의원님, 거 말이 되능교?”, “이런 식으로 해 싸면 곤란하죠잉” 하며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질문을 던지는 의원들과는 말도 섞지 않을 정도로 지독한 성격이었다.

그 나물에 그 밥이었던 2022년 대선 후보들의 공약 가운데 ‘국어기본법의 강화’와 ‘표준어 근본주의’를 내세운 그의 공약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사실, 오래전 전설로 남은 대선 후보 허경영의 잠실운동장 10만명 운집설과 맞먹을 만큼 황당무계한 공약이었지만, 언론과 티브이 프로그램 등을 통해 ‘사투리=웃긴 것’이라는 생각이 퍼져 있었기 때문에 ‘진정한 서울사람’으로 거듭나길 원하는 지방에서 올라온 수도권 주민들에게는 설득력이 있었다.

결국 수도권 주민들의 몰표로 당선된 그는 취임 직후 대통령령으로 그동안 아름다운 사람들 사이의 약속이었던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을 강력하게 수정해 ‘한반도 표준어 통일을 위한 대통령특별법’으로 발효했다. 내용인즉슨, 모든 언론매체·인쇄물·일상생활에서 서울말인 표준어를 쓰도록 정하며, 이를 어길 때에는 언어생활과 사회 통합을 저해한다는 혐의로 형법상 처벌이 가능하도록 만든 무시무시한 법안이었다.

특별법의 시행은 곧바로 완벽한 서울말을 쓰기 위한 사람들의 좌충우돌 소란으로 이어졌다. 우선,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해 출판사와 전자책으로 출간되는 조정래의 <태백산맥>, 박경리의 <토지> 등 사투리 표현이 담긴 대표적인 소설들의 출판·유통 금지를 단행했다. 훗날 사람들에게 10여년 전 ‘국방부 불온서적 지정 사건’과 함께 ‘어처구니없는 대한민국 2대 불온서적 사건’으로 불리게 된다.


출판 금지 사태는 영화계에도 미쳤다. 2024년 초 대검찰청 중수부장은 공식 브리핑에서 2000년대 초반 나온 영화 <친구>의 디브이디(DVD)를 흔들며 “이처럼 악성 사투리가 가득한 영화는 모두 수사 대상”이라고 밝혀 충무로 영화 관계자들을 긴장시켰다.

이 때문에 영화·출판계에서는 사투리를 표준어로 재녹음, 재번역하느라 분주해졌다. 진한 부산 사투리가 가득했던 영화 <친구>의 유명한 대사, “니가 가라~, 하와이!”는 낭랑한 남자 아나운서 말투를 닮은 서울 말씨의 성우가 “너가 대신 갈래, 하와이?”로 다시 녹음했다. 또 난이도 높은 사투리가 많았던 문학작품들은 전문 번역작가를 통해서 이뤄져야 했지만, 사투리를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남아 있지 않아, 문학작품의 출판 자체가 어려워지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서울메이트를 체포하라

공공장소에서의 사투리 사용에 대해 가중처벌하도록 한 대통령특별법으로 방송중 긴급 체포되는 사태도 나타났다. 오래전 한 개그맨을 고소한 사건으로 웃음거리가 됐던 ㄱ 의원(놀랍게도 그는 여전히 현직을 유지하고 있었다!)은 “했지요잉~”으로 전라도 사투리를 쓰던 개그콘서트 출신의 중견 개그맨 최효종씨를 연행하라고 정부에 압력을 넣었다. “우리는 서울말을 쓸 수 없다”며 길거리 공연 등 재야 활동으로 전환했던 개그콘서트의 ‘서울메이트’ 팀도 서울청 광역수사대 사투리 특별단속반에게 대학로 한복판에서 긴급체포됐다. 이들은 방송 카메라 앞에서 “최효종처럼 고소만 당하기를 바랐지, 체포돼서 감방 가기를 바란 건 아이다”라며 울먹였다. 특별법의 영향은 스포츠 경기에서도 표준어 응원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대구 사직야구장의 유명한 사투리 응원 “마, 마, 마~!”(하지 말라는 뜻)도 다시는 듣지 못하게 됐다.

이렇게 각 지방의 정체성이 있는 사투리의 규제는 특히 노인 세대의 말수를 적게 만드는 사태로 이어졌다. 결국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에서 삼삼오오 모이면서 곧 촛불집회로 이어졌다. 또 현 정부를 비방하는 <와? 내는 사투리 쓸란다>, <그려, 나가 서울사람이랑께> 등 사투리 팟캐스트 방송까지 등장하며 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사투리 특별법으로 탄핵 위기에 처한 대통령 나표준, 대국민 담화에서 긴장한 나머지 이렇게 서울 사투리를 내뱉었다. “지가… 생각이 짧았걸랑요!”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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