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2.01 14:46
수정 : 2011.12.0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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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문화방송>에서 방영했던 사투리 전문 퀴즈 프로그램 ‘말 달리자’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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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드라마·영화 등 대중문화 속 사투리의 갈등과 진화
“나 지금 떨고 있니?”
흰 죄수복 차림으로 사형대에 선 태수(최민수)는 건조하게 검사 친구 우석(박상원)에게 말을 건넸다. 우우우 우~후우. 귀에 익은 레퀴엠이 깔리며 50%가 넘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던 <에스비에스>(SBS) 드라마 ‘모래시계’(1995년)의 마지막 장면은 그랬다. 하지만, 옥에 티 하나. 전북 군산 출신이던 두 주인공은 팍팍한 서울 생활에서 어찌나 정확한 표준말을 배웠는지! 그래서일까.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같은 동네 출신 악역 깡패 종도(정성모)와 이야기할 때에도 그들은 결코 사투리를 입에 담지 않았다. 이 불편한 선악 구도여!
이처럼 ‘전라도 사투리=악역’이라는 공식이 세워진 건, 흑백 텔레비전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영남 출신 군인들의 독재가 횡행했던 사회적 배경도 있었겠지만, 1971년부터 10년 넘게 이어온 티브이 드라마 ‘수사반장’(MBC)에서도 범인들은 대부분 전라도 사투리를 썼다. 범인으로 최다 출연한 것으로 알려진 배우 변희봉이 사이비 교주, 사기꾼, 잡범 등을 전라도 사투리로 연기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1998년 찾아온 여야 정권 교체는 대중문화 속 전라도 사투리의 캐릭터를 바꿔놓았다. 전라도 사투리를 쓰던 악역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기 시작하면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악역도 탄생시켰다. 그 첫 기억은 바로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MBC·1997년). 전남 출신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과 맞물려, 극중에서 셋째아들 민규(송승헌)의 친엄마였던 계순(이경진)을 괴롭히고 사기까지 치던 부산 사투리를 쓰는 옆집 부부의 등장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이러한 사투리에 대한 선악 구도는 2000년대 중반, 사투리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가 속속 등장하면서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툭하면 “마이 묵었다”라는 유행어를 내뱉게 만든 영화 <친구>(2001년),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노골적인 영호남 사투리를 소재로 삼은 영화 <황산벌>(2003년), 그리고 “여기 배암 마이 나와”라며 능청스럽게 강원도 사투리를 연기하던 영화 <웰컴 투 동막골>(2005년)의 여일(강혜정) 등을 거치며 사투리가 변방에서 중앙 무대로 나왔다는 평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흐름은 예능 프로그램까지 퍼지며 사투리를 금기시하기보다 이른바 ‘문화 코드’처럼 받아들이게 됐다. 2006년에는 <문화방송>의 사투리 전문 퀴즈 프로그램인 ‘말 달리자’가 나왔으며, 이어서 ‘상상더하기’(2008년)의 ‘전국 사투리 자랑’도 인기를 끌었다. <친구>를 만든 곽경택 감독은 아예 영화 <똥개>(2003년)의 디브이디(DVD)에 경상도 사투리 자막을 지원하는 기능을 넣었다. 최근에는 ‘하이킥3’에 출연하는 강승윤이 구수한 경주 사투리를 쓰면서 웃음을 주고 있다.
그러나 ‘사투리 비하’ 논란도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 초 전라남도는 <한국방송> ‘추노’와 <에스비에스> ‘천사의 유혹’ 등 드라마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비정상적이거나 사기꾼으로 묘사됐다며, 한국방송작가협회 등에 ‘전라도 사투리를 바로 써달라’는 건의문을 보내기도 했다. 차라리 악역에게는 아나운서 같은 또박또박 표준어를 쓰게 해주세요!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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