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2.01 15:14
수정 : 2011.12.0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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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우리가 애매하게 알고 있는 네가지 오해 혹은 진실
‘사투리, 방언, 지역어, 시골말, 향토어, 와어(訛語), 탯말….’
사투리를 이르는 말은 다양하다. 단어마다 사투리에 대한 시각이 녹아 있다. 사투리·방언이 서울말의 반대말이라면, 와어는 사투리를 폄하하는 말이다. 그러나 탯말은 단어 자체로 사투리가 우리말의 뿌리이며 정신이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처럼 여러 단어로 표현하는 사투리는 사실, 서울말, 표준말의 텃세 탓에 얼굴을 제대로 드러내고 산 세월은 얼마 되지 않는다. 여전히 스스로 낯뜨거워하거나, 사람들에게 감추고픈 비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표준어의 정의가 사투리를 촌스러운 것으로
그런 생각은 학창 시절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배웠던 표준어 정의의 마력 때문이기도 하다. 또 국어기본법과 표준어규정·한글맞춤법·외래어표기법 등 어문규범에서도 성문화한 표준어의 힘을 보여준다. 표준어규정 제1장 제1항, 표준어의 정의를 보라!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
표준어의 탄생은 1930년대에 조선어학회가 만든 맞춤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뒤 해방을 거치면서 학교·관청에서 사투리를 배척하면서, 사투리의 이미지는 배우지 못한 이들이 하는 말, 촌스러운 말, 우스운 말 등으로 폄하된 것이다. 이 때문에 국어학계에서는 사투리를 ‘지역어’ 또는 지역방언이라고 부르며 보존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사투리가 언어의 풍요로움을 이끌어준다는 것이다.
이에
가 여러 독자들을 대신해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여온 사투리를 둘러싼 오해 또는 몰랐던 사실을 모아봤다. 국립국어원과 각종 자료 등을 통해 찾아낸 사투리,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그 수수께끼 속으로 출발~.
→ 보소! 갱상도 사투리는 와이리 고치기 어려븐교? 경상도 사투리는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바로 음정의 높낮이인 성조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이근렬 부경대 교수(국문학)는 <사투리의 미학>에서 음정의 높낮이를 잘 이해하는 경상도 출신 가수가 노래를 잘 부를 가능성도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가가 가가 가가 가가 가가 가가?”(아까 그 아이가 가씨 성을 가진 그 아이냐, 아니면 다른 그 아이가 가씨 성을 가진 그 아이냐?)라는 단순한 말도 경상도 사투리에서는 성조를 통해 여러 단어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라도 사투리에도 음정의 미세한 높낮이가 있긴 하지만, 단어를 길게 발음하고 센소리 발음은 음정을 높이는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전라도, 충청도 등은 말의 길이에 좀더 신경을 쓰면 표준어 발음이 되지만, 경상도에서는 말의 높낮이 자체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사투리를 고치는 것 자체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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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사는 여친이 제 사투리 징허다는디…. 아따, 서울말도 사투리 아니요잉? 표준어가 나오기 전에는 서울말도 이른바 사투리였다. 4대문 밖에서 상인들이 오가면서 생긴 말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해방 뒤에는 서울로 전국에서 사람들이 이주해 오면서, 오래전 서울말도 많이 사라진 게 사실이다. 대표적인 서울 사투리 단어는 삼춘(삼촌), 구녕(구멍), 겨란(계란), 돌아댕기다(돌아다니다) 등이 있으며, ‘일도 허구, 노래도 부르구요’ 식으로 ‘ㅜ’ 발음을 강조하는 특징도 있다. 드라마 <서울 뚝배기> (1990년)의 안동팔(주현)이 썼던 ‘~했걸랑요’도 서울 왕십리 지역의 사투리를 옮긴 것이다.
서울 사투리는 경기 방언 가운데 한양 방언으로 분류하는 게 일반적이며, 표준어의 뿌리가 된 말이지만 ‘교양 있는 서울 사람들’이라는 전제를 달고 표준어가 정해지면서 표준말로 배제한 단어도 꽤 된다.
→ 표준어 규정은 왜 걍 냅뒀대유? 사투리를 허하라 했으면 됐잖아유 실제로 서울말을 표준어로 삼은 현행 규정에 반기를 든 움직임도 있었다. 2006년 지역어 연구모임인 ‘탯말두레’ 회원과 전국 초·중·고교생과 학부모 등이 낸 헌법소원이 바로 그것. 이들은 “현재의 표준어 규정과 국어기본법은 지역 언어의 특성과 기능을 무시한 채 서울말을 표준어로 규정하고, 표준어로 교과서와 공문서를 만들도록 한 국어기본법은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교육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의 이유를 밝혔다.
이 헌법소원은 3년 동안 심리를 하며 공개변론까지 진행하는 등 열띤 논쟁을 낳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2009년 “서울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문화를 선도하는 점, 사용 인구가 가장 많은 점, 지리적으로 중앙에 있는 점 등 다양한 요인에 비춰볼 때 서울말을 표준어로 삼는 것이 기본권을 침해한다 하기 어렵고 서울말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으므로 교양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을 기준으로 삼은 것은 합리적”이라며 전체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7명 합헌, 2명 위헌 의견으로 헌법소원을 기각했다.
제주도 사투리 법으로 보전
→ 제주도 사투리는 법으로 보호하기로 했슴둥? 2007년 제주도는 고유 사투리가 점점 소멸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주어 보존 및 육성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한 이 조례는 제주어 주간을 정하고, 학교에서는 제주어 교육을 실시한다는 등의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다.
제주 국어학자들의 건의로 만든 이 조례는 제주어를 ‘제주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는 언어 중에서 도민의 문화 정체성과 관련 있고, 제주 사람들의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는 데 쓰이는 전래적인 언어’로 정의했다. 또 조례를 근거로 매년 10월 제주어 행사를 열 수 있고, 제주어 발전 기본계획, 제주어연구소 설립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처럼 제주에서 국내 최초로 사투리 관련 조례를 만든 것에 자극을 받은 경남 진주시의회 의원들도 ‘진주지역언어 보존 및 육성에 관한 조례안’을 발의했지만, 내부 진통으로 아직까지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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