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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시 온양온천시장 한쪽에 설치된 아담한 족욕탕. 누구나 발을 담그고 피로를 풀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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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상인 합심으로 살려낸 온양온천·단양구경시장…지역 예술가들도 열혈 지원
전통시장이 활성화된 지역엔 예외 없이 관광객이 들끓는다. 시장 규모나 입지와 관계없이, 장터 자체가 관광자원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이 배경엔 시장 구성원들의 단합된 힘이 깔려 있다. 지난 주말 중부지역 전통시장 두 곳을 다녀왔다. 온천 입지에 수도권 전철 연장개통으로 뜨고 있는 온양온천시장과, 규모는 작고 외딴곳이어도 상인들 합심이 돋보이는 단양구경시장이다.
충남 아산 온양온천시장 → 상인들이 직접 연극배우로 나서
“양말 벗구들 이게 뭐 하는 겨어?” “아, 발바닥 온천 한다잖유.” 지난주 금요일 충남 아산 온양온천시장 시민문화복지센터 앞. 길모퉁이에 인파가 몰려 있다. 넘겨다보니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져나오는 벽 앞에, 어르신 10여명이 나란히 앉아 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 눈을 지그시 감고 행복해하는 표정들이다. 상인회에서 섭씨 50도가 넘는 온천수를 끌어와 최근 설치한 ‘건강의 샘, 소원 분수’라는 이름의 미니 족욕탕이다.
“기업형 대형 마트가 들어온대유. 워쩐디야.” 복지센터 지하 1층 소극장에선 연극 공연이 열렸다. 역시 상인들이 지역 예술인들과 함께 만들어 무대에 올린 <온양온천시장의 꿈>이다. 대형 마트가 들어온다는 소문에, 상인들이 좌절하다 단합해가는 과정을 그린 내용. 배우로 직접 나선 상인회 조규현(55) 사무국장은 “각본부터 상인들이 참여해 만들어진 연극”이라며 “순천향대 학생들과 함께 두달간 연습했다”고 자랑했다. 12월9일(14시), 10일(14·19시) 세차례 더 공연(무료)된다.
온양온천시장은 480여 점포에 노점까지 1000여명의 상인들로 이뤄진 전통시장이다. 대형 매장들에 밀려 쇠퇴해가다, 2008년 수도권 전철 연장개통을 기회로, 상인들이 똘똘 뭉쳐 재도약에 성공한 시장이다. 온양온천역이 생긴 뒤 어르신들을 주축으로 한 수도권 인파가 몰리자 상인들은 아이디어를 짜내 ‘어르신 우대 전략’을 세우고 정부 지원도 받아냈다.
시장의 변화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온궁카페 ‘유유자적’이다. 상인도 방문객도 수시로 찾아와 쉬고 취미생활하고 먹고 즐기는 공간이다. 여기서 점심때 내는 3900원짜리 한식뷔페는 상인은 물론, 온천욕을 하러 들른 방문객들에게 큰 인기를 누린다. 상인들이 운영하고 진행하는 라디오방송국 ‘온궁미니방송국’ 스튜디오도 이곳에 있다. 화·수·목·금요일에 2시간씩 시장 소식과 상인들 이야기, 할인행사 등을 전하며 신청곡도 틀어준다. 참여하는 5명의 디제이는 모두 시장에서 옷가게·정육점·소금가게 등을 하는 상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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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온천시장을 찾은 이들이 무료로 제공되는 솜사탕을 받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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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발 포장마차 주인 김정희(55)씨는 “매주 골목별로 테마거리를 정해 할인·경품행사를 벌인다”며 “거리에서 공짜로 차도 끓여주고, 솜사탕도 나눠준다”고 말했다.
벽화, 트릭아트 거리, 소원의 벽 등 보고 즐길 거리도 짭짤하다. 어르신들이 쉴 수 있도록 곳곳에 쉼터와 의자도 설치했다. 10명 이상이 신청하면 시장 이야기를 곁들인 시장골목 투어를 진행한다. 이런 노력 덕분에 온양온천시장엔 주말이면 7000명 안팎의 쇼핑·관광 인파가 몰려든다.
오래된 온천욕탕으로 이름난 신정관에서 온천욕을 하고 나오던 할머니(71·서울 제기동)는 “동네 친구들과 모여서 가끔 온천 하러 온다”며 “전철도 공짜고 온천도 할인돼서 돈은 별로 안 든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시장을 거쳐 온양온천역으로 갈 거라고 했다. 역에서 시장까지는 걸어서 5분 거리다. 상인회 조 사무국장은 “앞으로는 어르신들을 겨냥한 프로그램을 좀더 다양하게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온양온천시장 사업단 (041)546-0456
충북 단양구경시장 → 인파 모이는 오일장 때 놀러 오세요
“자, 다음엔 볼수록 신기한 마술 공연이 펼쳐집니다요.” 광대 차림의 진행자가 물러나고 카리스마 넘치는 세련된 양복 차림의 마술사가 등장해 현란한 카드 마술을 선보이자, 시장골목을 메운 구경꾼들이 감탄사를 쏟아내며 박수를 쳤다. 지난 토요일, 단양구경시장에서 진행된 ‘뻔뻔(funfun) 한마당 거리축제’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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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구경시장의 마늘매운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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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좋지. 신나는 공연 보니 좋고, 시장 손님 많아 북적이니 좋고. 아핫핫핫.” 50년 경력의 한영이발관 주인 김한영(77)씨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평소 조용하던 단양시장이 볼거리·먹을거리 짭짤한 관광시장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불과 몇달 전부터다.
남한강 주변의 빼어난 경치 ‘단양 8경’과 마늘로 이름난 충북 단양은, 충주댐 건설로 온 마을이 수몰되는 아픔을 겪으며 1984년 남한강변에 새로 건설된 도시다. 관광지와는 멀리 떨어져 관광 밑천도 별로 없고, 역사도 짧은 이 동네가 지난달 단양의 아홉번째 경치, 단양 제9경으로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단양전통시장 이름을 11월11일 가래떡데이 행사를 하면서 단양구경시장으로 바꿨습니다. 볼거리·즐길거리 많은 전통시장이 단양의 아홉번째 경치란 뜻이죠.”(단양전통시장사업단 김남명 단장)
27년 전 상가 건물을 지어 들어선 단양시장은 사실 규모도 크지 않고, 재래시장 맛도 덜한 그저 그런 시골 장터였다. 연 8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다는 단양에서, 정작 단양시내에 들러 가는 관광객은 거의 없었다. 상인회를 중심으로 “이래선 안 된다”는 위기감이 번졌다. “지난해부터 상인들이 머리를 짜내, 문화공연과 아이들 놀이공간, 빈 점포를 활용한 전시공간 마련 등 갖가지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김재홍 상인회장) 군청 도움을 받아 사업을 진행할 즈음, 운좋게도 문화관광형 시장으로 선정되면서 속도를 내게 됐다. 상인대학을 운영하면서, 상인들의 참여도가 급속도로 커졌다고 한다.
단양구경시장 골목과 상가 건물들은 지금 한창 새단장이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입구에 흥미를 끄는 조형물을 설치하고, 성수기가 지나 비어 있는 마늘상가 건물 앞엔 설치미술가를 초청해 조형물을 설치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장의 장점과 매력은 외형보다는, 내용에 있다.
“상인분들이 정말, 놀라울 정도로 단합이 잘돼요. 공연 하나 벌어지면, 순대집, 닭강정집, 오뎅집 들이 앞다퉈 먹을거리를 준비해 공연진과 관객들 앞에 내놓는 겁니다.”(사업단 신효정 과장) 규모 작고 조용한 듯해도, 시장 골목을 한바퀴 돌며 식당·떡집·술집·고깃집, 나물좌판, 메밀전병 포장마차 하나씩 기웃거려 보면, 밝고 순박한 상인들 입에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흘러나온다.
단양구경시장 구경을 풍성하게 즐기려면 아무래도 인파가 모이는 장날(1, 6일)이나 주말이 좋겠다. 통기타연주·길놀이·무용극·판소리공연 등으로 이뤄진 ‘뻔뻔 한마당 거리축제’는 12월24일까지 매주 토요일(13~17시) 벌어진다. (043)422-8102
아산·단양=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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