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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2.08 16:25 수정 : 2011.12.08 16:25

이화주, 석탄향, 동정춘 등 국순당에서 복원한 전통주.

국순당 부설연구소에서 듣는 전통주 복원 이야기

조선시대 풍속화 ‘야연’(野宴·작자 미상)에는 술 냄새가 난다. 누런 채색은 시큼한 동동주를 뿌린 듯하다. 세상살이 아랑곳하지 않고 소풍 나온 사내의 손에는 제 목숨인 양 꼭 붙잡고 있는 술병이 있다. 얇고 가는 주둥이에서는 다섯명의 사내와 두명의 아낙을 단숨에 흐드러지게 삼킬 만큼 달고 신 술 향이 솔솔 뿜어난다. 무릇 애주가라면 권주가가 절로 나오는 이 그림 속으로 쏙 빠져들고 싶으리라!

우리 풍속화의 단골 소재는 술이다. 김홍도와 신윤복의 붓끝에서 막걸리, 청주(약주), 증류 소주 등은 작품으로 태어났다. 천가지가 넘는다고 추정하는 우리 술은 일제 강점기에 서서히 사라졌다. 그 일부만 고문서에 남아 애주가들의 애간장을 태운다. 다행히 희소식이 들린다. 국순당은 2008년부터 고문서를 바탕으로 우리 전통주 복원 사업에 나섰다.

먹어본 사람이 있어야 맛을 논하지

“처음에 힘들었던 점은 제대로 된 맛을 아는 이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맛이 이어져온 것도 아니고 확인할 방법이 없었죠.” 국순당부설연구소 권희숙 연구원의 첫마디다. 완성된 술을 놓고 갑론을박 칼날 같은 토론이 벌어졌다고 한다.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이가 없었다.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는 동안 “모든 연구원들이 맛을 보고 ‘바로 이거야’ 소리치는 때”가 생겼다. 해결책은 시간에 비례해 다가왔다.

복원의 출발은 고문서를 뒤지는 일이었다. <산가요록>, <수운잡방>, <고사촬요>, <주찬>, <임원경제지>(임원십육지), <규합총서> 등 이름도 생소한 두꺼운 책들이 교과서였다. 원본과 번역본을 읽고 또 읽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금빛 글자가 술 보물지도가 되어 튀어나왔다.

길은 가다가 잘못 들어서기도 하는 법! 틀린 번역본으로 술을 만들었다가 낭패를 보기도 했다. 여과주 복원 과정은 미로를 헤매는 꼴이었다. “문헌에 있는 대로 만들었지만 술이 아닌 이상한 것이 만들어졌어요.” 선조들은 ‘거른다’처럼 당시에는 너무 당연한 과정을 적지 않기도 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마치 현대 화장실 문화를 말하면서 굳이 ‘변기 물은 내린다’란 과정은 기술하지 않는 것과 같다. 새로운 말도 배웠다. 문헌에 ‘감렬하다’란 표현은 ‘달면서 알코올 도수가 좀 있다’라는 뜻이다. 권씨는 혀끝에 닿는 술이 달고 도수가 높으면 “어! 감렬한데”라고 외친다.

문헌은 연구원들에게 성경이나 불경, 이슬람경전처럼 절대적인 힘을 발휘했다. 약산춘을 복원할 때 일이다. <임원경제지>에 적힌 약산춘 제조법에는 ‘찐 떡이 식기 전에 항아리에 담는다.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의 가지로 휘저은 뒤 항아리 주둥이를 기름종이로’라는 글이 있다.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 가지로 휘저은 뒤’가 문제였어요.” 남자 연구원 3~4명에게 부탁했다. 힘 좋고 방향감 뛰어난 남성 연구원들은 연구실 뒷산에 뛰어올랐다. 며칠 동안 주술사처럼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 가지’를 찾아 헤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나! 결국 이 나뭇가지는 술 제조에 요긴하게 쓰였다.


이 제조법에는 과학적인 비결과 선조의 염원이 숨어 있다. 스테인리스가 없던 시절 나뭇가지 대신 쇠로 저었다면 술맛은 금세 나빠졌을 것이다. “쇠와 발효 중인 술과는 안 맞습니다.” 왜 하필 동쪽이었을까? “해가 뜨는 동쪽은 희망 등을 상징하지요.” 그것뿐만이 아니다. 약산춘은 정월에 담가서 100일 발효하고 5월까지 보관했다가 마시는 술이다. 권씨는 “저온 발효하라는 소리라고 추측하긴” 했지만 “기록에 있는 딱 그날을 피해” 만들어 보니 맛이 완전히 달랐다고 한다. 매달 맛도 조금씩 달라졌다. 1~2월에는 알코올과 신맛이 강하고 3월에는 목련꽃이 봉오리를 펴듯이 단맛이 피어오르다가 5월이 되면 독립심 강한 어엿한 청년으로 자란다. “미묘한 맛의 변화는 정말 신비했어요.” 1년에 딱 한번 담그는 약산춘은 귀한 술이었다.

고약한 쌀 썩은 냄새가 향긋한 술내로 극적 변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제공
<산가요록>의 지주(향료)를 복원할 때는 고약한 냄새 때문에 큰 고생을 했다. 제조법에는 여름날 3일 쌀을 물에 담가두었다가 찌라고 되어 있다. 무더운 한여름, 물에 잠긴 쌀은 썩기 쉽다. 그 쌀을 찌자 핵폭탄만큼 위력이 센 냄새가 건물을 덮었다. 신고까지 들어올 지경이었다. 신묘한 일이 벌어졌다. “문헌에 따라 쪄서 만들었죠. 처음에는 고약했는데 신기하게 발효하면서 아주 향긋한 향이 나기 시작했어요. 물에 담그지 않은 쌀로도 만들어 봤는데 그 맛이 안 났어요.” 물에 담가둘수록 미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미생물은 인공적으로 쌀을 도정하는 효과를 만들었다. 일본의 고급 청주는 대부분 도정을 많이 한 쌀로 만든다.

이런 노력으로 복원된 술들은 오직 누룩과 쌀로만 만들었는데도 그 맛과 향이 다르다. 국순당이 열다섯번째로 복원한 석탄향(惜呑香)은 조선시대 명주다. ‘술맛이 달고 잘 익어 입에 한번 머금으면 삼키기가 어렵다’는 뜻을 담고 있다. 죽이 술의 재료다. 걸쭉하게 될 때까지 숟가락을 놓지 않고 계속 저어 주어야 한다. “죽은 고두밥보다 누룩이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어요.” 이화주는 모양부터 신기한 탁주였다. 마치 떠먹는 요구르트처럼 걸쭉하다. 숟가락으로 떠먹는 고려시대 고급 막걸리다. 배꽃이 필 무렵 담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리알만한 생쌀 누룩과 백설기가 만나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용광로 같은 맛을 만들었다. 조선시대에는 취향에 따라 물을 타 마시기도 했다고 한다.

물이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는 술, 동정춘은 곧 세상에 나올 예정이다. 동정춘은 구멍떡을 찔 때만 ‘물 한 사발’을 사용한다. 구멍떡은 그야말로 도넛처럼 구멍이 뚫린 떡이다. 찐 구멍떡을 으깬 뒤 누룩을 넣어 술을 빚는다. 고체 발효다. 꿀과 호초(오늘날 후추로 추정)를 넣어 중탕한 자주 등 문헌을 탐험하며 찾아낸 우리 술은 신천지처럼 새롭다.

권씨는 “우리 술에 자부심이 생겼어요. 처음에는 꺼렸던 연구원들도 서로 나서서 복원하려고 합니다. 그만큼 재미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우리 약주 보관하는 법, 맛있게 먹는 법

살균 약주는 15도 정도 서늘한 곳에서 보관. 생약주는 라벨의 보관방법 참조. 와인처럼 햇볕이 드는 곳이나 움직임이 많은 장소는 피한다. 약 6~8도에서 음용한다. 차게 마시는 게 좋다. 같은 술도 온도에 따라 맛이 다르다. 유통기한을 넘기지 않았는데 검은 침전물이 보인다? 쌀 성분 폴리페놀과 단백질의 결합체이니 흔들어 마시면 된다. 잔은 사기가 좋다. 온도 변화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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