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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김조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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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고 청년필름이라는 영화사를 만들고 나서 십년이 넘는 동안 열편이 넘는 장편영화를 제작하면서도 영화 연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연출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학 때 연출을 전공하는 친구나 후배 녀석들은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안제이 바이다 같은 거장들의 영화를 보며 감동을 했지만 내겐 이해할 수 없고 지루한 영화들이었다.영화를 보는 내내 힘들었고 그런 영화를 보고 감동 먹는 사람들만이 연출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007년 가을, 갑자기 연출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잠을 못 이루는 날을 맞았다. 들뜬 마음에 밤을 꼬박 새우게 되었다. 신내림이었을까? 신열도 있었던 것 같다. ㅋㅋ 그날 이후 어떤 영화를 만들까 궁리하면서 제작과는 다른 연출이라는 영역의 재미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난 내가 소년이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짧은 영화로 만들게 되었다.
겁 없이 뛰어든 연출이라는 일, 부족한 자신을 발견하며 좌절에 빠져 허우적대다가도 맘에 드는 장면 하나를 만들어내고는 해냈다며 우쭐해하기도 했다. 그렇게 내 감정은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기를 했다. 그리고 3년 뒤, 장편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장편 데뷔작인데, 훌륭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부끄럽지는 않아야 할 것 아닌가? 마음이 무거웠다. 초보 감독의 데뷔, 출발선부터 삐걱거렸다. 머릿속에 그득했던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 내 맘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야 했다. 그래, 맞아. 내가 경험한 이야기를 잘 풀어보자. 갑자기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내 경험이라면?
옳지. 난 로맨티스트. 그래, 멜로를 하자. 멜로. 내 지난날의 로맨스 중에서 가장 영화적인 것을 끄집어내는 거야. 아, 아니야. 좀더 샤방한 게 낫겠어. 더 샤방샤방한 걸로. 퀴어들에겐 샤방샤방이 필요해! 그렇다면 멜로보다는 로맨틱 코미디지.
그랬다. 한국의 몇 안 되는 퀴어영화들이 지나치게 진지하고 무겁고 슬픈 쪽인데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란 사람, 발랄이 더 어울린다. ‘역시 나한테는 로맨틱 코미디가 어울려’라며 신나 했다.
그렇게 태어난, 아니 태어나고 있는 것이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이다.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 게이와 레즈비언이 부모님으로부터 결혼을 강요받는다. 그들은 결혼을 할 것인가 아니면 커밍아웃을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둘이 위장결혼을 하기로 결정한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한국에서 게이와 레즈비언의 위장결혼이 행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밝고 명랑한 캐릭터이고 그래서 로맨틱 코미디가 가능하다.
아 참, 나와 일하는 감독들이 내 영화를 보고 이럴지도 모른다. “너나 잘해!” 그래도 두려움은 없다. 난 초보 감독인걸 뭐.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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