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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인류멸망 그 후’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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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해가 보이지 않는 날’을 예언한 소년 도사 정시원씨를 기억하는가. 정시원씨는 그의 운명인 듯 종말의 날로 떠들썩했던 1999년 12월31일 밤 11시51분에 태어났다. 그는 지난 혼란의 시대에 계룡산 이주민들의 정착을 도우면서 사회운동가로 변신했고, 현재는 충청 도시국가연방 원로원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버지를 따라 계룡산에 정착해 살기까지, 또 그의 예언과 몸소 겪은 종말의 과정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2054년 12월 계룡산 ‘함초롱 마을’을 방문했다.
탄핵, 중미전쟁, 국가부도…
우리 할아버지 얘기를 먼저 해야겠어. 조부 정 만자 석자 어른은 어려서 일제 강점기 히로시마에 살다가 원폭을 맞으셨어. 원자폭탄. 해방되고 한국 와서 할머니 만나 결혼하시고 자녀가 넷인데 그중 우리 아버지가 막내였고. 할아버지는 평생 몸이 썩어 진물이 나고 아파서 술만 드시다 가셨대. 그래서 아버지가 핵, 전쟁의 공포를 뼈저리게 느끼셨어. 그게 얼마나 무서운지 곁에서 똑똑히 본 거지. 그래서 젊어서부터 종말론에 심취한 거야. 내가 신기를 타고난 것도 할아버지가 원폭 맞은 탓이라고 생각하셨지.
우리 아버지 근자 도자 당신은 걸핏하면 집을 나가 도인을 찾으러 다녔어. 또 <터미네이터 2>란 미국 영화에 아주 심취해서 반복해 보셨어. 살면서 늘 당신이 세라 코너라고 단단히 믿는 것 같더라고. <오메가맨>의 찰턴 헤스턴 흉내도 내셨네. 여하튼 그래서 나를 학교에 안 보내고 맨날 세계 멸망 이후의 생존기술이랍시고 가르쳐주셨어. 서바이벌 책을 주면서 농사, 채집, 집짓기, 사냥, 응급처치…. 여덟 살 때는 살모사 새끼를 자루에 넣어주고서 산속에 버려놓고 일주일 뒤에 찾으러 왔었지. 어쩌긴 어째. 배가 고파지니 때려죽여서 껍질을 벗겨 먹었지.
내가 꼬마 때에는 아이티(IT) 기술이 한창 발전했었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무너지기 전, 2000년대에 말이야. 그런데 다른 애들 다 다니는 학교에 안 보내주고 컴퓨터도 안 사주고 산속에서 그렇게 키우니 아버지한테 불만이 많았지. 늘 하는 말이 석유와 원자력발전을 전혀 쓰지 않고 살아야 한다고 모터를 분해해서 풍력발전기 만드는 방법도 가르쳐주시고. 그때는 아버지가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선견지명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소 뒷걸음치다 쥐 잡기일까.
예언 얘기? 내가 다섯 살 때 앓으면서 예언을 시작했거든. 나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고열과 두통 속에 환시를 보면서 그걸 말하면 아버지가 받아 적은 거야. 처음에는 마이클 잭슨 사망, 이명박 전 대통령 당선이랑 탄핵, 뭐 이런 유명인이나 정치인의 미래가 보였어. 그러다가 점점 동남아 쓰나미, 남극 빙하 붕괴 이런 게 보이더니, 어느 날은 또 열병이 나면서 전세계의 석유 유정에 불이 나서 하늘이 검은 연기로 새카맣게 뒤덮이는 모습을 본 거야. 그래서 아버지가 그걸 ‘해가 보이지 않는 날’이라고 이름을 붙였지. 그렇게 2012년 이명박 대통령 탄핵이랑 그 무서운 ‘중미전쟁’을 예언해 맞히면서 세상 사람들이 날 알게 되었지.
우리 아버지를 인정해 드려야 하는 게, 내 예지력 가지고 한밑천 마련할 수 있었는데 그러질 않았어. 사람이 순수하셨어. 여하튼 아버지는 나를 통해 지구의 운명을 대강 예측하고는 그길로 식구들을 데리고 계룡산으로 이사를 온 거지. 충북 단양 쪽에도 우리같이 수상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계룡산은 주로 도참사상 쪽이고 단양 사람들은 노스트라다무스나 서양 종말론 믿는 이들이 많았어.
내 예언 얘기는 여기까지만 할게. 내 자랑을 한 것 같은데 기분이 좋지 않아. 어린아이가 ‘해가 보이지 않는 날’ 따위를 미리 본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누가 알아주겠어?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아이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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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포포카테페틀 화산에서 지난 11월20일 증기가 분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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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중미전쟁 발발은 정말 갑작스러웠어. 북한 붕괴를 시작으로 중-미 주도권 싸움이 났는데 일이 그렇게 커질 줄 몰랐다고. 난다 긴다 하는 학자들, 정치가들도 몰랐다고. 석유도 안 나는 한반도에서 두 강대국이 석유를 두고 다투는 전쟁을 시작할 줄 누가 알았겠어. 그때 정말 힘들고 처참했지. 사람이 사람이 아닌 시절이었지. 어쨌든 그때 미국이 패전해 도망가면서 아랍 유정에 불을 죄다 붙였지. 진짜 파국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어. 가뜩이나 수십 년 내 고갈이 예정된 석유가 당장 공급이 끊어지면서 기업들이 줄도산이 났지. 그리고 미국이 모라토리엄? 그, 국가부도가 나고… 그러면서 도미노처럼 아시아, 유럽연합, 남미 국가들 쓰러지고… 공무원 월급을 못 주는데 어느 나라가 버틸 수 있겠어.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였지. 군대와 경찰이 해체되고, 무정부상태가 되고… 그 시절 잘 먹고 사치하던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보다 더 굶게 되었으니… 부자들은 그래도 살길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은행 예금이고 화폐고 휴지조각이 되니깐 별반 다르지 않더라고. 당장 먹을 게 없는데.
그래서 2015년쯤 되니까 다들 폐허가 된 도시를 탈출해 안전한 시골이나 산속으로 밀려들어왔어. 그때에야 우리 아버지가 나한테 생존기술 가르쳐준 것이 쓸모가 있더라. 우리 마을은 중미전쟁 때 폭격도 받지 않았고. 계룡산 도인들은 전쟁 내내 모두 무사했거든. 그리고 산에다 작게 화전 일궈 농사짓고 자급자족하니깐 굶어죽을 일도 없었어. 그래서 그 난리통에 도시 사람들이 거지꼴을 하고 바싹 말라서 산으로 들어왔지. 우리가 그네들 정착하는 거 다 도와줬어. 예전 ‘풍요의 시대’에 차타고 대형마트 다니고 밤에 불 켜놓고 겨울에 난방 틀고 여름에 에어컨 쐬던 사람들이라… 정착하는 거 쉽지 않았다. 또 혼란을 틈타 옛날 얘기에서나 듣던 화적이 나타나서 약탈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지금처럼 사람들이 농사일 배워 주경야독하고 자경단 꾸려서 마을 단위 자치조직을 꾸린 게 겨우 10여 년 전이야. 이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데만 30여년이 걸렸지.
이제는 우리가 펑펑 쓰고 버리던 옛날 습관을 버리고 아쉬운 대로 만족하면서 겨우 숨 돌리고 살게 되었지. 그게 바로 자본주의의 종말이라고. 자본주의의 종말. 쯧. 지금 자라나는 학생들은 잘 몰라. 예전에는 신문 종이도 이런 부슬부슬한 똥종이가 아니었어. 나무 베다가 빻은 고급 펄프로 만들었지. 스마트폰이란 것도 썼어. 컴퓨터, 노트북 같은 것도 있었어. 집집마다 큰 티브이 사고 자동차도 타고 다니고, 화물차도 있고, 잘사는 집은 벤츠, 아우디? 또 뭐 인텔, 애플, 삼성, 엘지, 현대… 그런 대기업들이 해마다 엄청난 신제품을 만들어 선보이면 멀쩡한 물건을 버리고 새로 사기도 했지. 이제는 그런 게 어딨어. (하얀 종이상자를 열면서) 이것 봐. 이게 아이폰이란 건데, 지금 골동품 시장에 가면 금 한 덩이랑 바꾸지. 그래도 이건 나 죽을 때까지 안 팔 거야. 도시에서 온 내 첫 아내가 쓰던 거거든. 이걸로 전화도 하고 음악도 듣고, 또 지금은 인공위성이 다 추락해서 소용이 없지만, 지피에스(GPS)라고 해서 위치도 뜨고. 참 신기한 물건이었지. 이걸 보니 옛날 아내 생각이 나네 허허. 2031년에 다 사라진 줄 알았던 천연두 변종이 전세계에 돌았거든. 자본주의 종말을 이기고 살아남은 지구 인구의 절반이 또 더 죽었는데, 그때 그이도 속수무책으로 앓다가 죽어버렸지. (이때 현재의 부인 최보람씨가 끼어들었다. “켜지지도 않는 거 버리라고 몇 번을 말해? 궁상맞아 정말.”) 거 좀 인터뷰하는데 가만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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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부터 중국이 석유 채굴에 참여하고 있는 이라크 바스라 지방의 유전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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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우스 별로 날아간 거부 2만명 실종사건
아,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거 하나만 말할게. 시리우스 이주민 얘기 들어봤지? 중미전쟁에서 살아남은 미국 사람들 중에 거부들이 있었어. 그들이, 영국 행성간 협회의 대달루스 계획이라고 있었는데, 수소폭탄을 터뜨려 날아가는 큰 우주선을 타고 다른 별로 이주하려는 구상이야. 결국 그들이 그 미친 짓을 해냈지. 우주선 세 대를 지어서, 콜럼버스 원정대라나, 뉴아메리카를 세우러 간다나… 전세계 부자들 2만명이 그걸 타고 8.6광년 떨어진 시리우스로 날아간 게… 10년 전이니 2044년인가? 그 갑부들은 욕망을 절제하며 소박하게 살자는 ‘가난한 신문명’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야. 가긴 갔는데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이 없지. 무사히 도착해서 정착을 했다면 그네들이 언젠가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지.
이제 와서 털어놓는 건데 예언 같은 건 없어. 내가 어릴 때 아파서 본 것들은 죄다 뒤죽박죽 환시고 착시야. 아버지가 신문이랑 뉴스 보면서 당신 믿고 싶은 대로 내 얘기를 끼워 맞춘 것들이 그럴싸하게 맞았던 게지. 그런 허황된 것 믿지 말고 미래 들여다볼 생각 말고, 오늘 하루 밥 잘 먹고 웃고 칭찬해주고 살자고. 이제 우리 마을은 다 그래. 그게 살길이지….
이응일/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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