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01.05 11:53 수정 : 2012.01.05 11:53

[매거진 esc] 사랑은 맛을 타고

벌써 10년 전이다. 봄빛이 완연하던 그해 4월, 나는 중학교로 교생 실습을 나갔다. 실습이 4주차 막바지에 들어선 어느 날 종례시간, 지도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에게 내일은 점심때 비빔밥을 해먹자며 몇 가지 준비물을 챙겨오라고 하셨다. 다음날 메뉴가 비빔밥이었던 모양이다. 선생님께서는 식판에다 따로 먹는 비빔밥이 아닌 양푼 같은 큰 그릇에 조를 나누어 비벼 먹는 이벤트를 생각하신 것 같았다. “내일 점심은 교실에서 애들이랑 같이 드세요, 선생님!”

색다른 이벤트에 마음이 들떠 퇴근을 하던 나는 ‘내일 내가 뭐 할 게 없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내일 있을 비빔밥 이벤트에 애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작은 음식이라도 만들어 가 내 몫을 하고 싶었다. 혼자 밥해 먹기도 버거운 자취생에게 너무나 부담스러운 계획이었지만,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슈퍼에서 달걀 한판을 샀다. 마침 학급 아이들 인원이 꼭 30명이라 달걀프라이를 서른개 만들어 가면 한사람당 하나씩 딱 맞을 것 같았다.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달걀프라이를 했다. 달걀 두개도 한꺼번에 요리하기가 어려운 작은 프라이팬에다 30개를 하자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한시간이면 되겠지 했던 요리는 어느덧 두시간이 넘어버렸다. 하지만 하던 일을 그만둘 수도 없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지각을 했다. 막바지에 정신이 해이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것 같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선생님, 오늘 늦으셨네요! 오늘 전학생이 한명 왔어요. 참고로 알고 있으세요.” 그저 얼굴만 벌겋게 달아오른 나는 지도 선생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점심시간 아이들은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조를 나누고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대용량 비빔밥을 만들었다.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준비한 달걀프라이를 아이들 그릇에 하나씩 덜어주었다. “선생님, 이거 하시느라고 오늘 늦게 오셨구나. 너무 감동인데요.” 지도 선생님은 활짝 웃으셨다. 아이들도 감동했는지 저마다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게 웬일인가! 다 주고 나니 마지막 순서를 기다리던 아이에게 줄 것이 없었다. 그제야 아침에 온 전학생이 생각났다. ‘이런, 30개 딱 맞춰서 해 왔는데, 어쩐다.’ 멋쩍게 서 있는 내게 옆에 있던 한 녀석이 대뜸 “선생님, 그럼 우리 조는 프라이 나누지 말고 다시 큰 그릇에다가 다 넣어서 달걀도 다 같이 비벼요.”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을 나는 왜 꼭 나눠야 한다고만 생각했을까! 다시 그릇에 옮긴 비빔밥과 달걀프라이! 나보다도 더 어른스러운 생각을 하는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날 나는 가장 맛있는 비빔밥을 먹었다.

임주성/대전광역시 유성구 노은동

◎ 주제 내 생애 잊을 수 없는 특별한 맛

◎ 분량 200자 원고지 8장 안팎

◎ 응모방법 esc 블로그 ‘사랑은 맛을 타고’ 게시판에 사연을 올려주시거나 한겨레 요리웹진 끼니(kkini.hani.co.kr)의 ‘커뮤니티’에 내용을 올려주시면 됩니다.

◎ 상품 네오플램 친환경 세라믹 냄비 ‘일라’ 4종과 세라믹 프라이팬 ‘에콜론팬’ 2종.

◎ 발표·게재일 개별 연락/격주 목요일 한겨레 매거진 esc 요리면

◎ 문의 mh@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