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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12 14:08 수정 : 2012.01.12 14:08

1. 지난달 31일 강원 양양 기사문리 앞바다에서 한 서퍼가 파도를 타며 점프를 시도하고 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강원도 앞바다에서 겨울서핑 즐기는 사람들…보온슈트 착용은 필수

지난달 31일 아침 8시, 강원도 양양 기사문리 해변. 영하의 추위 속, 매서운 바람과 함께 높이 2~3m의 검푸른 파도가 겹겹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쉴 새 없이 해변을 덮친다. 막 떠오른 아침 햇살 아래, 밀려오고 부서지는 파도 사이로 7~8개의 검은 점들이 떠 있다.

“미쳤군, 미쳤어. 이 추위에 바닷물에 들어가 뭣들 하는 건지.” 털모자·장갑에 목도리까지 중무장을 하고 해변 산책을 나온 여행객 서너명이, 눈 쌓인 모래밭에서 검은 점들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같은 시각, 바다에 뜬 검은 점들 중 하나인 고성용(30·양양 기사문리)씨. 보드에 엎드려 헤엄치며 큰 파도 몇개를 그냥 보내고, 멀리서 다가올 더 큰 파도를 기다렸다. 작은 파도는 타넘고, 부서져 덮치는 큰 파도는 덕다운(오리처럼 잠수하는 기법)으로 헤치고 자세를 가다듬는다. ‘큰 놈이다!’ 이윽고 애타게 기다리던 거대한 너울이 주변의 잔파도를 삼키며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재빨리 파도 진행방향으로 몸을 돌려 파도의 정점에 오르는 순간, 보드에 올라 두 발을 딛고 선 뒤 몸을 낮춰 균형을 잡았다. ‘테이크 오프’(파도를 타고 일어서는 동작) 성공. 고씨는 해안을 향해 줄달음치는 파도의 앞면을 타고 오르내리며(업 다운), 수시로 파도의 정점을 치고 올라가 몸을 솟구친 뒤 방향을 틀어 내려오는 공중돌기(에어리얼)를 즐겼다. 해변에선 탄성이 터져나왔다. “우와, 멋진데!” 거대한 파도의 크기에 놀라고, 그 파도와 한 몸이 돼 펼치는 화려한 기술에 놀란 구경꾼들의 감탄사다.

춥지만, 추위 무릅쓴 것 이상의 짜릿한 재미 점심때가 다 돼서야 물 밖으로 나온 고씨에게, “3시간 이상 탔는데, 춥지 않으냐”고 물었다. 간단한 답이 돌아왔다. “물에서 나오니까 춥네요.” 그러면서 “물속에서도 춥지만, 추위를 무릅쓰고 탈 만한 짜릿한 재미가 있어 나오기가 싫어진다”고 했다. 겨울서핑 경력 2년의 오준상(37·서울 길음동)씨와 경력 1년의 이정훈(36·서울 목동)씨는 한술 더 떴다. “아마, 해변에서 구경하는 분들보다는 덜 추울 겁니다.”

제주도 출신 고성용씨는 경력 11년의 서핑 마니아다. 중3 때부터 바닷가에서 보드를 타고 놀다, 고교 졸업 뒤 서핑에 본격 입문하며 실력을 쌓아온 토종 서퍼다. 그는 “흔히 서핑을 여름에만 즐기는 걸로 알고 있지만, 의류 등 장비를 갖추면 사철 가능한 레저활동”이라며 “특히 겨울엔 파도가 크고 깨끗해 특별한 멋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서핑인구 10년 전 10명, 지금은 5000명 급증 한겨울 바닷물에 들어가 서핑을 즐기는 이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국내에서 서핑을 즐기는 이들이 생긴 건 불과 10여년 전. 당시엔 전국에 서핑을 한다는 사람이 10여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대부분이 오스트레일리아나 미국 등에서 서핑을 접하고 돌아온 이들이었다. “국내에 서핑을 할 만한 곳이 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때죠.” 알음알음으로 몇몇 동호인들끼리 모여 국내 해변의 파도 방향을 알아내고, 서핑 포인트를 찾으며 파도타기를 즐겨왔다고 한다.


해안이 태평양과 접해 서핑 인구가 300만~400만명을 헤아리는 일본이나, 서핑이 국민스포츠로 자리잡은 오스트레일리아 등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국내 서핑 인구도 매년 50~100%씩 증가하는 등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 서핑 인구는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현재 3000~5000명가량이 가끔씩이라도 서핑을 즐기는 것으로 추정된다. 봄~가을은 물론, 한겨울에도 파도타기를 즐기는 마니아층은 전국에 200~300명 정도. 모험심이 강하고 새로운 레저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30대 남성이 겨울 서핑의 주축이다. 체중감량 효과 때문에 서핑숍을 찾는 여성도 늘고 있다고 한다.

2. 서프보드는 한쪽 발목에 줄로 연결해야 한다. 3. 기사문리 해변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인 영어강사 바네사가 물에 들어가기 전 몸을 풀고 있다.

겨울서핑, 바다 쪽에서 보는 설산 풍경 압권 강추위를 무릅쓰고 즐기고 싶은 겨울서핑의 재미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4년 경력의 전원철(30·양양 기사문리)씨는 “겨울엔 강풍이 자주 불기 때문에 파도가 크고 예쁘게 나온다”며 “국내의 경우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뽐낼 수 있는 때가 바로 겨울”이라고 말했다. 봄~가을에 비해 해변의 인파가 적어 한적한 것도 장점으로 꼽는다. 여기에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쾌감도 있다. 바닷물에 떠서, 파도를 기다리며 감상하는 육지 쪽 설산 풍경이 압권이기 때문이다. 특히 눈 내린 직후나, 눈 내릴 때 즐기는 서핑은 “안 해본 사람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겨준다고 한다. 겨울서핑을 즐기는 이들이 늘어나는 데는, 남이 잘 못하거나 안 하는 색다른 레저활동을 즐긴다는 자부심도 한몫한다. 서핑 동호인들은 해마다 새해 첫날 새벽 동해안에 모여, 일출에 맞춰 일제히 파도를 타는, ‘해맞이 서핑’을 즐기기도 한다.

애타게 기다린 뒤에야 밀려오는 절정의 파도 마니아들은 서핑을 “기다림, 그것도 애가 탈 정도의 기다림을 동반한 레저활동”이라고 말한다. 우선 강한 바람이 불어 서핑을 할 수 있는 2m 안팎 높이의 파도가 만들어질 때를 기다려야 한다. 현장에 도착해 바닷물에 들어간 뒤에도 기다림은 계속된다. 멋지게 서핑을 즐기려면, 잔파도는 그냥 넘겨버리고 “잘생기고, 탄탄해서 잘 부서지지 않는 대형 파도”를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 고성용씨는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오지만, 매번 크기와 형태가 다르다”며 “멀리서 봐도 크고, 일정한 높이로 조금씩 부서지며 다가오는 파도를 골라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랜 기다림 끝에 막상 서핑을 즐기는 시간은 1분이 채 안 된다. “파도 끝을 잡고 일어서서, 쏟아지는 거품을 피해 파도 안쪽 면을 따라 라이딩하며, 파도가 거품으로 완전히 부서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보통 20초 안팎이다.

체온 유지 위해 보온장비 필수 겨울서핑을 즐기려면, 특수의류 등 보온을 위한 장비가 필수적이다. 여름엔 반바지 차림이면 족하지만, 겨울엔 체온 유지를 위해 전신용 ‘습식 슈트’(wet suit), 머리와 목을 감싸는 후드, 장갑이 있어야 한다. 슈트의 재질은 부드러운 고무(네오프렌)로, 봄가을엔 두께 3㎜ 안팎, 겨울엔 5㎜짜리를 입는다. 습식 슈트로 불리는 건, 옷 안으로 물이 조금씩 스며들어와 몸을 적시기 때문이다. 바닷물이 체온으로 데워지며 막을 형성해 쉽게 열을 빼앗기지 않는다. 보온 슈트 덕분이기도 하지만 영하의 날씨라고 해도 바닷물 속에선 추위가 덜 느껴진다고 한다. 수온이 한겨울에도 영상 4~7도여서, 바깥 기온보다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 들어가면 2~3시간 이상 파도를 타며 머물게 되므로, 반드시 보온 슈트를 입어야 한다.

겨울엔 동해안, 여름엔 남해안이 적지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지만, 태평양 등 큰 바다와 접하지 않아, 미국 등의 해변에서와 같이 일정하게 밀려드는 4~5m의 큰 파도는 만나기 어렵다. 국내에서 파도타기를 즐길 만한 곳으로는 제주도 중문 해변, 부산 해운대와 송정 해변, 그리고 양양의 기사문리 해변 등 동해안 북부 해안이 꼽힌다. 남풍이 부는 봄~가을엔 제주도나 부산 해안에서, 북동풍이 부는 겨울엔 동해안 북부 해안에서 주로 서핑을 즐긴다. 고성용씨는 “파도는 크기와 상관없이 모양이 좋을 때와 나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서핑 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먼 거리에서 진행돼 온 큰 파도가 밀려들고, 여기에 맞춰 육지 쪽에서 맞바람이 불어줄 때”다. 파도의 크기와 모양이 최대한 유지되면서, 일정한 속도로 부서져내려 긴 시간 서핑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양양=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서핑 입문 정보
롱보드는 여유, 쇼트보드는 기교

초보자 입문은 여름에 | 서핑은 온몸의 근육을 사용하는 전신운동이다. 전문가들은 초보자의 서핑 입문은 여름철이 바람직하다고 권한다. 거친 파도, 혹한과 싸워야 하는 겨울철은 위험부담이 있어 되도록이면 따뜻한 여름철에 기초를 닦은 뒤 겨울서핑을 즐기라는 얘기다. 여름철이라 해도 기본 수영실력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

서핑 관련 정보는 여기서 | ‘서퍼스’ ‘서프x’ ‘서프코리아’ ‘서퍼스 파라다이스’ 등 10여개 인터넷 카페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겨울철 서핑객이 많이 찾는 강원도 양양 일대엔 기사문리 등에 서퍼스, 펀서프 등 5개의 서핑 관련 렌털숍과 판매장이 있다. 부산·제주·포항 등 서핑이 가능한 지역마다 서프클럽이 있다. 서핑 관련 공인 자격증은 아직 없다. 렌털숍·판매장에서 초보자 강습과 체험, 장비 대여를 해준다. 초보자 1일(2시간) 강습·체험(강습과 습식슈트·보드 등 장비 대여 포함)에 6만원 안팎. 장비 대여료는 보드 2만5000원, 습식슈트 1만원. 기사문해변 서퍼스 070-4400-9995, 펀서프 010-9049-8227.

서핑 장비들과 가격은? | 보드는 롱보드(약 3m 안팎)와 쇼트보드(약 2m 이하)로 나뉜다. 너비는 50~60cm. 이 사이에 중간 크기인 펀보드가 있다. 보통 롱보드는 편하고 여유롭게 즐길 때 사용하고, 쇼트보드는 속도감과 역동적인 기교를 즐길 때 사용한다. 신품은 80만~120만원, 중고품은 40만~50만원. 습식슈트는 봄가을용(두께 3mm) 20만~30만원, 겨울용(5mm) 50만원대. 후드·장갑은 각각 4만~5만원, 부츠는 6만~7만원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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