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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26 14:28 수정 : 2012.01.26 14:28

[매거진 esc] 장터의 재발견 5대 전통시장 탐방기

정류장은 오늘도 당신을 기다린다. 하루 두 번 스치듯 지나는 당신이지만 정류장은 출근길 잰 구두소리를 들으며 당신의 일과를 가늠하고, 오후의 지친 어깨를 보며 고된 하루를 위로한다.

여기 당신의 일상에 또 하나의 정류장이 되기를 바라는 시장이 있다. 전라남도 순천시 동외동 168-1번지, 100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순천 웃장. 긴 세월에도 옛 시장의 원형을 잃지 않고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상설시장과 오일장, 노점상이 함께 어우러져 정과 흥을 나눈다.

100년 전통의 시장답게 토박이 상인들의 자부심과 고집도 대단하다. 처음엔 시장을 바꿔보겠다며 뚝딱뚝딱 뭘 만들고 ‘이거 해보자, 저거 해보자’ 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분들도 많았다. 그럴수록 상인들을 변화의 주체로 내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천 웃장의 ‘문전성시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먼저 ‘상인 명함’과 ‘웃장 지도’를 만들기 위해 상인 한 분 한 분을 만나 개인사와 상점의 역사, 가게의 특색을 새겨 넣었다. 모두 60여명의 상인들이 참여해 점포별 개성이 드러나는 ‘웃장표 명함’이 제작되었다. 처음엔 전문 사진작가를 초빙해 스튜디오에서 멋진 프로필 사진을 시도했다. 다들 뻣뻣이 얼어 계시는 통에 영 그림이 나오질 않았다. 똑딱이 카메라 10대를 사 이웃 상인끼리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것으로 방법을 바꿨다. 그제야 숨어 있던 상인들의 진짜 표정들이 살아났다. “30년 동안 노점에서 장사했는데, 내 명함은 처음으로 가져본다”며 손잡아주시던 분들을 보며 이제 뭔가 해볼 수 있겠다는 희망을 봤다.

순천 웃장의 진국은 스토리북에서 만날 수 있다. <순천 웃장 스토리북 정류장>은 상인 42명의 삶과 애환을 기록한 책이다. 책 제목 ‘정류장’(情流場)은 정이 흐르는 시장의 줄임말이다.

“한 35년 넘었제. 묵고살 길 없어 시작했지만, 이 국밥집으로 5남매 키우고 결혼꺼정 시켰어. 그동안 헛돈 한번 안 써봤네. 우리 집에 맥주가 저렇게 많아도 내가 맥주 한 병을 터서 안 묵어봤어.” 올해로 일흔하나, 순천 웃장 국밥골목 큰누님인 순흥식당 ‘임순애’씨는 손님이 있건 없건 30년을 넘게 매일 새벽 4시 가게 문을 연다.

서로 다른 사연과 표정을 지닌 사람들이 들고 나는 정류장은 묵묵히 같은 자리에서 당신을 기다린다. 가끔은 텅 비었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붐비는 정류장. 정 깊은 상인들이 오랜 기다림으로 만들어온 순천 웃장은 마치 정류장을 닮았다. <끝>

글·사진 모세환/이벤트 전문가·문전성시 프로젝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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