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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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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성공의 상징에서 세련된
필기구로 젊은층 인기 급상승 중
서걱서걱. 양복 안주머니에서 미끄러져 나온 만년필이 펜촉을 번쩍이며 종이 위에서 춤을 춘다. 대통령의 역사적인 공동선언문 조인식일까, 재벌 회장님의 수천만달러짜리 계약일까?
이처럼 오래전부터 권위와 성공의 동의어처럼 여겨졌던 만년필이 최근 어깨의 힘을 빼고 있다. 번쩍거리고 묵직한 ‘아저씨 느낌’의 디자인으로 적게는 수십만원, 많게는 수천만원을 넘나들던 만년필 대신 10만원 안팎의 저렴한 만년필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라미·파버카스텔·펠리칸 등 젊고 세련된 외국 브랜드의 만년필 제품도 다양해지면서 젊은층에게 ‘손글씨 쓰기’의 욕구를 일으킨다. 자, 그렇다면 ‘esc’와 함께 만년필 쓰기에 도전해보자. 스마트폰 ‘터치’하느라 글씨 쓰는 법을 잊어버리기 전에!
만년필, 원래 안 비싸요 여기서 질문 하나. 손글씨 쓸 일 없는 시대에 만년필을 쓰는 이들은 왜 늘어날까? 그 이유를 최근 20~30대 젊은 회원이 2배 가까이 늘어났다는 국내 최대 만년필 온라인 동호회 ‘펜후드’(Penhood)의 회장과 만년필 연구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박종진(42·회사원·사진)씨에게 물어봤다. “쓸 일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죠.” 이게 무슨 말인가. 쓸 일이 적어지니 오히려 잠깐 글씨를 쓰더라도 자기 스타일에 맞춘 문구류로 쓰겠다는 욕구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균형을 맞춘다고 생각하거든요.”
국내 몽블랑 등 고가 만년필 중심으로 수입되면서필기구 아닌 장식품으로 자리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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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펠리칸 스크립트 P52(2만5000원대) 2. 파커 아이엠 프리미엄(7만원대) 3. 파커 아이엠 프리미엄3(6만원대) 4. 워터맨 헤미스피어(10만원대) 5. 라미 사파리(4만9000원) 6. 파버카스텔 앰비션(10만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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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만년필을 보는 시각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필기구 또는 장신구. 실제로 파커·워터맨 등 명성이 높은 만년필 브랜드에도 값싼 제품이 많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만년필이 보급된 초창기부터 비싼 제품들만 소개되면서 ‘아무나 쓰기 힘든 필기구’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초등학생도 부담 없이 쓰는 필기구인데, 우리나라 업체들이 화려한 ‘장신구’에 가까운 제품들을 주로 들여왔기 때문이죠.” 볼펜은 기름 섞인 잉크 볼 굴려 누르듯 쓰지만
만년필은 종이에 잉크를 부드럽게 묻힌다고 생각하고 써야 초보는 스틸촉에 도전을 값도 천차만별인 만년필, 처음 쓰는 이에게는 고르는 일도 만만찮다. “만년필은 펜촉의 재료에 따라 연성 펜과 경성 펜으로 나눌 수 있어요.” 연성 펜은 18K 금으로 도금한 금촉을, 경성 펜은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든 스틸촉을 쓴다. “누르면 잘 구부러지고 벌어지는 금촉펜은 글씨에 기교를 부리고 싶거나 캘리그래피를 하는 데 적합하고, 볼펜 쓰는 데 익숙한 초보자들은 잘 안 구부러지는 스틸펜이 적합하죠.” 만년필 펜촉의 수명은 일반적으로 300만~600만자 사이다. 금촉은 멋을 내기 위해 제품에 따라 크기가 제각각이지만, 스틸펜은 대부분 펜촉의 크기가 비슷하다. 펜촉의 굵기도 꼼꼼히 따져야 한다. 펜촉 가운데 벌어진 틈의 크기에 따라 굵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제조사마다 펜촉이 굵기별로 나오기 때문에 쓰기 편한 굵기를 고르면 된다. 박 소장은 만년필 초보자가 겪는 가장 큰 실수로 ‘볼펜처럼 쓰는 습관’을 꼽는다. “만년필과 볼펜의 차이를 이해해야 하거든요. 물과 기름의 차이와 같아요. 볼펜은 기름 섞인 잉크를 볼을 굴려 누르듯 쓰지만, 만년필은 종이에 잉크를 부드럽게 묻힌다고 생각하고 써야 하거든요.” 가장 좋은 자세는 펜촉의 금속 부분을 하늘로 향한 채, 엄지와 검지에 힘을 주지 말고, 손목을 50~55° 정도 세우고 쓰는 것! 카트리지 교체 방식, 피스톤 충전 방식 등 다양한 잉크 충전 방식은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뚜껑을 제대로 닫는다면 요즘 만년필은 잉크가 새는 일이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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