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02.16 15:19 수정 : 2012.02.16 15:19

김성환 기자

[매거진 esc] 김성환 기자의 기계적 삶

기계식 키보드와 블랙베리 휴대전화

마감을 앞둔 기자실 오후 풍경은 늘 싸늘하다. 그 싸늘함 속에서 말 한마디 안 나누는 기자들이 키보드를 악기 삼아 교향곡을 연주한다. 타르르륵 타르르륵. 탁탁탁 탁탁! 누군가가 신경질적으로 백스페이스 자판을 가열차게 누르면 ‘기자실 교향곡 쿼티(Qwerty) 1악장’ 이 완성된다.

기자에게 키보드는 투수와 글러브의 관계를 닮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기자들 대부분은 그저 회사에서 나눠 주는 글러브를 감사히 받아 쓸 뿐이다. 그래서 비슷한 종류의 노트북 키보드를 연주하는 교향곡 안에는 엇박자만 있을 뿐 개성 있는 소리는 없다. 가끔은 이 완벽한 협연이 한여름 왕나방 수백마리가 전속력으로 해충 퇴치 램프로 돌진해 장렬히 산화하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처럼 남이 내는 자판 소리에 실없이 속으로만 구시렁대던 중, 우연히 키보드에 눈을 뜨게 됐다. “너희가 펜타그래프 키보드를 아느냐”며 자랑했던 회사 선배의 키보드가 내 손에 들어왔다. 아니, 그가 버리고 간 걸 민첩하게 주웠다. 그동안 노트북에 연결해 쓰던 9900원 인터넷 특가 판매 키보드와 다르게 묵직한 소리가 났다. 아, 지구상에는 유선과 무선 키보드만 있는 게 아니었구나.

알고 보니 키보드도 입력 방식에 따라 그 종류가 다양하다. 가장 대중적인 건, 멤브레인과 펜타그래프 방식. 나의 소중했던 9900원짜리 키보드는 멤브레인 방식. 자판(키캡) 밑에 두더지 게임 속 두더지처럼 볼록하게 나온 고무를 눌러 찌그러지면서 기판과 닿아 신호를 입력한다. 컴퓨터 살 때 함께 오는 중저가 키보드 대부분이 멤브레인 방식이다. 펜타그래프 방식은 볼록한 고무 대신 단단한 고무 소재의 X자 버팀목이 스프링 구실을 한다. 예전에 한창 마감 중에 망가진 노트북의 ‘ㄹ’ 버튼을 떠올려보니, 펜타그래프 방식이었나 보다. 멤브레인 방식보다 자판 크기를 줄일 수 있고, 힘을 덜 주고 누르기 때문에 노트북 키보드에 많이 사용한다.

결국, 키보드가 내는 소리는 플라스틱 자판이 키보드 바닥과 부딪쳐 내는 소리다. 내 뜻대로 입력이 안 되면 자판을 더 세게 누르고, 키보드는 신경질적인 소리를 낸다. 그러나 오래전 타자기가 그랬듯이, 컴퓨터용 키보드도 원래는 버튼마다 독립적인 철제 스프링이 달린 기계식 방식이었다. 하지만 원가 절감을 하려는 컴퓨터 제조업체들이 좀 더 값싼 멤브레인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 둔탁한 소리를 내는 기계식 자판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 스위치의 압력을 조절할 수도 있고, 아예 나무로 깎아 만든 수제 기계식 키보드도 있다. 심지어 비싸다. 그래도 사람들이 다시 기계식 키보드를 찾는 건, 모니터에 뜨는 ‘알 수 없는 치명적인 오류’ 알림과 미로처럼 어려운 스마트폰 연락처 옮기기에 상처 받으면서 그저 내 뜻대로 반응해주는 도구가 그리워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펜타그래프 키보드를 교훈 삼아 한 달 전 아이폰을 버리고, 자판이 잔뜩 달린 블랙베리를 샀다. 액정 화면은 볼품없지만, 누르면 ‘꾸익꾸익’ 소리를 내는 블랙베리 자판은 터치스크린의 ‘가짜 키보드 소리’보다는 훨씬 믿음직스럽다. 블랙베리야, 넌 내 마음 알지? 모르면 말고.

김성환 기자hwany@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