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2.22 18:28
수정 : 2012.02.22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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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플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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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매력 가득, 숙소 안에서만 시간 보내도 즐거운 펜션 여행
서산 ‘제로 플레이스’
빈티지 콘셉트의 유명 가구
객실마다 놓인 소프트 욕조
국내 여행을 떠나기 전 가장 많이 알아보는 것 중 하나가 펜션이다. 치열한 경쟁으로 다양한 콘셉트의 펜션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잠만 자기에는 아까운 곳이 많다. 심지어 주변에 여행지가 변변치 않아도, 펜션에만 머물러도 좋을 만한 곳이 늘고 있다. 담백한 또는 화려한 멋 내뿜는 펜션! ‘디자인 여행’을 떠나기 딱 좋은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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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켄. 윤준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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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안팎에 담백함과 자연스러움 물씬 지난 16일 오후, 충남 서산시 해미면의 황락저수지는 겨울 한복판의 느낌 그대로다. 저수지의 불투명한 얼음과 주변의 낮은 가야산 자락은 포근한 듯하면서도 을씨년스럽다. 빈티지 콘셉트의 펜션 ‘제로플레이스’의 주변 풍경이다. 예상치 못한 곳에 놓인 이 펜션은 멀리 떨어져서 보니, 검붉은 외관에서 묵직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자연의 풍광 속에 녹아든다. 가까이서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제로플레이스는 20여년 동안 음식점으로 쓰이던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건물의 바깥을 둘러싸고 있던 붉은 벽돌을 떼어 냈다. 떼어 내기만 했다. 외벽에 다른 처리를 하지 않았다. 깨진 붉은 벽돌의 질감과 벽돌 안에 검은 내벽이 드러났다. 제로플레이스 뒤편에 펼쳐진 언덕 위의 오래된 소나무 기둥 같다. 건축물이 ‘나는 주인공입니다’라고 외치지 않는다.
건축물 내부에는 어두운 겉과 달리 반전이 펼쳐진다. 5개의 객실 모두 따뜻한 나무 질감과 흰색 침구의 빛이 눈부시다. 이 건물을 설계한 노경록 건축가는 “빈티지 콘셉트를 일관되게 추구하되 건축물의 내부와 외부 사이에 확연하게 차이점이 느껴지도록 의도했다”고 설명한다. 그 의도는 성공한 듯싶다.
주방 및 침대 등 기본 가구는 독특한 디자인 가구로 유명한 퍼니그람, 화장대와 식탁 등 오브제 가구는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젊은 수제 가구 카레클린트의 제품들이 들어와 있다. “건물 내부에서 ‘빈티지 디자인’을 담고자 천장과 벽면의 기존 벽돌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자작나무 등을 쓴 가구에서는 원래 재료의 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고 노씨는 말한다.
5개의 객실은 모두 황락저수지 쪽을 바라보고 있다. 늦은 오후의 햇빛은 객실을 깊숙이 비췄다. 여기서 끝일까? 아니다. 하이라이트는 객실마다 갖춰진 욕조다. 레드닷 디자인어워드에서 상을 받아 유명해진 국내 디자인그룹 ‘화이트스파’의 소프트 욕조다. 딱딱하지 않고 폭신한 욕조다. 이 욕조를 침대 옆에 바로 둔 객실도 있다. 다소 과한(?) 실험이 아닐까 싶었지만, 방문객들 사이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은 요소란다.
1층에 마련해 놓은 카페 공간은 예술가의 작업실 같다. ‘제로플레이스’의 의미는 ‘모든 것을 비워놓고(0) 가는 곳’. 예술가가 아니라도 창조적 작업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머릿속 잡념을 비워내는 데 이만한 공간이 없을 듯하다. 참 담백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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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플레이스의 야경. (제로플레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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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맞아? 현대적이고 도회적인 건축미 바다도 바다 나름이다. 서해안의 바다가 ‘낙조’가 유명하지만, 주변 절벽이나 모래사장 정도가 어울렸을 때의 이야기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다. 바다가 곁에 있지만, 그 곁은 황무지에 가깝다. 오직 건축물이 있을 뿐이다. 충남 태안군 남면의 ‘스파하우스 모켄’ 이야기다. 이 건물을 설계한 이뎀도시건축의 곽희수 대표도 부인하지 않는다. “‘놀러 간다’는 것은 ‘놀 자리를 찾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주변에 강이나 산 등 변변한 볼거리가 있는 곳이 아니에요. 그래서 건축물 내부의 프로그램을 강화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매력적이고 강력한 텐트’를 친다는 개념은 이런 환경에서 비롯됐죠.”
건축 디자인에는 다양한 건축 개념과 이론이 적용됐다. 대표적인 것이 단위 조직을 결합해 유기적으로 증식·변형시켜 건축물을 구성하는 ‘메타볼리즘’이다. 원래 이 용어는 ‘신진대사’를 뜻한다. 모켄의 개별 가구들은 하나하나의 단위 조직인 셈이다. 비전형적인 형태와 공간은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아 기계 같기도 하고, 복잡해 보인다.
복잡하면서 ‘다단’하다. 객실 내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축 디자인의 요소다. 1층과 2층, 이런 식으로 한 층을 확실히 구분하지 않았다. 경사지라는 환경을 적극적으로 건축물 내부에까지 끌어들였다. 반층이 내부에서 이어지는 식이다. 이런 장치로 1.5층의 높이를 확보해 개방적이면서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을 연출했다.
태안 ‘스파하우스 모켄’
층간 구획 허무는 건축 디자인
개별 옥상에서 나만의 자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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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켄 내부에 설치된 개별 스파. (모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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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건축 디자인은 방문객들에게 ‘즐거운 우연’을 선물한다. 체크인을 하고 건축물 내부로 들어서면 연결되어 있는 다리. 마치 ‘미로’ 같다. 그런데 그 다리는 모든 객실로 연결되지 않는다. 방문객들이 길을 잃고 뒤로 돌아서는 순간, 탁 트인 풍경이 다가온다. 곽 대표는 “기능적인 건축에 익숙해져서 습관적으로 들어서는데, 미로 같은 브리지를 통해 방문객들에게 재미있는 경험을 선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개별 객실마다 전용 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이벤트는 무궁무진하다. 외부 스파와 개별 옥상(스탠다드룸 제외)은 일상을 벗어난 공간에서 ‘나만의 자연’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그저 방과 방에 딸린 테라스 정도의 전형적인 펜션과 또다른 점이다. 건축주인 홍대길씨가 세계 8개 나라를 돌면서 직접 디자인을 의뢰해 제작한 내부의 가구와 소품들을 보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이런 모켄에서의 하루 숙박료는 비싸다. 비회원인 경우, 최상급 스위트로얄은 70만원(성수기 기준)이다. 전용 공간에 대한 대가인 셈이다. 그럼에도 토요일 예약은 6월까지 꽉 찼다.
서산=글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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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tip
▣ 제로플레이스는 5년 전 지어진 펜션 ‘수화림’의 주인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제로플레이스와 수화림의 거리는 불과 200m 떨어져 있다. 객실 규모나 분위기로 보아, 2인 여행자들에게는 제로플레이스가, 가족 방문자에게는 수화림이 더욱 적합할 듯싶다. (zeroplace.co.kr)
▣ 스파하우스 모켄은 지난해 9월 문을 열었지만 이미 건축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래서 숙박을 하지 않더라도, 건축과 관련된 뒷이야기와 건축 방식 등을 소개하는 관람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관람 프로그램은 방문 전 예약이 필수다. 프로그램 가격(성인 기준 10만원) 또한 만만치 않지만, 단독주택 마련의 꿈을 가진 일반인과 건축학도들이 많이 찾는다.(mok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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