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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시 낭산면 낭산리 우금마을의 한 비닐집 딸기밭. 허리 높이 시설에서 수경재배를 하므로 서서 딸기를 수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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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백제 왕궁·절터 유적 즐비…수경재배 딸기 수확 체험 곁들인 전북 익산 여행
“아직도 익산(옛 이리) 하면 이리역 폭발사고(1977년)만 기억하는 분들이 많아 안타까워요.” 지난 24일 전북 익산시 미륵사터에서 만난 유칠선(51·문화관광해설사)씨는 “익산은, 넘치는 볼거리에 비해 관광객 발길은 상대적으로 적은, 숨은 보석 같은 도시”라고 자랑했다. 익산은 경주·공주·부여와 함께 우리나라 4대 고도(古都)로 꼽히는 곳. 백제 왕궁 유적과 동양 최대 규모의 절터, 왕릉과 고분 무리를 비롯해 4대 종교 순례지, 국내 유일의 보석박물관 등 보고 즐길 거리 즐비한 역사·문화의 고장이다. 백제인 발자취 뚜렷한 미륵산 자락에도 강변에도 벌써 봄향기를 품은 쑥·냉이가 파릇파릇 새잎을 내밀었다. 아련한 봄 내음, 진한 역사의 향기 가득한 익산 동부지역으로 간다.
석탑 기단석이 놓였던 진흙바닥
나무기둥으로 흙 다졌던 자국들
백제인 근육 움직임 눈에 잡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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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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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무왕의 왕궁터 대형 공동화장실 눈길 왕궁면 왕궁리. 말 그대로 궁궐이 있던 데서 비롯한 지명이다. 이곳에 백제말 무왕(재위 600~641년) 때 건설한 거대한 궁궐 터, 왕궁리 유적이 기다린다. 3단으로 조성한 남북 450m, 동서 234m의 장방형 터가 왕궁 자리다. 뒷날 사찰 건물터와 겹쳐진 40여개의 건물터 등이 여기서 발굴됐다.
멀리서도 탐방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석물이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호)이다. 백제 또는 통일신라시대 탑으로 추정되는 높이 8.5m에 이르는 거대한 석탑이 건물초석·기단석·탑신·옥개석들 흩어진 황량한 왕궁터에 우뚝하다. 해설사 유씨는 “관궁사·대관관사 등 글씨가 새겨진 기와들이 발견돼 궁성터에 건설된 사찰의 석탑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백제 무왕과 왕비가 거닐었을 후원 터를 바라보니 시든 잔디를 훑고 지나는 시샘 바람이 매섭다.
오층석탑과 왕궁터에서 수습된 금·유리제품, 화려한 무늬의 명문 와편, 화장실 축소모형 등이 옆의 유적전시관에 전시돼 있다. 흥미로운 것이 왕궁터에서 발굴된 3곳의 대형 화장실 유적이다. 큰 것은 길이가 10.8m, 깊이 3m에 이르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공동화장실이었다. 이곳에서 회충·편충 알이 다량 발견됐고, 바닥에선 뒤처리용으로 쓰인 납작한 나무막대기도 여러개 나왔다고 한다.
딸기 재배 비닐집 들어가자
온기 품은 봄세상이 펼쳐졌다
해체된 미륵사지 석탑서도 백제인 숨결 또렷 발길은 백제의 향기를 따라, 동양 최대 사찰터로 불리는 미륵산(용화산) 자락 미륵사지로 옮겨지게 된다. 백제 사찰 중 유일한 ‘3탑·3금당(법당)’ 사찰(보통은 백제 1탑·1금당, 통일신라 쌍탑·1금당 등)이다. 3개의 법당 앞에 2개의 대형 석탑(동·서)과 목탑(가운데)이 있었다고 한다.
국내 석탑 중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6층까지만 남아 있는 서탑(국보 11호)은 현재 해체·복원공사 중이다. 2009년 해체작업 도중 탑 내부 심초석에 꼭꼭 숨어 있던 금제사리호 등 사리장엄과 금제사리봉안기·금제금강경판 등 1400년 전의 눈부신 유물이 쏟아져나와 학계를 놀라게 했다. 사리봉안기엔 ‘백제 왕후가 좌평 사택덕적의 딸’이라고 기록돼 있어, 백제 무왕이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를 왕비로 맞이했다는 ‘삼국유사’ 기록과 다르다. 이에 무왕이 ‘서동요’의 주인공 서동인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미륵사는 무왕(서동)과 왕비(선화공주)가 미륵산 사자사의 지명법사를 만나러 가다 연못에서 출현한 미륵삼존불을 뵙고 법사에게 청해 신통력으로 연못을 메워 창건(601년·무왕2년)했다는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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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들러 차를 마실 수 있는 익산 전통차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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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증 접어두고, 절터에 깔리고 또 전시관에 보관된 탑재와 기왓장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무늬마다 백제인의 섬세한 손길이 또렷이 느껴져 감동을 준다. 해체된 서탑의 기단석이 놓였던 진흙바닥에도 노동의 흔적이 보인다. 나무기둥으로 흙을 다졌던 자국들이 드러나 있어 백제인의 근육 움직임까지 눈에 잡히는 듯하다.
몇 안 남은 기단석·옥개석 등을 기초로 복원해놓은 동탑을 통해 서탑의 모습을 어림해볼 수 있다. 탑들이 아니어도 1400년 세월을 버티고 선 2개의 거대한 당간지주와 즐비한 건물터·회랑터 들이 미륵사지의 규모를 짐작하게 해준다.
딸기밭에서 새콤달콤 봄느낌 오감체험을 봄향기·봄맛·봄기운을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딸기밭으로 가보자. 익산 낭산면 낭산리 우금마을. 딸기 재배 비닐집 안으로 들어서자 따스한 온기 품은 봄세상이 펼쳐졌다. 잉잉거리는 꿀벌 소리에 마음은 싱숭생숭해지고, 온몸에 감겨드는 봄내음으로 입안은 새콤달콤해진다. 어른 허리 높이에서 무성하게 자라 오른 초록빛 밭이랑이 줄달음치고, 그 밑으로는 먹음직스럽게 익어가는 빨간 딸기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또한 줄달음친다.
요즘 국내 딸기는 거의 비닐집에서 생산하는 ‘하우스 딸기’. 이 중에서도 몇년 전부터 새로 뜨고 있는 딸기 재배 방식이 ‘하우스 수경재배’다. 지상 80㎝ 높이에 재배시설을 만들고, 각종 양분을 투입한 물을 공급해 키우는 방식이다.
우금마을에서 4년째 수경재배로 딸기농사를 짓고 있는 최애자(42)씨는 “수경재배는 토경재배에 비해 병충해가 적고 청결한 딸기를 거둘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꿀벌로 수정시키므로 농약은 최소한의 양만 쓴다”고 말했다.
낭산면에선 80여 농가가 20만㎡(약 6만평) 넓이의 비닐집에서 딸기를 생산해 연 20억~3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단맛이 뛰어난(13브릭스 안팎) 국산 품종 설향(논산3호)을 주로 재배한다. 현재 수경재배를 하는 농가는 3곳이지만, 차츰 확산될 추세다. 올해 딸기값은 지난해(2월)보다 20% 이상 오른 상태. 수경재배를 하는 ‘웰컴투딸기네’(010-5145-7624)는 2월 중순부터 5월까지 방문객을 대상으로 딸기 수확 체험을 진행한다. 체험비 1인 1만원에 추가로 1만원가량을 내면 마음껏 따먹은 뒤 딸기 1㎏을 가져갈 수 있다.
다음은 익산 여행길에 먹고 쉴 만한 곳들. 야생화 발효효소를 넣은 토속음식과 각종 약선요리를 만들어 내는 낭산면 성남리 초향정(063-857-5050), 콩나물·무밥에 각종 나물을 곁들여 된장·간장에 비벼 먹는 미륵사지 앞 탑고을(063-835-7251), 순두부로 이름난 미륵산순두부(063-836-8919), 꽃게장을 내는 한정식집 프로포즈(063-854-9388) 등. 평화동의 전통차문화원(011-9646-7384)은 전통차를 우려 마시며(셀프) 쉴 수 있는 곳(찻값은 마음 내키는 만큼). 시내 마한로엔 최근 문을 연 ‘유스호스텔 이리온’이 있다. 유스호스텔 6인실 8만원, 호텔 객실은 13만원부터.
이밖에 익산 동부지역의 볼거리로 보석박물관, 구룡마을 대나무숲, 고도리 석불입상, 그리고 무왕과 왕비의 능인 쌍릉 등이 있다.
익산=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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