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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살서티스의 모자(가운데 앞)·유니폼과 쥬신리그 소속 사회인야구단의 다양한 모자들.(제품협찬 쥬신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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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선후배들이 창단한 박살서티스의 5년으로 본 사회인야구의 진화
월드컵이 끝나면, 유독 운동장에 축구공 차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사회인야구도 마찬가지다. 몇 년 사이 사회인야구단이 급팽창한 배경에는 야구 국가대표팀의 선전처럼 나름의 불씨가 있었다. 창단 4년째를 맞은 사회인야구단 ‘박살서티스(30’s)’의 발전 과정을 돌아보며, 국내 사회인야구가 어떤 진화를 거쳤는지 되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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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창단 뒤 첫 연습경기에 나선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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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린 속 부여잡을 때 울린 전화벨
“형, 글러브 빌렸어요. 연습하자” 봉천동 야구결의 “형, 맥주 한잔 할래요?” 2008년 9월26일. 집에서 한가한 금요일 밤을 보내려던 직장인 이윤호(34)씨는 남동생 현호(32)씨 전화를 받았다. 그가 찾아간 곳은 집 근처 서울 봉천동 현대시장 근처 한 술집. 그 자리에는 전북 부안중학교 선후배 사이이기도 한 동생과 그의 친구 6명이 모여 있었다. 이씨 형제와 후배들은 중학생 시절부터 고향에서 함께 공 차며 놀던 사이다. 술이 오르니, 이야기는 자연스레 한달 전 열렸던 베이징올림픽 야구 결승전으로 옮아갔다. “진짜 대단하지 않았냐?” 야구 해설위원으로 빙의해 관전기를 침 튀기게 늘어놓다 보니, 어느 순간 야구를 향한 욕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럼, 우리… 말 나온 김에 야구 연습이라도 해볼까?” 술기운에 흥분한 이들, 서로의 얼굴만 쳐다봤다. 이 가운데 유일하게 사회인야구를 하고 있던 고향 후배 박한일(32)씨가 용기를 북돋았다. “글러브랑 배트는 제가 빌려볼게요.” 초등학교 교사인 현호씨도 거들었다. “학교 운동장은 내가 빌려볼게요.” 좋았어! 술잔 부딪치는 소리가 봉천동 야구결의를 알렸다. ‘박살서티스’ 야구단 역사의 서막이었다. 야구장 찾아 리그행 야구 연습을 약속한 다음날 아침, 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야구는 무슨….’ 윤호씨가 쓰린 배를 쥐며 일어나려 할 즈음, 전화벨이 울렸다. 한일씨였다. “형, 뭐하고 있어? 글러브 빌렸으니까 빨리 나와요. 연습해야지!” 그렇게 비 오는 토요일 낮, 술 덜 깬 20대 남자 7명은 베이징올림픽의 여운을 타고 서울 미근동 미동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였다. 공 던지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글러브만 공동구매했을 뿐 유니폼도, 야구 연습할 공간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사회인야구단끼리 정보를 공유한다는 인터넷 카페 ‘야용사’(야구용품 싸게 사기)를 알게 됐다. 카페에 글을 올려 다른 팀과 연습경기를 섭외할 수 있었다.
2008년 10월, 유니폼도 없이 첫 연습경기에 나섰다. 서로 30점 넘게 내주는 엉망진창 경기라 승패가 의미 없었지만 즐거웠다. 계속 야구를 하게 될지도 몰랐지만, 상대팀 보기에 민망해 이듬해 큰맘 먹고 유니폼도 맞췄다. 옷 하나만으로 그럴싸한 야구단이 된 느낌이었다. 야구 할 운동장 찾기는 여전히 어려웠다. 그래서 지역별로 매해 사회인야구단이 모여 정기적으로 경기를 치르는 리그에 가입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리그에 들어가면 연회비를 내야 하지만, 연습 공간 걱정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팀 예산에 맞춰 최대한 경기를 할 수 있는 리그를 고민하다, 그해 4월 서울 대림동 ‘영남중학교 리그’와 경기도 김포의 ‘지(G)리그’(현 JJ리그)에 들어갔다. 창단 멤버들도 각자 회사 동료 가운데 야구를 하고 싶어하는 이들을 데려와 그해 가을 야구단은 15명으로 늘어났다. 이때부터 리더십이 필요했다. 창단부터 감독을 맡았던 이씨는 조기축구회 10년차 경력을 발휘해, 실력이 아닌 출석률에 따른 선발 엔트리를 정하기로 했다. 신입 회원도 한 달 동안 출석하며 연습하는 ‘수습 기간’을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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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수원 에스와이비 전반기 토요리그에서 우승한 뒤 선수들이 환호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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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유니폼을 맞춘 뒤 처음 찍은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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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루홈런 2개
WBC 우승이 이보다 짜릿할쏘냐 들어는 봤나, ‘메출’ 야구단 그 뒤로 절치부심한 박살서티스, 한가위·설날을 제외한 모든 주말에 리그 경기를 나서기로 했다. 그렇게 지난해 에스와이비 리그의 A·B·C조에서 55경기를 치렀다. 선수들은 딸 돌잔칫날에도 야구를 하러 가고, 장인어른 환갑잔칫날도 시합 때문에 1시간이나 늦은 적도 있다. 이씨도 지난 어머니 생신 때는 아예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다. 가족이나 동료가 너무한다고 말하면, 변명 대신 주말에 야구장을 함께 가자고 말한다. 이들이 주말마다 야구에 빠져드는 건, 경기를 정말 진지하게 즐기며 스트레스도 즐겁게 날리고 싶기 때문이다. 올해 박살서티스는 좀더 진지한 야구를 꿈꾸고 있다. 개인레슨 강사로 인연을 맺은 안병학(31·전 롯데 자이언츠·보스턴 레드삭스, 현 신일중 야구부 코치)씨가 팀에 합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사회인야구 용어로 ‘선출’(고교 이상 선수 출신)이 있는 팀이 아닌, 이른바 ‘메출’(메이저리거 출신)이 있는 팀이 되는 셈이다. 게다가 지난 24일 열린 2012년 봉황기배 전국 사회인야구대회 조추첨에서 맞붙기 껄끄러웠던 강팀인 ‘경기도교육청 야구팀’도 비껴가 예감이 좋다. 지난 주말도 오는 10일 전국제패를 위한 첫 경기에 나서기 위해 25명의 박살서티스 회원들은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그들의 ‘스토브 리그’는 그 어떤 프로야구 팀보다 진지하고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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