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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군 축산면 경정3리(오매마을) 바닷가. 낚시꾼 둘이 선 곳은 석리 쪽의 낚시 포인트 ‘용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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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속살 꽉 찬 대게 맛과 함께 즐기는 영덕 해안길 봄맞이 드라이브
경칩 지난 산과 들에 흙내음이 푸근하다. 얼음 풀린 흙더미 촉촉해져서 뭐라도 아니 튀어나올 수 없을 듯한 때다. 경북 동해안 청정 바닷가 마을에도 봄기운이 은근하다. 거센 파도 몰아온 바람결엔, 드디어 풀리기 시작한 실타래처럼 선선한 훈풍 한자락이 실렸다. 작은 포구들 올망졸망 이어지는 영덕 해안길로 간다. 굽이굽이 차를 모는 동안, 한쪽에선 짭짤한 바닷바람과 깨끗한 파도가 차창을 두드리고, 다른 쪽에선 식당마다 쪄내는 분홍빛 대게 속살 내음이 후끈 끼쳐오는 해안도로다. 느리게 차를 몰며 포구마다 들여다봐야 바닷바람도 대게 향기도 제대로 느껴진다.
3~4월 이맘때가
속 차고 향도 진한
대게철이다
경북과 강원 동해안을 따라 아름다운 해안 드라이브 코스가 즐비하지만, 영덕의 이른바 ‘강축(강구~축산)해안도로’는 그중 경관이 빼어난 코스로 꼽힌다. 영덕 강구항에서 축산항을 잇는 약 28㎞의 해안길. 언제 가도, 몇번씩 달려도 그때마다 새로운 표정과 빛깔로 다가와, 찌들고 주눅든 마음을 구석구석 매만져주고 위로해주는 길이다. 지난 주말 강축해안도로는 비 흩뿌리고 바람 거셌으나, 푸른 바다 흰 파도에 깃든 봄빛은 명명백백했고 가슴 후련하기는 청명한 날 못지않았다.
강구항은 대표적인 대게 집산지다. 100여곳에 이르는 대게식당·대게수족관이 포구에 빼곡하다. 대게는 금어기(대개 6~11월)가 풀리는 초겨울부터 잡기 시작하지만, 겨울 대게는 속이 덜 찬 물게가 많다. 3~4월 이맘때가 속살이 꽉 차고 또 향도 진한 때다. 그 길고 늘씬한 허벅다리 두세개만 벗겨놔도 허기는 면할 양이 된다.
대게 찌는 더운 김이 눈앞을 가리고 또 그 앞을 가리는 호객꾼과 차량 행렬이 뒤섞여 볶아치는 포구를 겨우 벗어나, 20번 지방도 따라 북으로 천천히 페달을 밟는다. 한 굽이 돌 때마다 상큼한 바다향기 머금은 작은 포구마을이 이어진다. 길은 한적해도 김 무럭무럭 오르는 대게식당들은 끈질기게 새로 나타난다. 하저리·창포리 포구 지나면 길은 절벽길을 돌아 산으로 이어져 바다 경치는 한층 볼만해진다. 산 능선에 모여선 흰 바람개비(풍력발전기)들이 거대한 몸집을 드러낼 무렵, 전망 좋은 쉼터 ‘해맞이공원’에 이른다. 바다 경관이 좋으니 해를 맞이하거나 달을 품거나 간에 다 흐뭇한 곳이다. 창포말등대 너머로, 축산 쪽으로 굽이치며 펼쳐진 해안의 바위 경치가 볼만하다. 나무데크를 따라 절벽 밑 바닷가까지 내려갈 수 있다.
대소산 정상에선
울진의 대게 어항 후포와
영덕 일대 해안이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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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항 축산천 하구에 걸린 ‘블루로드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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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개의 풍력발전기들이 보여주는 능선 쪽 경관도 이색적이다. 능선까지 걸어 오르거나, 가파른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차로 오를 수도 있다. 높이 80m짜리 바람개비들이 장관을 이루는, 창포~하저 5.77㎞의 임도는 강구~병곡 해안을 따라 조성된 50㎞ 도보 코스 ‘블루로드’의 일부 구간이자, 대보름날 단체로 진행되는 ‘달맞이 야간산행’ 코스이기도 하다.
해안길은 대탄리·오보리 거쳐 산자락을 굽이돌며 노물리·석리·경정2리·1리·3리로 이어진다. 포구마다 거대한 느티나무 곁에 깃든 제당이 한두개씩 있다. 대대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빌어온 당집이다. 검푸른 동해바다가 마을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알려면 잠시 차를 갓길에 대야 한다. 거칠게 몰려온 파도는 방파제 앞에서 거품으로 잦아들고 포구 안에선 잔잔해진 물살만 찰랑댄다. 하지만 거센 파도의 흰 속내 한자락이 찻길로 넘어와 차창을 넘보기도 한다. 일부 구간은 파도와 어깨를 나란히하는 낮은 해안길이기 때문이다. 낚시꾼과 갈매기는 큰 파도 작은 파도 가리지 않는다. 마음껏 대를 휘두르고, 힘껏 부리를 물속에 처넣어 순식간에 고기를 낚아챈다.
노물리는 150여가구 200명이 사는 아담한 포구마을. “자, 보자. 피박에 폭탄에 오점 났다. 가와라.” 70~80대 할머니 넷이 둘러앉아 “이천원 상한, 딱 정해놓고” 한다는 화투놀이가 한창인 경로당에서 노인회장 신현구(76)씨가 말했다. “여가 ‘월월이청청’ 본고장이라. 강강술래 카는 기 맨 그기라.” 노물리는 부녀자들이 정월대보름날 모여 손잡고 노래와 함께 원무·행렬무를 추며 즐기던 ‘월월이청청’이 전승돼온 포구다.
해안 절벽길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어촌체험마을 석리를 들여다보고, 500년 묵은 향나무로 이름났던 경정3리(오매마을)로 간다. 오매마을 제당 언덕 위에 있던 ‘마을 수호신’ 오매향나무는 “15년 전 도둑이 베어가 분재로 해놓은 걸 되찾아 심어놨으나 말라죽었다”(유석용 이장)고 한다. 제당 뒤 바닷가 용바위 쪽 바위무리가 한폭의 동양화 같다. 경정1리(뱃불마을) 지나면 이른바 ‘대게 원조마을’이라 불리는 경정3리(차유마을)다. 대게잡이에 원조가 따로 있을까마는 어쨌든 “고려 때부터 대게잡이를 해왔다”고 전해오는 이 마을에도 대게식당이 즐비하다.
경정2리 지나 해안길은 산으로 오르고, 도보길 ‘블루로드 코스’는 말미산 해안절벽을 따라 축산항 블루로드 다리로 이어진다. 안동 김씨 ‘2대 효자’를 기려 세운 정효각(1857년)이 있는 염장삼거리 지나면 대게잡이로 이름난 포구 축산항이다.
영양 남씨 발상지 기념비가 있는 와우산(망재산·66.3m)과 시누대(조릿대)숲 우거진 멋진 산책로와 전망대가 선 죽도산(대밭산·87m), 포구 남쪽에 자리잡은 말미산(말뫼·남뫼·113.5m)에 둘러싸여 포근한 느낌을 주는 포구다. 포근한 포구 느낌을 한눈에 확인하려면 죽도산에 오르거나 대소산(봉화산·278m)에 오르면 된다. 죽도산에선 축산항 일대는 물론, 남쪽으로 멀리 영덕읍 쪽 풍력발전단지까지 눈에 잡힌다. 봉수대가 있는 대소산 정상에선 울진의 대게 어항 후포와 영덕 일대 해안이 한눈에 조망된다. 대소산 정상에서 마주친, “매일 2시30분이면 어김없이 집을 나와 대소산에 오른다”는 축산 주민 김수기(61)씨가 말했다. “이기 영덕 남동쪽 해안의 주봉이라. 맑아노면 즈짝 포항 호미곶까지 싹 다 보이니까네.” 걸어서 오를 수도(축산항에서 30분), 차로 오를 수도(영명사쪽 임도 10여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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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축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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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산은 본디 조선시대 지도엔 축산(丑山)으로 표기된 섬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매립공사로 육지와 이어졌다. 정상엔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등대가 있었다. 일제말 폭격 표적이 된다 해서 철거됐었고, 광복 뒤에 세웠던 등대를 지난해 다시 헐고 엘리베이터까지 갖춘 전망대를 세웠다. 몇년 전까지 죽도산 일부 지역은 군부대 주둔으로 통제됐었다. 전망도 전망이지만, 빼곡하게 우거진 시누대숲 사이로 난 바닷가 쪽 산책로를 거닐어볼 만하다. 전망대 밑 군부대 건물 옆엔 전망 좋은 찻집 ‘코난 바다를 품다’가 있다. 죽도산에 대해 물으니, 찻집에 근무하는 분이 비닐코팅된 인쇄물을 내준다. 구룡포 사는 권선희 시인이 쓴 영덕 해안과 죽도산 탐방기다.
“길을 걸으면 댓잎 사이로 부는 바람의 노래가 온산을 조용히 흔든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가녀린 댓이파리 젖는 소리에 내 귀도 젖겠다.” 글 말미에 이분이 인용한 시 한 구절이 서늘하게 다가왔다. “시누대 숲에 바람 분다. 왕대처럼 꼿꼿하지 못한 내가 무척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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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tip
5월까지 대게 세상
▣ 가는길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서안동나들목. 34번 국도 따라 안동시내 거쳐 직진해 영덕으로 간다. 영동고속도로~강릉~동해고속도로 거쳐 7번 국도 타고 삼척~울진~영덕으로 가도 된다.
▣ 먹을곳·묵을곳 울진~영덕~포항 일대는 5월까지 대게세상이다. 1마리 1만5000원짜리부터 10만원대까지 크기에 따라 다양하다. 영덕 강구항과 울진 후포항에 대게식당이 즐비하다. 울진 후포항과 여객선터미널 안 대게활어센터에 왕돌회수산(054-788-4959) 등 대게요리를 내는 음식점이 몰려 있다. 축산항 죽도산 옆에도 대게활어타운이 있다. 축산면 경정3리 성영수산(054-732-5020) 등 대부분의 대게매장·식당에서 택배주문이 가능하다. 강구항 들머리, 해맞이공원 주변에 모텔·펜션이 모여 있다. 오가는 길에 울진 백암온천에서 피로를 풀 수 있다. 백암 한화리조트 (054)787-7001.
▣ 주변 볼거리 영덕 강구항 등에서 3월8~12일 영덕 대게 축제가 벌어진다. 박달대게 경매, 태조 왕건 행차 재현, 영덕대게잡이 체험 등이 진행된다. 강구~축산해안도로 주변에 의병장 신돌석 장군 유적지, 괴시리·인량리 전통마을 등이 있다. 4월 중순이면 영덕군 지품면 등 34번 국도변에 복숭아꽃이 만발한다. 영덕군청 문화관광과 (054)730-6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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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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