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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3.07 18:32 수정 : 2012.03.07 18:32

[매거진 esc] 그 남자의 카드명세서

30대 중반에 손에 쥔 핸디형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비타’

게임은 단순한 유아 취향의 발현이 아니라 본능적인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영화나 만화처럼 게임 역시 타인의 인생을 대신 살아볼 수 있는 ‘체험 삶의 현장’이 되기 때문이다. 게임에서가 아니면 내가 언제 리오넬 메시가 되어 캄프누 구장에 서볼 것이며, 언제 특수부대원이 되어 적진에 폭탄을 던져볼 건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각종 게임기를 섭렵해 왔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라고 변명해본다).

‘플레이스테이션(PS) 비타’ 소니코리아 제공
하지만 얼마 전 게임 왕국이라던 닌텐도의 사장이 영업 적자로 인해 주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는 뉴스를 봤다. 닌텐도는 근 30여년 동안 한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는 대표적인 우량 기업이었다. 주주들 앞에서 굴욕적으로 고개를 숙인 그 순간, 닌텐도의 사장은 그 순간 스티브 잡스를 원망하고 있었을까. 스마트폰의 출시만 아니었다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전세계에 1억대를 팔았다던 닌텐도 디에스(DS)도 스마트폰의 공세에 밀리고 있는 지금, 소니가 핸디형 게임기를 발매했다. ‘플레이스테이션(PS) 비타’(사진)라는 제품이다.

지난해 피에스 비타의 국내 발매 소식을 들었을 때, 사실은 시대착오적인 제품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훌륭한 제품이라도 시장의 흐름이란 쉽게 돌이킬 수 있는 게 아니다. 스마트폰 하나면 충분한 세상에 굳이 휴대용 게임기라니. 소니가 제대로 가라앉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테스트용으로 받은 제품을 만지작거리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이 게임기는 깜짝 놀랄 만큼 가볍고, 손에 쥐었을 때의 감도도 훌륭하다. 5인치 액정화면의 선명도 역시 마찬가지. 하드웨어에 대한 만족감은 충분했다. 문제는 소프트웨어인데 이 역시 기대를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동봉된 <언차티드>라는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소니가 제품을 내놓으며 ‘피에스 3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하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덕분에 제품을 손에 쥐고 다니며 며칠 밤낮을 매달려 엔딩을 봤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공략본을 찾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게임을 시간 때우기 용이 아니라 게임 그 자체로 즐기는 재미를 오랜만에 느낀 것이다. 구매의 욕구가 슬금슬금 피어올랐지만 가격이 문제였다. 본체 값인 36만원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소프트웨어 값이 보통 4만~5만원대인 것이 맘에 걸렸다.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이 이렇게 많은 세상에 품질 따위 조금 포기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싶었고, 30대 중반에 핸디형 게임기를 들고 다닌다는 게 부끄러운 일 같기도 했다. 벌써부터 ‘아들 키운다’는 소리를 해대는 아내의 잔소리는 곱절이 될 테고.

하지만 문득 깨달았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며, 여전히 좋은 게임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걸. 싫으면 1달러 버린 셈 치고 삭제해버리면 그만인 스마트폰용 게임과는 무게감 혹은 책임감이 달랐다. 정크푸드와 일품요리의 차이 정도랄까. 게임이라는 건 이렇게 즐겨야 하는 거였는데, 오랫동안 그걸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허리를 곧게 펴고, 경건한 마음으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여전히 이 게임기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1, 2년 정도는(소니도 쉽게 손을 떼지는 않을 테니) 게임을 게임답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이기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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