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3.14 18:27
수정 : 2012.03.14 18:27
[매거진 esc] 독자사연 사랑은 맛을 타고
그는 어린 시절 넉넉하지 않아 배를 많이 곯았다고 했다. 주린 배를 채우려고 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리면 산으로 칡을 캐러 다녔고, 논두렁의 국숫발같이 생긴 하얀 메꽃 뿌리며, 이른 봄 올라오는 봄나물 등 산야를 돌아다니며 먹을거리를 얻었다고 했다.
중학교 친구였던 그를 80년대 초반 대학에서 다시 만나 함께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학교는 산을 끼고 있었고 동네에는 농사짓는 분들이 제법 있었다. 그는 산야를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나물과 버섯, 가재, 우렁이 같은 것들로 식탁을 풍성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남자들의 자취생활이라는 것이 하루 한끼도 챙겨 먹기 어려웠지만, 그 친구 덕분에 세끼는 꼭 챙겨 먹을 수 있었다.
80년대 초는 민주주의가 군부독재에 의해 짓밟히던 시기였다. 민주화 운동이 본격적으로 사회 전면으로 등장하는 시대였다. 대학마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언더서클’들이 생겨났고, 자취방은 그들의 토론장이 되었다. 그 시절, 시린 마음을 달래줄 술과 밥을 묵묵히 공수하던 친구가 그였다.
어느 해 초가을, 그 친구와 나의 여자친구가 수업도 빠지고 사라졌다.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하필이면 내 생일날 내 여자친구와 어디를 간 것일까? 대중가요 노랫말처럼 불길한 상상이 떠올랐다. 하지만 기우였다. 그와 내 여자친구는 자취방에서 생일상을 거하게 차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케이크는 없었지만 이런저런 반찬과 소주 한 병 곁들인 밥상이었다. 새우튀김, 우렁이무침, 돌나물과 씀바귀 무침이 올라와 있었다. 300원가량 하던 소주도 겨우 샀으면서 그 비싼 새우튀김은 어떻게 만들었느냐 물었더니 그는 그냥 웃기만 한다. 새우치고는 조금 작다 생각하며 튀김가루가 잔뜩 묻은 새우튀김을 집어들었다. 맛은 새우 맛이었다. 그런데 약간 이상하다. 다리가 있다. 더 살펴보니 비늘 같은 날개도 있다. “다리가 있네? 날개도 있어? 이게 뭐냐?” “요즘 새우는 날개하고 다리가 있다. 그거 메뚜기다.”
그랬다. 벼메뚜기였다. 수중에 돈이 없었단다. 그래서 우렁이를 잡으려는데 메뚜기들이 날더란다. 그냥 튀겨서 술안주나 하려고 했는데, 밀가루와 튀김가루가 보이더란다. 튀긴 후 여자친구가 두 눈 꽉 감고 먹어보았더니만 새우 맛이 나더란다. 그래서 ‘새우튀김’이라고 속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날 받은 생일상, 그 이후 그때처럼 맛난 밥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
김민수/서울 송파구 가락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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