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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인간 반전
스타 매니지먼트사 이끌다 케이블 드라마 ‘꽃미남’ 시리즈 성공시킨 박성혜 대표
월급쟁이를 접고 창작자로 변신을 시도하는 이들을 간혹 보게 된다. 성공은 둘째 치고 작품 자체를 완성하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 흔치 않다. 매니지먼트 분야에서 정상을 달리던 싸이더스 에이치큐(HQ)도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지만 자기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며 의미 있는 성과를 내놓은 건 한참 후의 일이었다.
박성혜(42) 오보이 프로젝트(Oh! Boy Project) 대표가 ‘변신’ 1년 만에 이 모든 걸 이뤄냈다. 그는 지난해 4월 오보이 프로젝트 주식회사를 만들었다. 직원은 단 1명이었다. 16년 동안 배우 매니저였고, 백수로 1년여를 보낸 뒤 이룬 놀라운 성공이었다. 2명이 기획안을 만들어 티브이엔(tvN)에 무려 100억원의 제작비(방송 편성 포함)를 제안했다. 6개월 뒤 <꽃미남 라면가게>(이하 라면가게)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하고 케이블 드라마 사상 최고가에 해외 판매 기록을 세웠다. 2개월 뒤 <닥치고 꽃미남 밴드>(이하 닥밴)로 역시 케이블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해외 판매 최고가를 경신했다. <라면가게>는 팬시상품 같은 야들야들한 로맨스였고, <닥밴>은 빈부격차의 현실이 녹아든 거친 밴드 청춘물이었다. <닥밴>은 제작자로서의 역할과 더불어 시놉시스를 본인이 직접 만들었다. 그래서 ‘크리에이터/제작’이란 생소한 크레디트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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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계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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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갑작스런 뉴욕행
“사람에 대한 애정 회복하고 싶어” 그의 인생 반전 드라마는 이렇다. 김혜수, 전도연 매니저로 15년을 보내며 황정민, 지진희 등을 발굴한 그의 전직 직함은 싸이더스 에이치큐 본부장. 남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자리를 갑자기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지인들은 철없는 선택이라며 아우성쳤다. 하지만 그는 2008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뉴욕으로 떠났다. 겉은 화려해 보여도 속은 그렇지 않은 인생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였다. 지난 9일 강남구 논현동 오보이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사람에 대한 애정을 다시 찾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뉴욕에서 공연 보고 클럽을 들락거리며 한마디로 거침없이 놀았다. 바텐더 자격증도 취득했다. 1년 뒤 서울로 돌아올 무렵, 다행히 사람이 다시 좋아졌다. 그래서 두 가지를 새로 시작했다. 낮에는 홍대 캠퍼스에서 광고홍보학을 공부하고, 밤에는 홍대 주변에서 클럽을 배회했다. “원래 밴드 음악을 워낙 좋아해서 뉴욕에 있을 때도 소규모 밴드 공연을 자주 보러 다녔다. 서울에 돌아가면 강남 집을 처분하고 홍대 주변에서 지하 1층에 공연이 가능한 조그만 바를, 1층에 카페를 하면서 한량처럼 인디밴드들과 재밌게 놀아보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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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대면하는 시간
여유와 자유로움 되찾아” 제안서를 만들면서 무작정 교보문고를 뒤졌다. 로맨스 소설 20권을 사서 읽은 뒤 한 작품을 골라 판권 계약을 했다. <꽃미남 라면가게>였다. 이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두 번의 결정적 위기를 겪었다. 오보이 오디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먼저 시작했는데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조기 종영이 논의되고 있을 무렵 다행히 <라면가게> 1, 2화 방송이 겹치면서 시청률이 상승 곡선을 탔다. ‘폭력밴드’란 이름으로 준비해오던 <닥밴> 계약은 한없이 지연된 상황. 이건 할 수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태생적으로 반항기를 갖고 있는 아이들이 누굴까 하다가 타워팰리스에 살아본 아이를 만나고 이거다 싶었다. 타워팰리스 뒤 구룡마을 아이들과 같은 학교를 다닌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그들의 눈빛부터 달랐다고. 태생적으로 자괴감을 느끼며 살아야 했던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음악이 아닐까 싶었고, 밴드 이야기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6부 시놉시스를 직접 쓴 뒤 작가를 구해 1, 2부 대본을 만들었지만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너무 마니아 취향이라는 이야기였다. 물러서지 않았다. 티브이엔에 ‘뭔가 새로운 그림 하나는 보여줘야 하지 않냐’고 설득하는 동시에 1, 2부 대본을 고쳐 썼다. 마침내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작가뿐 아니라 연출자와 촬영감독 모두 드라마 경험이 거의 없는 이들로 구성하는 파격을 감행했다. 신선한 화면을 만들겠다는 승부수였다. 그는 재밌게, 열정을 가지고 달려들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진짜 외롭게,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자기 자신과 대면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와 자유로움이 있는 듯하다. 39살 때 뉴욕에서 매일 아침 일기 같은 글을 썼다. 그런 시간을 겪으면서 열정과 즐거움이 되살아났다.” 그는 올해 하반기 세 편의 드라마를 더 제작하고 연기 아이돌 시스템을 새롭게 고안할 예정이다. 열정과 즐거움을 손에 넣은 여자의 눈빛이 유난히 반짝거린다. 그는 또 뭔가 깜짝 놀랄 만한 일을 멋지게 해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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