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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3.28 17:34 수정 : 2012.03.28 17:34

박종만 제공

[매거진 esc] 박종만의 커피로드

이탈리아 제노바의 오래된 카페 ‘클라인구티’에서 마신 ‘카페 코레토’

이탈리아 속담 중에 ‘그러니까 제노바 상인이지’(Genuensis ergo mercator)라는 말이 있다. 뛰어난 상술의 제노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제노바는 10세기 이후부터 이미 시리아와 이집트 교역에서 막대한 이익을 내어 베네치아, 피사와 더불어 지중해의 중심도시로 부상했다. 제노바는 베네치아와 비슷한 시기인 17세기 초 오스만왕국의 중심도시 이스탄불로부터 커피를 받아들였다. 당시 주 교역물인 향신료를 대체할 물품으로 커피는 각광받았다.

항구 가까이 있는 숙소로 걸어가면서 본 제노바는 해안을 따라 나지막한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포근한 도시였다. 숙소에 배낭만 내려둔 채 곧장 시내로 나왔다. 언덕 위 작은 골목길들은 정겨움이 넘쳐났다. 일찍부터 교역에 나섰던 탓일까,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다.

제노바 구시가지 골목길 헌책방에 들러 커피 책을 고르다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고마운 친구 마리오를 만났다. 헌책방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배우처럼 잘생긴 외모를 가진 장발 청년 마리오는 내가 커피 역사를 찾아 제노바에 왔다 말하자 책방 주인에게 한참을 설명하더니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오래된 커피하우스를 소개해주겠다며 그가 앞장섰다. 쌀쌀한 기운이 돌았지만 발길 닿는 곳마다 유적인 골목길을 느릿느릿 걷다 보니 마음이 저절로 따스해졌다. 오랜 친구와 걷듯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걸었다.

1828년 문을 연 카페 클라인구티(Klainguti)에 들어섰다. 카페는 유려한 곡선과 섬세한 조각장식을 통해 제노바풍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로코코 스타일이라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제노바풍이라는 표현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크리스털 샹들리에와 벽 등은 영롱한 진주 빛으로 빛나고 있고, 정교한 목공예의 진수를 보이는 바 카운터와 뒷면 장식장은 마치 춤추듯 파도치듯 넓은 매장을 가로지르고 있다. 옅은 커피색의 바닥 대리석에서는 견고함이 돋보였고, 액자 틀에 모자이크 된 벽면 거울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궁전에 들어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벽면 액자에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오페라 아리아 ‘돌아가자 고향 프로방스로’(Di Provenza il mar il suol)가 2막에 나오는 <라 트라비아타>는 작곡가가 베르디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 아버지 제르몽이 멀리 떨어진 파리에 사는 아들 알프레도에게 찾아가 이제 그만 비올레타와 헤어지고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아버지의 간절함을 그린 아름다운 곡이다. 나는 멀리 떨어져 지내는 아들딸이 그리울 때면 이 곡을 들으며 몰래 눈시울을 적시곤 해왔다. 나에게 있어 베르디는 그리움을 더욱 간절하게 해준, 다시 못 볼 친구 같은 존재다. 그 베르디가 1860년부터 세상을 떠난 1901년까지 40여년간 겨울을 제노바에서 지내며 커피를 즐겨 마시던 곳이 바로 그곳 클라인구티다.

베르디의 흔적을 찾아 카페 안 이곳저곳을 들춰 보았다. 그런 나를 보며 주인장은 마음씨 좋은 미소를 짓는다. 베르디와 교감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구석자리에 앉아 ‘카페 코레토(Corretto)’를 시켰다. ‘카페 코레토’는 이탈리아의 달짝지근한 술이 들어가는 에스프레소 커피다. 추울 때 즐겨 마신다. 조각미남 바리스타(사진)는 싱글벙글하며 커피를 만들어 내왔다. 짙은 이탈리안 에스프레소에 달콤한 알코올 기운이 전해져왔다. 베르디 음악이 없어 아쉬웠지만 마리오와 클라인구티 사람들의 미소에 둘러싸여 밤늦도록 클라인구티를 떠날 줄 몰랐다.

박종만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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