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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보홀섬의 대표적 경관인 초콜릿 힐스. 우리나라 고분 무리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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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반딧불이·안경원숭이·돌고래·이색 자연경관과 함께한 필리핀 보홀 에코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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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복강 선상투어 출발지 선착장의 악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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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 막는 반딧불이 빛 세례
눈 감아도 잊히지 않는 장관 아바탄강 반딧불이 떼의 환상적 군무
오염원 없는 곳을 여행하는 즐거움 중 하나가 밤하늘 올려다보며 잠시 넋을 잃는 일이다. 소리 없이 현란한 별들의 반짝거림만으로, 부질없는 수사와 겉치레에 길들여진 입과 눈과 귀가 순해지고 밝아지는 느낌이다. 보홀의 첫날 밤,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섬 서쪽 마리보족 만으로 흘러드는 아바탄강에서 20인승 목선을 타고 밤하늘을 즐겼다. 별빛은 명랑했고, 달빛은 은은했다. 아바탄은 ‘만남의 장소’라는 뜻. “잊지 못할 만남의 추억을 안겨줄 것”이라던 안내인 사라(38)의 말은 빗나가지 않았다. 맹그로브나무 우거진, 폭 100m도 안 되는 캄캄한 강줄기를 거슬러 오르며 정말 아름다운 대자연의 밤풍경과 맞닥뜨렸다. 배를 몰던 현지인이 플래시로 한 나무를 잠시 가리킨 뒤 껐다. 배의 엔진도 끄고 나무 밑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커다란 나무 전체를 덮은 수백 수천의 반딧불이들. 고정된 빛이 아니라 끊임없이 점멸하며 이동하는 살아 있는 별빛들이었다. 대형 성탄 트리를 닮았다고 누군가 외쳤으나, 비할 바가 아니었다. 거의 동시에 깜박임을 되풀이하며 거세게 퍼붓는 빛의 파도, 쉬지 않고 어둠을 몰아내는 눈부신 빛의 선율이었다. 하나의 빠른 선율을 뒷받침하며 느린 선율이 따라왔고, 그것들을 아우르는 거대한 빛의 파동이 몰려와 웅장한 빛의 둔주곡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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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탄강에서 만난 반딧불이들의 군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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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을 때는
플래시를 꺼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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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홀의 마스코트인 안경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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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보홀섬 남서쪽 내륙 코렐라 지역의 안경원숭이 보호구역. 앞서 걷던 보호구역 안내인이 수풀 속 작은 나뭇가지를 막대기로 가리켰다. 키 작은 나무의 가지를 껴안고 매달린 생명체. 이 작고 애처로운 영장류는 얼핏 안경을 쓴 생쥐처럼 보였다. 몸길이(꼬리 제외) 10~13㎝. 머리가 몸의 3분의 1가량이고, 얼굴의 3분의 1가량이 눈인, 원숭이 중 가장 작다는 안경원숭이(타르시어)다. 안내인은 “카메라를 너무 가까이 대지 말고, 절대 플래시를 터뜨리지 말 것”을 주문했다. 위협을 느끼거나 인위적으로 서식지를 옮겨 스트레스를 받으면, 머리를 부딪쳐 자해하며 목숨을 끊기도 한다고 한다. 사진을 찍는 동안 이 녀석은 그 큰 눈을 휘둥그레 뜨고 빤히 카메라를 응시했지만, 이내 졸린 듯 눈을 반쯤 감거나, 고개를 홱 돌려 다른 곳에 눈을 고정시켰다. 줄을 잇는 탐방객들의 발길에 시달리고 있는 듯했다. 안경원숭이는 눈을 움직이지 못하지만, 머리를 180도나 돌릴 수 있다. 전후좌우로 고개를 회전시키며 벌레를 찾고, 길고 튼튼한 뒷다리로 몸길이의 10배 이상을 뛰어오르며 먹이사냥을 한다고 한다. 안경원숭이는 필리핀·인도네시아 등에 서식하는 희귀종이다. 코렐라 보호구역 안에 500마리가 살고, 이 중 10마리만 관찰용으로 공개한다. 덜컹거리는 비포장 숲길을 달려 섬 내륙 한복판의 ‘초콜릿 힐스’를 찾았다. 드넓은 평원에 봉긋한 봉우리들이 무수히 솟았다. 건기(11~4월)에 풀이 시들면 원뿔형의 ‘키세스 초콜릿’처럼 보여 초콜릿 힐로 불린다. 전망대에 오르자 전후좌우로 겹치고 포개진, 한반도의 왕릉을 닮은 봉우리들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50㎢에 이르는 광활한 평원에 1268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나무 우거진 봉우리를 제외한 수다. 풀로 덮인 봉우리만 ‘초콜릿 힐’로 부르기 때문이다. 200만년 전 산호로 덮인 바다 밑 땅이 융기한 뒤 침식작용을 거쳐 형성된 지형이다.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손으로 초콜릿을 집어드는 모습이나, 빗자루를 타고 나는 자세로 사진을 찍는다. 돌고래 군무 감상과 파밀라칸섬 스노클링
다음날 아침 6시. 방카선을 타고 돌고래 탐방에 나섰다. 팡라오섬에서 배로 40여분 거리의 파밀라칸섬 주변이 아침마다 돌고래 떼가 출몰하는 지역이다. 길이 1~2m에 이르는 돌고래 수십마리가 펼치는 유영과 점프 모습이 장관이다. 돌고래 떼의 유영 감상 뒤 배는 파밀라칸섬에 닻을 내린다. 파밀라칸섬은 본디 고래잡이로 이름났던 섬. 주민들은 1986년 상업포경이 금지되기까지 고래를 잡아 생계를 유지했다. 이제 250가구 1600명에 이르는 주민들은 고래 관찰을 곁들여 섬을 찾아오는 여행객들을 맞아 관광수입을 올리며 생활한다. 주민들이 차려내는 새우구이·생선구이·바나나튀김·바나나꽃무침 등 전통음식들을 뷔페식으로 즐길 수 있다. 깨끗한 앞바다에서의 스노클링이 인기다. 형형색색의 산호와 열대어 무리를 감상하다 짙푸른 심해와 마주친다. 수중 수직절벽 밑으로 아득하게 펼쳐진 심연이 쩌릿한 공포와 감동을 함께 안겨준다. 이 밖에 보홀섬에선 로복강 선상 투어, 나비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심플리 나비농장’도 인기여행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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