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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4.04 19:31 수정 : 2012.04.04 19:31

밴드 ‘마그나 폴’이 홍대의 한 클럽 공연에서 외국인과 한국인이 뒤섞인 관객들이 열광하고 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홍대앞을 텃밭 삼아 활동하는 외국인 뮤지션들

“빼어난 음악 인프라에
청중들 관람매너도 진지
홍대앞만이 지닌 매력이죠”

빨간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는 푸른 눈의 사내가 있다. 이제 어지간히 매워서는 눈도 꿈쩍하지 않는다. 삼겹살을 상추에 싸 먹는 것도 척척. 공중목욕탕도 진즉에 마스터했다. 바로 모국인 스웨덴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음악인 라세 린드(Lasse Lindh) 이야기다. 몇 해 전, 문화방송 시트콤 <소울메이트>에 삽입된 노래 ‘컴온스루’(C’mon Through)를 통해 감미로운 허스키 보이스를 선사했던 그 이방인은 어느덧 한국에서 털털한 별명인 ‘신촌 자취생’으로 불린다.

2006년 공연을 위해 처음 서울을 찾았다가 그 어느 나라보다 진지한 팬들의 호응에 반해, 라세 린드는 2009년부터 1년간 숫제 한국에 터를 잡고 홍대 클럽들을 거점으로 음악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잠시 본국으로 돌아가기 전 서울 생활 수기를 담은 책을 발간하여(<라쎄 린드의 할로 서울>, 2011, 이슈), 외국인 뮤지션으로서는 독특한 행적이 화제를 낳기도 했다.

하지만 홍대 클럽가에서 라세 린드와 같은 외국인 뮤지션을 만나는 것은 더이상 낯설지 않은 일이 되었다. ‘홍대클럽거리’인 마포구 와우산로 17길. 디지비디(드럭)로 시작해, 고고스2, 타, 클럽 에프에프가 버티고 서 있는 이 거리를 지나다 보면 매주의 공연 라인업 중 적어도 한두 팀은 외국인 밴드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증가한 외국인 밴드들의 활약. 이태원도 아닌 홍대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홍대 클럽가에서 가장 실험적인 음악을 연주하는 외국인밴드로 알려진 ‘사이보그’.
서울에 온 외국인들이 밴드를 만들고 활동한 것은 생각보다 역사가 길다. 2007년 이후 한국에서 ‘사이보그’(SSIGHBORGGGG)라는 이름의 외국인 밴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션 메일런은 90년대 말부터 밴드를 만든 외국인들이 존재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장기간 체류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던 터라 초창기 외국인 밴드들의 활동은 연속성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 션의 말이다.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경력이 쌓인 밴드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고, 오늘의 증가추세에까지 이른 것. 그리고 여기에는 홍대의 한 클럽이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홍대클럽거리에 위치한 클럽 ‘에프에프’는 외국인 밴드들의 산파 노릇을 한 곳이다. 마치 90년대 중반 홍대 인디 펑크 붐의 진원지가 클럽 ‘드럭’이었던 것처럼, 지금은 중견의 위치에 올라선 수많은 외국인 밴드들이 이곳 에프에프를 통해 활동을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 홍대 록 클럽들의 공연시간은 주로 저녁 무렵이었다. 한국 관객들은 대중교통 시간 때문에 너무 늦은 시간까지 놀 수 없는 데 반해, 외국인 밴드들은 밤이 깊어야 활동이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지방에 살다가 주말이 되어서야 밤늦게 서울로 도착하는 이들도 많다. 그래서 홍대에서는 외국인 밴드들이 활동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우리가 밤 10시 이후로 영업을 연장하면서 하나둘씩 몰려들기 시작했다.” 에프에프의 실장인 에디 황씨의 말이다. 에프에프에서 시작된 변화는 이태원의 클럽에서 활동하던 외국인 밴드들이나 새롭게 밴드를 만든 외국인들을 규합했고, 이는 인근의 다른 클럽들로까지 확장되었다. 라세 린드가 한국에 체류하며 음악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무렵 이러한 풍토가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모던 록 밴드, ‘화난 곰’
애초 외국 문화의 중심지였던 이태원이 아니라 홍대에서 외국인 밴드의 붐이 일어난 것에는 좀더 특화된 이유들도 존재한다. 바로 홍대가 지닌 음악문화의 인프라들이다. 외국인 밴드 ‘더티 서티스’(The Dirty 30s)의 베이시스트인 조시 굿맨과 ‘화난 곰’의 드러머인 패트릭 코너 등 수많은 외국 음악인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이 홍대 클럽들이 보유하고 있는 음악 장비들의 우수성이다. “이태원에서 공연하면 거의 외국인들만 보러 온다. 그리고 공연 공간과 장비도 썩 좋지 않고, 공연할 수 있는 곳도 많지 않다. 강남도 마찬가지다.” 패트릭의 말이다. 외국인 밴드들이 공연하는 홍대 클럽의 청중들은 내외국인의 비율이 거의 반반. 음악인으로서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음악을 선보일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게다가 라세 린드가 이야기했듯, 한국 청중들만의 독특한 관람 문화도 그들을 사로잡았다. 다른 나라의 관객들과 달리 음악에 집중하며 진지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사이보그의 션 메일런은 말한다. “한국의 인디 팬들이 조용하게 앉아서 포스트 펑크 밴드들의 공연을 본 뒤 예의 바르게 박수를 보내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만약 캘리포니아였다면 이런 종류의 공연 분위기는 훨씬 거칠고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감성적인 보컬이 매력적인 밴드, ‘더티 서티스’.
한국 활동 기반으로
중국·캐나다 등 진출하는
밴드들도 늘어나

이러한 홍대 외국인 밴드들의 붐업은 좀더 새로운 지평으로 외연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먼저 홍대 이외의 지역으로 그 활동영역이 넓어지고 있다는 것. “최근에는 외국인 밴드들이 홍대를 떠나 한남동 등지의 클럽들로 진출하는 추세다.” 클럽 에프에프 에디 황씨의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서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홍대에서 활동을 시작한 밴드 ‘사이보그’는 지난해 중국 투어까지 치러냈으며, 리더인 션 메일런은 현재 국외 뮤지션들의 내한공연과 국내 인디 뮤지션들의 외국 공연을 추진하는 기획자로 변신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에프에프에서 활동을 시작한 고참급 밴드 ‘위 니드 서저리’(We Need Surgery)도 최근 캐나다의 음반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현지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 모든 현상들이 단순히 외국문화의 유입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난 곰’과 같이 한국어로 밴드의 이름을 짓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음악인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스터즈 로니건 익스피리언스’(The Studs Lonigan Experience)처럼 한국인 멤버를 영입하면서 리듬감의 균형을 찾았다고 이야기하는 밴드도 있다. “우리 역시 한국 팬들에게서 자극을 받아, 한국의 많은 록 밴드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무언가를 선사하고자 한다.” 아일랜드와 미국인으로 구성된 3인조 밴드 ‘마그나 폴’(Magna Fall) 멤버들의 말처럼, 외국인 밴드들의 활발한 활동은 한국 팬은 물론, 나아가 한국인 밴드들과도 새로운 교류와 소통의 장을 제공한다는 것. 홍대 클럽가는 바야흐로 다국적 음악문화가 흥미롭게 뒤섞여 끓고 있는 거대한 솥이 되어가고 있다.

글 조민준 객원기자 zilch92@gmail.com·사진 제공 각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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