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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열린 타미야 아시아컵 한국예선전에서 코너를 돌고 있는 ‘한겨레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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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성환 기자의 ‘2012 타미야 아시아컵 한국예선전’ 참가기
배터리 급속 충전기고무 타이어 예열 장치 등
실제 모터스포츠 뺨치네 20여년 전이었을까. 한동안 동네 문방구 앞이 북적이던 때가 있었다. 문방구 입구에 놓인 미니카 서킷(경주용 도로)을 둘러싼 동네 아이들은 ‘그들만의 경주’를 숨을 죽인 채 지켜봤다. 당시 티브이에서는 주인공이 미니카 대결을 벌이던 애니메이션 <달려라 부메랑>이 한창 인기를 끌었다. 만화 주인공에 ‘빙의’한 동네 아이들은 엄마를 졸라 산 건전지 두 개로 움직이는 미니카에 범퍼 장식과 광폭 타이어, 그리고 일본산 충전지를 단 채 진지한 표정으로 문방구 앞에 모였다. 그때 내가 늘 경주에 졌던 건 아마도 속도를 두 배로 높여준다던 일본산 ‘블랙 모터’가 없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블랙 모터’ 대신 10년 넘은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는 지금, 여전히 미니카를 빼닮은 스포츠카는 없다. 그래서일까. 온갖 화려한 무늬로 치장한 묵직한 무선조종(RC·Radio Control) 자동차에 시선이 꽂히는 건, 추억 속 미니카를 기억하는 30~40대 남성들의 공통된 반응일 테다. 오래전 문방구 앞 패배를 설욕하고자, 지난 1일 서울 대림동 신도림 테크노마트 앞에서 열린, ‘2012 타미야 아시아컵’(Tamiya Asiacup) 한국예선전에 직접 출전해 아르시의 세계를 체험해봤다. 아르시 선수들, F-1 뺨치네
오전 8시, 경기장 옆 대기용 천막 안에서 선수들이 트렁크 가방에 한 짐 가득 들고 온 장비를 일찌감치 풀어놓고 아르시 차량을 손질하고 있었다. ‘스바루 임프레자’를 본뜬 내 아르시 차량의 애칭은 ‘한겨레 1호’다. 보름 전부터 동네 공원을 전전하며 주행 훈련을 했던 이 차는 아르시 입문자가 대부분인 ‘스톡’(Stock) 리그용 차량이다. 니켈-카드뮴(Ni-Cd) 배터리를 동력으로 뒷바퀴를 굴리며 ‘티티(TT)-01’ 모델이라고도 부른다. 그 밖에 아르시 차량은 대부분 제품을 생산하는 일본 타미야의 모델명에 맞춰 실제 에프원(F-1) 차량을 그대로 본뜬 ‘에프원’ 리그, 베엠베 미니쿠퍼, 폴크스바겐 시로코 등을 그대로 축소해 놓은 ‘엠-섀시’(Mini-Chassis), 앞바퀴 굴림 방식으로 만든 ‘에프에프(FF)03’, 상급자용인 ‘사륜 지티’(4WD GT) 등으로 나눈다. 경주에 앞서 선수들이 차량 정비에 쓰는 도구들은 실제 모터스포츠 장비처럼 다양했다. 배터리 급속충전기(완전히 충전해야 최상의 출력이 나온다)와 고무 타이어 예열 장치, 그리고 마찰력을 높이기 위해 바퀴에 바르는 그립제까지. 배터리를 동력으로 쓰지만, 차량의 기본적 구조는 실제 자동차와 비슷해 기어와 바퀴 정비에 따라 기록이 달라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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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킷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선수 조종대에서 차량을 조종하는 모습.(위 사진) 경기를 앞두고 차량을 손질하는 모습.(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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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
꼴찌로 결승점 통과 코너에서 욕심은 금물
오전 9시30분, 대진표가 붙었다. 한겨레 1호는 스톡 리그 4조, 참가번호 7번에 배정됐다. 경기 순위는 제한시간 5분 동안 서킷을 가장 많이 도는 것으로 매긴다. 이날 경기는 조별 예선 1차전을 두 차례 치르고, 이 가운데 최고 기록으로 2차전 대진표를 새로 짜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2차전에서는 기록 순서대로 10명씩 그룹을 묶은 뒤 경기를 치렀다. 경기 시작 3분 전, 차량 안에 전자칩을 달았다. 출발선에 달린 센서가 전자칩을 인식해 각 차량의 총 바퀴 수(Lap)와 최단 기록, 순위를 실시간으로 집계하기 때문이다. “(코너를 돌 때) 무조건 넓게 돌아요, 욕심내지 말고. 다른 차량 보면서 흥분하지 말고, 나만의 리듬을 타야 돼요, 리듬을!” 대기석 옆자리에 앉은 아르시 경력 35년차인 알씨월드 사장 이태희(44)씨가 주행법을 조언했다. 서킷을 내려다보는 조종대에 서니 손에 땀이 났다. 긴장도 풀 겸, 시범 주행을 해봤다. 지이잉~. 미끄러지듯 달리던 한겨레 1호의 운전석 쪽 뒷바퀴가 갑자기 데구르르 굴러나왔다. 정비 불량. 관중들의 폭소를 뒤로한 채, 부랴부랴 나사를 조이고 뒤늦게 출발선에 섰다. “자, 스톡 4조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1번! 2번!… 7번! 8번!” 대회 진행자의 안내에 맞춰 8대의 차량이 순서대로 출발했다. “삑! 삑!” 출발선을 빠져나가는 차량의 전자칩이 인식하는 소리가 장내 스피커를 통해 울렸다. 지이이이잉. 퍽! 가파른 코너를 잽싸게 돌아 나가다 이내 트랙에 부딪혔다. 우물쭈물대던 사이, 잽싸게 피해 나가려던 다른 차량이 한겨레 1호의 뒤꽁무니를 제대로 들이받았다. 순간,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며 무의식중에 리모컨을 세게 당겼다. 툭! 턱! 범퍼카처럼 트랙 곳곳을 들이받은 한겨레 1호는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으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총 10바퀴, 바퀴당 최고 기록 18초61. 조 1위를 한 3번 차량과 20바퀴나 차이나는 기록이었다. 아르시 매력은 뭘까? 아르시 경주에서 참가자들은 ‘마셜’(Marshall)이라고 부르는 ‘경기 정리요원’ 활동도 한다. 경기 중 뒤집히거나 주행이 어려운 차량을 정돈해주는 것으로 자신의 경기를 마친 뒤 차량 검수를 받는 동안 서킷 곳곳에 서 있어야 한다. 외국에서는 마셜을 보지 않으면 해당 선수를 실격 처리까지 할 정도로 엄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그 정도로 엄격하지는 않다. 이날 오후 이어진 예선 2차전에서는 꼴찌를 한 탓에 스톡 리그 C-클래스 8번에 배정됐다. 넓게 리듬을 타며 운전하라는 주변 선수들의 조언을 되뇌며 침착하게 주행을 시작하다 보니, 1차전과 다르게 한겨레 1호만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리모컨을 당겼다가 놓고, 핸들을 조정하기를 수십번. 5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총 12바퀴, 바퀴당 최고 기록 17초17. 1차전보다 나은 기록. 그러나 역시, 꼴찌는 면하지 못했다! 타미야 아시아컵 본선 진출의 꿈은 그렇게 물거품이 됐다. 그 대신 이날 서킷이 가르쳐 준 ‘꼴찌의 교훈’도 있었다. 앞만 보고 무조건 빨리 달리는 게 능사가 아니며, 내 능력과 호흡에 맞춰 주행을 할 때 비로소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인생의 주행법도 아르시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서킷 위에서 미소를 짓던 중년의 아르시 마니아의 모습이 새삼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글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차량협찬 한국타미야 life tip
타미야 아르시(RC) 대회는 무선조종(RC·Radio Control) 자동차는 구동 방식에 따라 휘발유와 오일을 섞은 연료를 쓰는 ‘엔진 방식’과 배터리를 쓰는 ‘전동 방식’으로 나눈다. 엔진 차량은 흙길을 넘는 오프로드 경기를, 전동 차량은 카펫을 깐 서킷을 달리는 온로드 경기에 참가할 수 있다. 타미야 월드 아르시 챔피언십(Tamiya World R/C Championships)은 일본의 전동 아르시 완구 생산업체인 ‘타미야’가 1998년부터 해마다 북미·유럽·오스트레일리아·아시아 등에서 열고 있는 세계 최대 전동 아르시 차량 대회다. 각 대륙 예선에서 우승한 선수가 매해 11월 타미야 본사가 있는 일본 시즈오카에서 최종 결승을 치른다.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열린 타미야 아시아컵의 올해 개최국은 한국이다. 오는 7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2012 서울오토살롱 행사장에서 아시아 각국에서 예선을 통과한 아르시 선수가 모여 타미야 월드 아르시 챔피언십 출전권을 두고 경기를 벌인다. 한국 예선전은 지난달부터 6월까지 매달 한 차례 진행하고 있으며, 경기 결과를 합산해 이 가운데 1~7위가 아시아컵에 진출할 수 있다. 다른 국가는 1~2위만 본선에 진출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올해 경기 개최국가 특전을 받아 출전 선수가 7명까지 늘었다. (참가 문의: 한국타미야 tamiya.co.kr, 02-572-7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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