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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이정희 기자 bb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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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상상사진관·옐로다이아몬드·상상마당·aA뮤지엄 등 젊은 기운 불어넣는 홍대앞 건축물들
신창훈영남대 건축과, 서울시립대 건축대학원 졸. 건축가그룹 ‘운생동’ 공동대표. 예화랑·옐로다이아몬드·케이티앤지(KT&G)복합센터 등 설계. 서울시건축상·건축문화대상·건축가협회상 등 다수 수상.
홍선관
홍익대 건축과 졸. 하버드대·컬럼비아대 부동산개발 석사, 도쿄대 도시공학 박사 수료. 서울사이버대 부동산학과 교수. 조각전문 모란미술관 부관장. 저서 <체계적으로 접근한 부동산개발론> 등 다수.
4일 오후 서울 홍익대 정문 앞. 거리가 활기에 넘친다. 복잡하고 시끄럽고 밝고 어지럽다. 오전에 둘러본 도산공원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홍씨가 먼저 홍대 정문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홍선관: 저것 좀 봐봐라.
신창훈: 아,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교문! (고개를 돌리며 웃는다.) 내 고마 안 볼란다!
홍: 교문 구실을 하는 건축물인데, 미대 등 예술분야 학과로 이름난 대학의 ‘얼굴’로선 아쉬움이 많은 건물이다.
기자: 미적 감각이 부족하다는 얘긴가?
신: 스케일은 좋은데 디테일이 못 따라간다고나 할까.
(신씨가 얼핏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아담한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상상사진관이다.)
신: 아주 아기자기하고 매스가 특이하게 구현된 건물이다. ㄱ자로 꺾인 터를 잘 이용해 효율적 공간을 연출한 7층짜리 철근콘크리트 건물이다.
홍: 주변 건물들과도 조화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신: 건물 옆쪽 골목으로 들어가 보자. 골목에서 보는 측면도 마치 건물의 정면처럼 보이지 않나?
기자: 그렇다. 두 곳 모두 건물의 정면 같다.
신: 이 건물을 설계한 문훈은 아주 특이하고 개성적인 건축가인데, 이건 좀 평범한 수준이긴 하다.
(길 건너편의, 지은 지 30여년 됐는데도 디자인이 나쁘지 않아 보인다는 국민은행 서교지점 건물을 바라보면서, 열차처럼 아기자기하고 작은 집들이 늘어선, 이른바 ‘서교365’ 앞을 걸었다.)
홍: 이 골목은 작은 가게들이 제각각 무작위로 들어섰으면서도 서로 조화롭게 어울려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다.
신: 홍대 앞 거리·건물의 특성을 나타내는 랜드마크 중 하나다. 무질서가 만들어낸 조화다.
(거리에서 마주친 여학생 2명에게 물었다.)
기자: 홍대 앞은 한마디로 어떤 곳인가?
학생들: 밤이 한낮인 곳? 젊다면 뭘 해도 용서받는 곳?
신: 내게도 물어보라. 내겐 쓰러져가는 쪽방들과 초현대식 건물이 서로 기대고 있는 ‘건축물 잡화점’으로 보인다.
홍: 여긴 솔라즈빌딩이다. 콘크리트와 폴리카보네이트(플라스틱 계열), 알루미늄 등을 사용했다.
신: 여러 재료를 써서 외형의 변화를 추구했다. 옆쪽엔 작은 대나무정원을 들이고 매스를 분절시켜 형태적 변화도 꾀했다.
“스케일 큰 홍대 정문
예술분야 유명대학 얼굴로는
많이 아쉬워”
홍: 간판이 어지러워 건물 본모습이 가려지는 듯하다. 역시 간판이 건물의 얼굴인 걸 알겠다.
(한 골목 돌아가니 눈부신 노란색 유리건물이 확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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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디자인뮤지엄 지하 가구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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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쑥스럽지만 얘기해 보자. 몇개의 작은 택지를 묶어 터를 닦았는데, 건물 1층에 옛 골목 모습을 그대로 살려 ㄱ자형 공공 통로(필로티)를 만들었다. 특징 중 하나가 지상 건물(5층) 높이보다 지하 공간(3층) 깊이가 더 깊다는 거다. 땅의 효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노력이다.
기자: 이색적 형태인데도 주변과 어색하지 않게 어울리는 듯하다.
신: 들쭉날쭉하고 복잡한 주변 경관을 고려해 건물 형태도 들쭉날쭉하고 아기자기하게 디자인했다. 유리 색을 노란색 계통으로 한 것도 같은 의도다.
(다시 액세서리 매장 즐비한 서교365 거리 거쳐 상상마당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신: 상상마당은 홍대 앞 문화거리의 특성을 가장 잘 표현한 건물이란 평가를 받는, 잘 알려진 건물이다. 콘크리트와 곡선 유리창을 통해 나비 날개를 형상화한 외벽이 돋보인다.
홍: 건물이 트인 쪽을 향하고 있어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신: 오늘 투어가 막바지에 이르는데, 이 기자가 저 건물(W&H빌딩) 외관에 대해 설명해볼 텐가?
기자: 노출 콘크리트 외벽에 평범해 보이는 건물이다. 그러나 건물을 크고 작은 2개의 매스로 분절시켜, 여러 덩어리로 나뉜 주변 건물과 조화를 꾀한 모습이다. 그런가?
신: 하하, 그렇다. 본건물과 계단실을 분리해 하나의 프레임으로 짜고 그 안에 공간을 배치했다.
홍: 입점한 가게가 그 건물을 돋보이게 한다는 말이 있다. 이 건물도 카페 겸 서점, 갤러리가 들어와 그런 구실을 하는 것 같다.
신: 다음은 가장 원초적인 매스를 보러 가자.
(골목을 돌아 들어가자 창문 하나 보이지 않는 육중한 네모꼴 건물이 나타났다.)
홍: 이런 건물은 건축주의 주장이 강하게 반영된 사례다. 개성이 너무 강해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더 눈길을 끈다.
“aA뮤지엄처럼
인테리어와 건축물 비슷한 톤일 때
편안함, 감동 느끼게 된다”
신: 단순한 박스 형태로 주변과 차별화한 두킴사옥(엉뚱상상)이다. 노출 콘크리트의 물성을 강조해 어두워 보이지만, 내부를 보면 느낌이 달라진다.
(높이 8m는 돼 보이는 육중한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두울 줄 알았던 실내가 상당히 밝았다. 내부는 인테리어 공사 중이었다.)
기자: 창문이 하나도 없는데 실내 조명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신: 여기 이 ‘탑 라이트 형식의 중정’(건물 가운데 설치한 위가 트인 깊은 공간) 때문이다. 자연광을 이용해 드라마틱한 내부 공간을 연출했다. 빛과의 결합을 잘 활용한 건물이다.
(골목을 되돌아 나오니, 멀리 당인리발전소 굴뚝이 보였다.)
홍: 홍대 앞 문화거리가 저 발전소 쪽으로 확대되고 있다. 조만간 새로운 개성적인 건축물들이 선보일 것으로 기대되는 지역이다.
신: 이제 마지막으로 에이에이(aA)디자인뮤지엄으로 가보자. 거칠고 색도 짙은 노출 콘크리트에 어딘가 습한 느낌, 무거우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건물이다.
홍: 공간 배치나 기둥, 가구 등이 유럽 중세식이어서 그런 듯하다. 1층 카페의 경우 천장이 높아 습한 분위기를 보완해준다.
신: 인테리어와 건축물이 비슷한 톤일 때 보는 이가 편안함, 감동을 느끼게 된다. 이 건물이 그런 느낌이다.
(널찍하고도 높직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탐방을 마무리했다.)
기자: 홍대 앞의 거리와 건물들은 도산공원 앞 거리에 비해 확실히 자유분방한 느낌, 좀더 활기차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신: 길도 건물도, 찾아오는 이들도 획일적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도산공원 앞이 잘 구획된, 럭셔리하고 보수적인 거리라면, 홍대 앞은 무질서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젊고 자유롭고 트렌디한 공간이다.
홍: 그런 분위기 역시 앞으로 부단히 새롭게 바뀌어 나갈 것이다. 그게 바로 홍대 앞 문화다.
기자: 오늘 수고 많으셨다. 건축물에 실눈이나마 뜨게 해준 두 분께 감사드린다.
(홍대 앞 건물 탐방엔 2시간30분가량이 걸렸다. 건물 하나하나가 스토리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서울이 얽히고설킨 아주 끔찍한 전깃줄 도시라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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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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