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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4.19 15:35 수정 : 2012.04.19 15:35

[매거진 esc]
영화와 미술작품에까지 스며든 감시의 추억, 사찰의 공포

민간인 사찰 사건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라고들 한다. 실제로 수많은 영화가 부패한 권력이 민간인을 감시하는 부조리한 사회를 지적해 왔다. 그런 영화를 보고는 현실의 권력과 미래사회의 불안을 비틀고, 풍자하는 수준이라 여겼다. 그런데 부조리한 영화 속 현실은 ‘지금, 여기’의 일이 됐다. 영화 또는 미술 등 예술의 주요 주제로 자리잡은 ‘감시’, ‘사찰’이라는 주제가 이렇게 우리 삶과 가까워질 줄은 몰랐다.

권력의 감시와 빅브러더 시대의 풍자가 예술 작품의 주제로 확장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가장 ‘핫’한 ‘감시예술’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지난 2일 중국에서 가택연금 중인 인권운동가이자 예술가인 아이웨이웨이는 정부의 감시에 항의하는 뜻을 담아 ‘아이웨이웨이캠’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다. 베이징 자신의 집에 4대의 감시카메라를 직접 달아, 인터넷을 통해 자가 감시 영상을 내보낸 것이다. 그가 무엇을 먹는지, 침대에서 어떻게 뒤척이는지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중국 공안당국은 감시카메라를 철거하도록 지시했고, 이틀 만에 아이웨이웨이캠은 폐쇄됐다.

영화 속에서 감시와 처벌이라는 주제는 가장 대중적인 할리우드 작품에까지 침투된 지 오래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1998년)는 9·11 테러가 있은 뒤 민간인에 대한 감시 체제가 더욱 강화된 미국 사회를 미리 예견하는 듯하다. 국가안보국(NSA)의 감청 및 도청 행위를 법적으로 승인하자는 법안에 반대하는 정치인, 그리고 그를 제거하는 현장을 담은 영상을 우연히 손에 넣게 된 주인공 로버트 딘이 국가 감시로부터 필사적으로 탈출을 하는 과정에서 묘사되는 현실은 끔찍하다. 주인공이 영상을 넣게 된 순간부터 작동하는 전방위적인 감시 시스템의 작동 과정은 영화가 선을 보인 14년 전에는 “저런 일이 있을라고” 치부됐지만, 오늘날은 치밀한 감시 기술과 그 가능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게 잘못된 일인 줄 몰랐다”는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증언과 이어진 민간인 불법사찰 내부고발은 그나마 보편적인 인간애가 발휘되는 순간이라는 게 있을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을 갖게 한다. 독일 영화 <타인의 삶>(2006년·사진)이 떠오른다. 독일 통일 5년 전, 1984년 옛 동독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비밀경찰(슈타지)이 행한 비인간적인 민간인 사찰의 전말을 보여준다. 예술가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 크리스타의 삶을 사찰할 것을 하명받은 주인공 비슬러. 그는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다, 그들의 삶을 오히려 이해하게 된다. 명령에 충실히 따르지 않은 비슬러는 결국 비밀경찰에서 집배원으로 밀려난다. “나는 당신의 관객이에요”라고 말하는 비슬러. 그의 눈에서는 비정함이 아니라, 인간애를 발견할 수 있다. 1990년 ‘보안사 민간인 사찰 파문’을 바탕으로 한 한국 영화 <모비딕>(2011년)도 있다. 실화를 소재로 했기에, 그 오싹함은 더할 수 있겠으나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흥행에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당시 윤석양 이병은 자신이 몸담고 있던 보안사령부가 1000여명의 민간인을 사찰했다고 폭로했다. 그 사건 뒤 2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개봉한 영화가 암시가 된 것처럼 민간인 불법사찰이 또 터져나왔다.

이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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