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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4.25 17:22 수정 : 2012.04.25 17:22

토바 호수를 향해 가는 길에서 여행자들이 마주친 초등학생의 통학 버스

[매거진 esc]
세계일주 인터넷 카페 ‘5불생활자 클럽’의 중장년층 오지 탐사 프로그램

은퇴한 중장년층
40~50대 골드미스
16명 탐사대원 선발

“여기는 3호차. 여기는 3호차. 전 대원 탑승 완료!” 무전기 너머로 설렘 가득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올해 67살인 이운원씨로 ‘수마트라 어드벤처’ 팀의 3호차 조장이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오지 탐사를 위해 준비한 스포츠실용차(SUV) 안에는 그와 뜻을 같이하는 중장년층 대원들로 만원이다.

지난 2월 국내 최대 세계일주 인터넷 카페인 ‘5불생활자 클럽’(cafe.daum.net/owtm)이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9박10일 동안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오지 탐사 프로그램인 ‘수마트라 어드벤처’를 진행했다. 이번 여행 도전자들은 그동안 패키지 여행 위주의 틀에 박힌 여행을 벗어나 진정 자유로운 여행을 찾아 도전한 사람들이다.

인터넷 카페에서 프로그램 참여를 신청한 300여명 가운데, 이제 곧 은퇴를 하거나 이미 은퇴를 한 50~60대의 장년층과 40~50대 ‘골드미스’ 등 다양한 사연을 품은 16명을 탐사대원으로 선발했다. 전업주부부터 퇴직 교사, 공무원, 만화전문기자, 펀드매니저, 방송작가 등 다양한 직업의 참가자들이 오염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자유로운 여행에 도전했던 10일간의 기록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배낭여행·패키지 여행의 주변인들, 한데 뭉치다
매서운 한파가 전국을 강타하던 지난 2월21일. 인천국제공항에는 다소 상기된 표정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태어나 단 한 번도 서로 만난 적 없는 이들이었지만, 꼬박 이틀이 걸려 수마트라의 주도 메단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가까운 여행 벗이 되었다. 젊은층 중심인 국내 배낭여행 문화, 그리고 가족 중심인 패키지 여행 사이에서 자유로운 오지여행을 꿈꾸지만 좀처럼 설 자리가 마땅치 않다고 느꼈던 이들은 금세 여행에 대한 동질감을 찾았기 때문이다.

수마트라는 인도네시아에서 둘째로 큰 섬이다. 짙은 녹음이 가득한 열대우림 지역으로 적도선이 섬을 가로지른다. 에덴의 동산이라 불릴 만큼 희귀 동식물이 가득하고, 북부에는 인류에게 마지막 빙하기를 안겨준 토바 호수가 있다. 토바 호수는 화산 폭발에 의해 생겨난 동남아에서 가장 큰 호수이다. 호수의 중앙에는 싱가포르만한 섬이 있으니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다.

이번 오지 원정대의 최종목적지는 이곳 호수 일대였다. 천혜의 자연환경임에도 아직 여행 상품이 개발되지 않은 곳이다. 23일, 메단에서 본격적인 출발 전 탐사대는 차량 4대에 나눠 탔다. 이곳 지리에 익숙한 현지인 운전자가 모는 차는 이동중에 어디라도 갈 수 있고, 어느 곳이라도 멈출 수 있다. 이 여행에 참여한 모든 대원이 누릴 가장 큰 의미는 바로 이것이었다. 관광버스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만들어진 여행에 이끌리지 않고, 각자가 참여해서 완성하는 여행이다.

여행 첫 목적지로 탐사대는 열대고원 브라스타기<278A>로 향했다. 수마트라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이곳은 네덜란드 식민 시절 더위를 피해 만들어진 정원 도시다. 도시라 하지만 우리네 시골 읍내와 다를 바 없다.

인근에는 지난해 400년 만에 폭발한 시나붕 화산<278B>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곳이다. 수마트라는 어느 곳이든 도시를 벗어나는 순간 곧장 깊은 정글로 이어진다. 덜컹이는 길가로 현지인들의 전통 가옥이 이어지고, 이따금 야생 원숭이 무리도 나타난다. 현지인들이 낯선 이의 방문에도 환한 미소를 보이자 시니어 대원들은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회상한다. 그 모습과 풍경이 30~40년 전의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다.

브라스타기를 향하는 여행자들의 차량 행렬(위) 토바 호수의 전경(아래)
4명 한팀
열흘 동안 함께 지내며
가족처럼 가까워져

무전기를 타고 흐르는 저마다의 사연
한국인들은 멍석만 깔아 놓으면 잘 논다고 한다. 아들이 첫 월급으로 늘 꿈꾸던 오지여행을 보내준 주부, 조카의 대학 입학 선물로 수마트라를 선물한 이모, 쿠바로 갈 수 있는 공짜 여행 티켓을 버리고 참가한 골드미스 등 지직거리는 무전기를 통해 저마다 다양한 사연이 흘러나온다. 낄낄거리며 웃는 동안 차 안에는 웃음의 눈물이 가득하다.

탐사대가 브라스타기에 도착했을 땐 해가 저물고 있었다. 인근의 시바약 화산에선 곧 폭발할 듯이 거칠고 메케한 유황 가스가 쏟아지고 있다. 대원들은 서둘러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유황온천으로 향했다. 시바약 화산 아래에는 화산의 지열을 타고 올라온 노천온천이 유명하다. 특별한 시설 없이 현지 자연에 그대로 노출된 풍경이다.

온천에 몸을 담그고 현지 맥주로 건배를 하는 동안 80년대 포크송이 흘러나온다. 그렇게 모두가 즐거워하는 사이 머리 위로 수십차례 번개가 친다.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 비는 곧이어 열대성 소낙비인 스콜로 변하고 주위는 순식간에 짙은 안개로 뒤덮인다. 상상해보자. 나는 지금 폭발하기 직전의 화산이 내뿜는 온천에 몸을 담그고 깊은 정글에 있다. 하늘에서는 세찬 소낙비가 쏟아지고 주위는 온통 신비로운 안개로 가득하다. 이 얼마나 짜릿하고 황홀한 풍경인가.

이튿날부터 탐사대는 정글을 벗어나 고원 위를 달린다. 주위로는 유명한 수마트라 커피 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하늘은 높고 푸르게 빛나며 뭉게구름은 낮게 드리운다. 여지없이 누군가 무전기로 “멈춰!”를 외치고 아름다운 시골길을 무작정 걷기도 한다.

토바 호수 남쪽에 있는 현지 원주민인 바탁 족의 전통 마을에서 ‘바탁 댄스’를 배우고 있는 여행자들
적도의 토바 호수에 닿다
탐사 사흘째, 토바 호수가 감동적으로 눈앞에 나타났다. 바다같이 넓은 호수가 적도의 강한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탐사대는 바지선으로 차량을 먼저 보내고 페리로 이동을 한다. 마침 장날이라 선착장에는 현지 장터가 크게 들어섰다. 탐사대는 조별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몸짓을 동원하여 현지식 장을 본다. 오늘은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서 캠프파이어와 바비큐 파티가 기다리고 있다. 파티장에서는 체면이 필요 없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 하나가 된다. 타오르는 모닥불을 두고 한국에서 좀처럼 할 수 없던 시니어들의 자유로운 영혼이 분출된다.

사모시르 섬<278D>은 은둔의 여행지로 알려져 있다. 개발되지 않은 이곳은 지금도 현지인들이 그들의 전통을 계승하며 살고 있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외국의 골수 배낭여행자들에게는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섬의 호숫가에는 답답한 도시를 떠나 찾아온 여행자들이 느긋이 시간을 즐기고 있다. 탐사대는 정원이 아름다운 숙소에 며칠간 머물며 섬을 일주했다.

섬을 일주하는 동안 일반 여행자들이 좀처럼 접근하기 힘든 오지의 마을도 찾아 나섰다. 가는 곳마다 모든 사람들이 환대하며 아이들은 그들을 반겨주었다. 모든 것이 순수했다. 자연은 사람을 닮았고, 사람도 자연을 닮았다. 모든 대원의 입꼬리에서 미소가 떨어지지 않는다. 참가한 한 대원은 근 몇 년 이래 이렇게 웃어본 적이 없다 한다. 대형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함께 여행하는 이들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끝나는 여행과 달리, ‘수마트라 어드벤처’는 4명이 한 식구처럼 움직였다. 그래서였을까. 열흘 동안의 여행 동안 대원들은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이 여행은 나를 위해 만들어졌어!”

어떤 지역은 외국인의 방문이 처음인 곳도 있다. 따라서 이번 탐사대가 이 지방 역사에 한 페이지를 근사하게 장식했는지도 모른다. 이곳을 방문한 최초의 외국인으로. 이번 수마트라 어드벤처를 통해 모두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대한민국 시니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정열적이라는 것을.

글·사진 심태열/‘5불생활자 클럽’ 운영자·<세계일주 바이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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