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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독자 참여 레고 백일장 수상작 전격 공개
배꼽 잡고 웃다가, 가슴이 짠해져 얼굴이 달아오르기도 했습니다. 정리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금상 레고학개론 20년 전 목련이 툭툭 떨어지던 어느 봄날, 친구 자취방에 놀러 갔다. 같은 동아리 친구였는데 무슨 볼일로 남학생 집에 스스럼없이 찾아갔는지 지금 돌이켜보면 아리송하기만 하다. 초대한 사람도, 찾아간 사람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던 걸 보면, 그만큼 풋풋했던 시절이라고 해두자. 지퍼가 달린 풀색 옷장이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던 단칸방. 다른 한쪽에는 전자공학 전공서들이 학교 후문 복사집 버전으로 쭉 꽂혀 있었다. 베개인지 쿠션인지를 허리 뒤에 끼고 벽에 기대 앉아 있는데 친구가 “이거 보여줄까?” 하고 은근한 목소리로 불렀다. “뭐?” 배 모양으로 된 조립 장난감이었다. “만드는 데 열흘 걸렸다. 2000 피스 가까이 된다.” 불의와 맞서는 시대정신을 논하는 동아리에서 뜻을 같이했다고 믿은, 말 그대로 ‘동지’인 친구가 코흘리개 애들이나 갖고 놀 장난감 배에 빠져 있다니! 해적선인지 거북선인지를 완성하느라 본인의 손톱보다 작은 조각을 끼워 맞추며 열흘 동안 삐질거렸을 친구의 모습이 당시의 시대상황과 너무 언밸런스하게 다가왔다. 거기다 쐐기를 박는 친구의 한마디. “이거 십만원 넘게 줬다.” 헉, 너 미쳤구나! 구로 노동자들 한달 임금이 얼만데! 자장면 200그릇이다, 이놈아! 그 뒤로 그 친구와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역시나 처음부터 둘 관계는 별다른 게 없었나 보다. 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다니다 결혼해 아줌마가 됐다. 막내아들 녀석이 레고에 빠져 유치원 버스 놓치는 걸 보고 있으면 가끔 그때 그 친구 생각이 난다. 그 친구를 만난다면 미안했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너의 취미와 너의 사회의식수준과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었다고. 그리고 그 조립품이 해적선이 아니라 항공모함이었단 걸 이제야 알았다고. 내가 그날 얼굴을 붉히고 나온 건 너한테 실망해서가 아니라 작은 창으로 나른하게 내리쬐던 봄볕 때문이었다고. 정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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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창(동상 수상자)씨가 모아둔 다양한 종류의 레고 피규어가 레고 건물을 배경으로 자세를 취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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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영(동상 수상자)씨가 유학생활 동안 집안 한켠에 차곡차곡 모아둔 레고 조형물(위) 오경석(동상 수상자)씨가 지난 크리스마스 날 여자친구와 함께 레고 블록 쌓기를 하면서 찍은 레고 피규어 사진(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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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문방구 아저씨, 죄송해요 어릴 적 서울 구룡산 기슭 양옥집에 살던 부유한 친구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골목 놀이에 익숙했던 나는 손가락만한 사람이 소방차에 앉아서 스마일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이런 장난감도 있구나.’ 그 부잣집 친구가 말했다. “이거 레고인데, 너네들 첨 봐? 우리 아빠가 자주 사 오시는데?” 순간 정적이 흘렀다. 사실 레고는 너무 비싸 우리집 형편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던 장난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새로 들어선 고층아파트 상가 문방구에 레고가 들어왔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너무 갖고 싶다….’ 그래서 내 인생 처음으로 ‘스리’(도둑질)를 했다. 가슴에 레고를 품고 문방구를 나왔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가. 여동생에게 고해성사를 하는데 동생이 “돌려줘”라고 했다. 다음날 오후 문방구에 들러 다시 물건을 조심스레 돌려놓았고 들키지 않았다. 1999년 첫 월급날, 난 부모님 속옷과 함께 레고를 샀다. 어떤 레고 시리즈를 샀는지는 기억도 안 나지만, 중요한 건 어렸을 때 부자 친구가 가지고 있던 레고, 훔쳐서까지 갖고 싶어했던 레고를 이제 떳떳하게 사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그 뒤로 각종 시리즈를 닥치는 대로 사 모았다. 책장에 레고가 하나둘 늘어났고, 지금의 아내에게도 레고를 선물했다. 요즘도 난 할인마트를 갈 때면 레고 진열대를 꼭 둘러본다. 올해로 39살이 돼 예전만큼 구입에 열을 올리진 않는다. 그런데 지난주 ‘반전의 기회’를 찾았다. 바로 여자아이들을 위한 ‘레고 프렌즈 시리즈’! 다섯살 난 딸을 위해 스테파니 공주의 핑크색 자동차를 샀다. 아… 레고, 너의 끝은 어디니…. 김인철
은상 아들아, 미안했어! 이제는 어엿한 대한민국 군필자가 된 아들이 유치원 다닐 때 일이다. 12월이 되면 유치원에선 부모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도록 했다. 선물은 산타클로스 분장을 한 유치원 관계자의 선물 꾸러미에 넣어져 짤막한 덕담과 함께 아이들에게 건네지는 수순이었고…. 문제는 선물을 받으려면 평소보다, 아니 평소와 완전 다를 정도로 착한 아이가 돼야만 한다는 것이었는데 부모들 또한 “때는 지금이다!” 하면서 미운 일곱살 길들이기에 돌입했었다. 예나 지금이나 외동아들에게 다소 엄격·인색한 편이었던 난 당시에는 초보 엄마라선지 더욱 냉정하게 굴었던 것 같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이를테면 양치질만 좀 미루면), “산타 할아버지께 선물 못 받는다” 운운하며 아이를 시험에 들게 하곤 했다. 그때 아이가 가장 받고 싶어한 선물은 당시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던 ‘레고 성 시리즈’! 가격대별로 몇 단계가 있었는데 당연히 그중 최고가였던 ‘비룡성’을 아이는 원했고, 그래서 매일매일 착해지려고 노력하는 아이가 귀엽기도 했지만, 당시로선 꽤 고가였던 탓에 좀 과하다 싶어 한 단계 아래 가격인 ‘용마성’을 선물로 준비했다. 그때 산타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아든 아이는 꽤 실망했는데, 못된 엄마의 한마디가 더욱 아이를 괴롭혔으리라. “착한 일을 조금밖에 못해 그것밖에 못 받았다”는…. 한참 세월이 흘러, 아이가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한치 의심 없이 부정하게 됐지만, 아이의 죄책감(?)을 불러일으켰을 추억의 ‘용마성’은 아직도 우리집 베란다 구석에 있다. 다른 레고 블록은 친척 아이들에게 물려줬지만, 용마성만 20년 가까이 처치를 못 하고 있다. 요즘엔 희귀 아이템이라 인터넷 등에서 비싸게 사고팔기도 한다지만, 용마성은 왠지 거기 계속 있을 것 같다. 아마 미안한 마음 때문일까? 혹시 아들이 결혼해 손주에게 물려준다면, 며느리한테 타박거리가 될까? ^^ 임경숙
동상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여자친구와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사람들로 넘쳐나는 거리를 돌아다니는 게 질색이었던 내가 생각해낸 건 레고였다. 여자친구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크리스마스날 레고를 만들자는 나의 제안을 그녀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오히려 신랄한 반응을 보인 건 직장 동료들이었다. 나의 계획에는 야유를, 여자친구의 관용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더불어 비난 섞인 조언을 쏟아냈다. 그때 난 레고에 푹 빠져 있었다. 당시 서른살 사회 초년생으로 적지 않은 직장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나에게 레고를 만드는 시간은 온갖 잡념과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원의 시간이었다. 삶에는 없는 매뉴얼이 레고에는 존재했고 그를 따라가면 무언가 근사한 것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크리스마스날 아침, 우리는 카페 구석에 앉아 레고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블록을 찾아주면 그녀가 조립을 했다. 색색의 블록들만이 달그락 담소를 나눌 뿐 작업은 무념과 무상 그리고 고요 속에서 천천히 진행되었다. 집·나무·사람·도로·자동차·기차 등 마을을 구성하기 위해 우리는 많은 것들을 만들어야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눈앞의 세계에 깊게 빠져들었다. 마침내 모든 작업이 끝나고 전원을 넣자 기차가 위잉 소리를 내며 천천히 움직였다. 그건 우리가 창조해낸 세계가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마을을 빙 돌아 운행하는 기차를 보며 그녀가 작은 탄성을 내질렀고 그때 그녀 표정은 어쩐지 레고 피규어의 그것과 닮은 듯 보였다. 반나절을 웅크리고 있어 뻐근해진 몸을 움직이러 카페 밖으로 나갔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작은 눈송이가 조용히 흩날리고 있었다. 순간 그녀가 나를 뒤에서 감싸 안았고 따듯한 콧김이 겨울밤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내 목덜미에 와 닿았다. 그해 크리스마스를 우리 연애의 가장 행복했던 날로 나는 기억한다. 오경석
동상 3000원에 건진 ‘왕건이’ 올해 설날, 중학교에 입학해 세뱃돈을 많이 받은 날 할머니댁 근처 오래된 한 문방구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들어가는 순간 딱 눈에 띄는 제품이 있었습니다. 제가 몇달 동안 사고 싶어했던 2003년에 나온 희귀한 레고 한정판 모델이었습니다. 레고는 뭐든지 옛 모델 예전에 나온 것이 희귀하고 비쌉니다. 그런데 그 모델이 여기 있다니! 척 봐도 디자인이 옛날 것 같은 이 레고는 무게가 100g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설계도만 해도 2만원이 넘습니다. 게다가 구하기도 힘들죠. 하지만 문구점 아저씨가 그런 사실을 아실 리 없죠~. 저는 이 레고 스타워즈 제품을 겨우 3000원에 샀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 제품을 뜯어보았습니다. 이 제품은 내 생애 최고의 보물이 되었습니다.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어느날 저는 레고를 같이 하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갔습니다. 그 친구는 개(닥스훈트 8개월)를 키웁니다. 저는 친구와 레고를 하고 있는데 말썽쟁이 수컷인 ‘감자’(아까 말한 닥스훈트)가 와서 제 레고 부속품을 먹어 버렸습니다. 친구도 그런 적이 많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부속품이 많아서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야 니 레고, 감자 똥으로 나왔다, 가져가라!” 저는 그 말을 듣고 참 ‘뻘쭘’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했습니다. “야 그냥 너 가져라 팁이야.” 참 웃기고도 황당한 이날, 그 친구와는 다른 중학교가 됐지만 그날의 일은 그 친구와의 소중한 추억이 됐습니다. 유희권
동상 유학생활의 동반자, 레고 레고에 얽힌 동화 같은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영국을 떠난 화물선이 큰 파도를 만나 컨테이너를 잃어버렸는데, 그 안에는 500만개의 레고 수중모험 시리즈가 실려 있었다고 한다. 독일 해류 전문가들은 부서진 컨테이너로 흘러나온 레고의 바다 여행이 약 1년 정도 걸릴 거라 예상했다. 놀랍게도 그 계산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이듬해인 1998년 여름, 미국 플로리다와 캐롤라이나주 해변 곳곳에 레고 수중모험가들이 속속 도착했다. 어린이들은 해변에서 뜻밖의 장난감을 만나게 됐다. 파도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해준 셈이다. 레고를 볼 때마다 지금도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는 내 귀에는 그야말로 환상적인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상 레고에 관한 나의 추억은 그렇게 환상적이지만은 않다. 일단, 아홉살 때는 레고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또래 여자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아야만 했다. 마론인형 놀이라든가 고무줄뛰기라든가 응당 ‘여자라면’ 함께 모여 했던 놀이들이 있는 법인데, 거기 동참하지 않고 감히 ‘남자들의 놀이’인 레고에 탐닉했던 것이 ‘괘씸죄’에 걸렸던 것이다. 그러나 난 끈질기게 ‘레고편’에 붙어 입을 꾹 닫은 채 집을 짓고 차를 만들었다. 레고를 다시 시작하게 된 건 외국에서 홀로 유학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부터다. 사람이 하루 종일 공부만 할 수는 없으니 여가 거리가 필요했는데, 그때 번쩍하고 레고가 생각났다. 곧장 레고 한 상자 주문해 침을 질질 흘려가며 다시 집짓기를, 헬리콥터 만들기를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레고를 더 사들였고, 집 곳곳에-책꽂이에, 선반에, 꽃병 옆에-자동차라든가 비행기, 장독대, 그리고 온갖 이름 붙이기 애매한 뭔가의 레고 조형물들이 들어섰다. 혼자 지내기에 썰렁했던 집이 훨씬 알록달록해졌다. 내 나이 스물아홉, 레고 오타쿠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던 해로부터 20년 만에, 다시 레고질을 재개한 셈이다. 부모님이 보셨다면 “다 큰 애가 쯧쯧쯧” 하실 수도 있겠지만, 다 이 맛에 독립해 사는 것 아니겠는가. 잠시 서울로 돌아와 살고 있는 지금은 레고 블록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은데, 그런 탓인지 마트나 백화점에 갈 때면 꼭 완구 코너 앞에서 서성이게 된다. 레고에 관해서라면 앞으로도 전혀 철들고 싶지 않은, 철들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애착. 오는 주말엔 대형 완구점에 가서 신상 레고가 나왔는지 한번 둘러보아야겠다. 여름에 다시 유학생활로 돌아가게 되면, 또 새집을 채워줄 레고 친구가 필요하니까 말이다. 정가영
동상 네버랜드, 그리고 레고랜드 “어릴 적 동화 보물섬 해적 선장 애꾸눈 잭은 안대가 오른쪽일까, 왼쪽일까?”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책장을 뒤적이고, 후크 선장과의 결투를 꿈꾸며 잠자리에 들었던 어떤 소년(또는 소녀)의 시대는 꽤나 동화적이고 낭만적이었으리라. 이들의 모험에 필요했던 건, 거대한 해적선도 날카로운 무기도 아닌 넘치는 상상력뿐이었으니까. 소년들은 상상력만으로 얼마든지 네버랜드로 날아가곤 했다. 하지만 어떤 소년들은 또다른 해적선장과 그의 세계를 접하는 데에 장난감 칼 따위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들의 항해는 단지 상상력 따위로 갈 수 있는 세계가 아닌, 문방구 안 높은 곳에 실재하던 바로 ‘레고랜드’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레고랜드는 소년들에게 애타는 갈망과 쓰디쓴 체념만을 어렵지 않게 체득하게 했다. 피터 팬의 네버랜드는 보이지 않되 (상상력으로) 갈 수 있는 세계였다면, 레고랜드는 보이되 갈 수 없는 세계였던 셈이다. 그러나 소년이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때, 외려 레고랜드로 가는 문은 ‘늙은 소년’의 눈앞에 거짓말처럼 활짝 열렸다. 은퇴한 로저 선장의 자리는 좀더 악랄해 보이는 브릭비어드 선장이 대신하고 있었고, 뉴캐슬 기사의 갑옷과 무기는 한층 세련되게 다시 태어났고, 해리 포터와 스타워즈의 캐릭터가 새롭게 등장해 레고랜드의 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채워놓고 있었다. 그뿐이랴, 고급스럽고 장식성이 빼어난 이른바 1만번대 레고 제품들이 준비돼 있었으니, 바야흐로 늙은 소년의 아름다운 시절이 다시 도래한 것이다. 영화 <피터 팬>에서 피터 팬은 이렇게 말했다.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함께 가자.” 이제 늙은 소년은 이렇게 말한다. “어른이 된 것에 대해 기뻐할 수 있는 곳으로 함께 가자.” 늙은 소년과 레고랜드의 시간 속에서 또다시 추억과 로망이 마치 레고 블록들처럼 단단히 쌓이고 쌓인다.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걱정 따위는, 적어도 레고랜드에서는 필요치 않다! 정민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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