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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수면 위를 미끄러져 가는 춘천 의암호의 카누 춘천세종호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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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춘천 의암호 ‘물레길’ 체험과 소양호변 산막골·부창골 옛길 트레킹
호숫가 도시, 춘천(봄내)에 봄바람이 가득하다. 나들이 나선 처녀 총각들, 실바람에도 싱숭생숭해져 마음 크게 출렁이며 호숫가를 하염없이 헤매는 곳. 물길 타고 산길 타며 봄바람 봄향기에 흠뻑 젖을 수 있는 춘천으로 간다.
춘천의 호숫가 봄바람을 가지가지 방법으로 쐴 수 있는 곳이 의암호변이다. 호반에 즐길거리들이 몰린 곳이 있다. 2년 전 춘천국제레저경기대회가 열렸던 곳, 송암레저타운이다. 주변에 암벽장·인라인코스·자전거코스 등 거의 모든 레포츠 시설들이 마련돼 있다. 지난해엔 카누·카약을 타고 호수와 섬을 둘러보는 ‘물레길’ 투어가 생겼고, 올봄엔 짜릿한 속도감을 맛볼 수 있는 카트 체험장이 문 열었다. 먼저 카누 체험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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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누를 즐기는 관광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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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젓는 카누
주변 숲·섬 풍경 장관 초록산 드리운 호수 노 저어 즐기는 물레길
“강풍만 불지 않으면 늘 탈 수 있죠. 주말이면 쌍쌍이 줄을 서요.” 물레길 운영사무국 수상안전강사 조민기씨는 “안전교육 뒤 구명조끼를 입는데다, 안전요원이 투어 안내를 하므로 안심하고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적삼나무로 제작된 카누는 가볍고 탄탄해, 천천히 노를 저어도 쉽게 물살을 가르며 나아갈 수 있다. 수면에 반짝이는 햇살을 깨뜨리며, 신록 우거진 산줄기 사이의 고요한 호수를 여행하는 맛, 신선이 따로 없다. 의암호 카누 여행은 1시간(3㎞)·2시간(5㎞)·2시간30분(8㎞)짜리 등 다섯 코스를 즐길 수 있다. 붕어섬 물풀숲 풍경과 중도 샛길의 섬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 그러나 정말 멋진 풍경은 따로 있다. 조씨는 “일교차 큰 날 아침에 와보라”며 “수면 가득 차오르는 물안개를 헤치고 카누를 즐기는 맛이 최고”라고 말했다. 2명 기준 3만원. 춘천 세종호텔(033-252-1191)은 6월 말까지 물레길 카누 투어와 숙박을 묶은 ‘물레길 체험 패키지’를 선보이고 있어 이용할 만하다. 객실 1박, 2인 조식, 체험비, 셔틀(편도) 포함 주중 12만원, 주말 13만원. 춘천의 봄바람 즐기는 방법 중엔, 신록 덮인 산줄기로 이어진 옛길 탐방도 있다. 의암호 주변에도, 한양으로 이어지던 석파령 너미길(넘잇길)을 비롯해, 의암호 나들길 등 옛길 탐방 코스가 조성돼 있다. 잘 정비된 이들 길을 뒤로하고, 소양호변에 숨어 있다는 또다른 옛길을 찾아 나섰다. 심마니 움막 있던 오지마을 산막골
“옛날 80집이 살았는데, 물에 잠기면서 거의 다 신북 쪽으로 나갔지.” 춘천시 북산면 청평2리 산막골. 한국전쟁 전 17살 때 개성에서 월남했다는 김영수(84·큰산막골)씨가 밥상을 차리며 말했다. “지금은 한 50집 사는데 댓집 빼곤 다 외지 사람들이여.” 김씨는 자식들 도회지로 보내고 혼자 사신다. 산막골은 소양댐에서 하루 두차례만 오가는 배를 타거나, 험한 산길을 돌아 들어가야 하는 오지 마을이다. 청평사 탐방객으로 붐비는 청평골(청평1리) 이웃 골짜기다. 지난 3월 말 양구로 이어지는, 국내 최장 차도 터널인 배후령 터널(5.1㎞)이 뚫리면서 그나마 가는 길이 수월해졌다. 산막골은 옛날 심마니들의 움막이 있던 곳이다. 외지 사람들 중엔 화가 등 예술인도 있다. 하지만 두릅나무·오가피나무 새순 파릇파릇한, 호숫가 골짜기 마을 자체가 이미 그림이고 예술이다. 김영수씨가 차려주신 밥상만 해도 그렇다. 찬밥에 된장, 돌나물 물김치, 데친 곰취, 무장아찌, 그리고 땅두릅·개두릅·참두릅…. 바라만 봐도 그림인데, 먹어 보니 예술이 따로 없다. 소양호 전망이 가장 좋다는 ‘승호대’ 고갯길에 차를 세워두고, 옛길 탐방에 나섰다. 춘천에서 양구로 넘어가던 옛 고갯길 일부와, 일제강점기 건설된 비포장 국도의 흔적을 따라 걷는 호반길이다. 승호대에서 참나무·소나무 울창하게 우거진 내리막 능선을 따라, 마른 참나무잎 두껍게 깔린 산길을 걸어 내려갔다. 노란 산괴불주머니, 초롱 같은 둥굴레꽃 반기는, 낚시꾼들만 이용한다는 길이다. 고사리 깔린 두번째 무덤 밑에 희미한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왼쪽이 옛 면소재지 내평리로 이어지던 길이다. 옛날 산막골 주민들은 이곳을 거쳐 내평초등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왼쪽 길로 잠시 가면, 곳곳에서 땅을 팠던 흔적들을 만난다.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를 찾기 위한 발굴 흔적이다. 전쟁 막바지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좀더 내려가자 검은색 움막들이 나타났다. 봄부터 가을까지 낚시꾼들이 머무는 곳이라고 한다. 더 내려서면 그윽한 숲길은 끊기고 탁 트인 소양호 물길이 펼쳐진다. 길을 안내한 춘천의 옛길 해설사 신용자(61)씨가 물에 잠긴 길에 대해 설명했다. “오른쪽 산으론 양구 가는 옛 신작로가, 마주 보이는 산쪽으론 내평리 가던 옛 오솔길이 있었죠. 왼쪽 길은 부귀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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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막골과 부창골 사이 숲길(위) 부창고개 옛 비포장 국도에 세워졌던 이정표. ‘양구’라는 글씨가 보인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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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장 국도의 흔적
따라 걷는 호반길 물속으로 이어진 옛 오솔길·찻길 자취 뚜렷
이 일대는 세 물길이 만나는 지역으로, 조선시대 역이 설치됐던 곳이다. 부창골, 부창고개로 불린다. 소양호 담수에도 불구하고 춘천~양구 옛 오솔길과 일제강점기 국도 흔적이 함께 남아 있는 유일한 지역이라고 한다. 부창고개 주변엔 낚시꾼과 요양 온 이들이 머문다는 움막이 즐비하다. 부창고개 옛길에 대해 묻자 한 주민이 “여덟 놈이서 굴려다가 화덕 만드는 데 썼던, 이정표 표석이 있다”고 했다. 낙엽을 헤치고 찾아낸, 그을음이 묻은 채 쓰러져 있는 표석에 흰 모래를 뿌리자 ‘양구 7.5㎞’란 글씨가 드러났다. 샘터 앞쪽 호숫가의, 물속으로 뻗어간 옛 국도 흔적이 박힌 절개지 모습이 기이하고도 허망하게 다가온다. 샘터 위쪽으로 이어진 옛 오솔길은 무너져 있어 위험하다. 무너진 길옆 가파른 비탈을 타고 기어올라야 한다. 한동안 울창한 숲길을 오르내린 뒤 작은 물길 따라 내려서면 소양호변이다. 물길을 두번 건너 오른쪽 산기슭으로 올라 다소 가파른 ‘깔딱고개’(무덤 있는 곳)를 넘어 내려가면 비로소 숲길이 끝난다. 고추를 심은 작은 밭들(숯가마골)이 나타나 마을이 가까웠음을 알려준다. 경로당·마을회관이 있는 작은산막골 지나 언덕을 넘으면 처음 들렀던, 배터가 있는 큰산막골이다. 승호대에서 부창고개 거쳐 큰산막골까지 약 4.5㎞. 승호대~부창고개(약 2㎞) 구간은 거의 내리막길이다. 부창고개 약수터~큰산막골(2.5㎞) 구간은 길 찾기가 어려운 곳이 일부 있다. ‘춘천문학기행’ 글씨가 쓰인 노란 리본을 찾아야 한다. 춘천=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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