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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이응일 감독이 추천하는 가족영화 재미있고 간단하게 만들기
스티븐 스필버그는 무려 13살에 8㎜ 필름 카메라로 생애 첫 단편영화를 찍어 완성했다. 열살 때부터 단편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인도 출신의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어떤가. 물론 이들은 난다 긴다 하는 영상언어의 천재들이다. 괜히 비교하면 주눅만 들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보다 나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영상을 찍고 편집하기가 예전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편리해졌다는 사실이다. 요즘 흔한 스마트폰은 대부분 풀 에이치디(HD) 동영상 촬영이 된다. 컴퓨터나 스마트패드로 편집도 쉽게 할 수 있고, 유튜브 같은 동영상 사이트에 뚝딱 올려서 친한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 이제 기술은 충분히 발전해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남은 문제는 아이디어와 노하우. 딱히 무얼 만들고 싶은지, 어떻게 만들어야 좋을지?
오월은 가정의 달. 자녀들과 함께 단편영화를 한 편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떤가? 대개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좋은 아이디어가 넘친다. 독자 여러분은 거기에 어른들만의 노하우를 보태주는 것이다. 그렇다. 아이들이 감독을, 어른들이 프로듀서를 맡아 영화를 만들면 뭔가 세대간의 시너지가 일어나 의외로 훌륭한 작품이 탄생할 수도 있다.
콩가루 우리 가족꿈에 본 괴물 등
아이들 좋아하는 주제로 교훈적이기보다 아이들이 공감할 주제를 잡아라
집에서 영화 만들기의 과정은 크게 구상-촬영-편집의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주제와 형식을 잡는 것이다. 주제라고 해서 어렵거나 교훈적인 것을 뜻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공감할 만한 주제라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지 않을까? ‘우리 아빠는 집에 오면 잠만 잔다’,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불러도 절대 안 모이는 콩가루 우리 가족’, ‘할머니는 컴퓨터를 싫어해’, ‘꿈에 본 무서운 괴물’. 이런 주제들이 연기와 연출이 어우러진 극영화에 적합하다면, ‘뒷산에 사는 작은 생물들’이나 ‘동네 시장과 대형마트 비교 탐방’, ‘우리 집에 매일 밥 먹으러 오는 길냥이’ 같은 주제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어내는 편이 좋을 것이다. 또한 생활의 기록과 함께 감독의 개입과 연출을 자유롭게 뒤섞은 영화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렇게 극도 다큐도 아닌 제3의 장르를 유식한 말로 ‘에세이 영화’라고 한다. 주제와 형식을 결정했다면 이제 이것을 글, 즉 시나리오 또는 구성안으로 구체화할 차례다. 시나리오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신’(scene)으로 나뉜다. 처음 만드는 영화라면 한 신을 대략 1분으로 잡고 5신, 즉 5분 안팎의 분량으로 쓰는 것이 좋겠다. 너무 욕심내면 완성하기 힘들다. 시나리오의 본문은 대사와 지문으로 이루어진다. ‘잠만 자는 아빠’라면 “십분만 더 잘게, 십분만”이라는 대사를 반복할 것이다. 이때 이어지는 지문은 ‘아빠가 이불을 머리 위로 끌어올리자, 소영이가 한숨을 푹 쉬며 도로 이불을 당겨 빼앗는다’쯤이 되겠다. 시나리오를 다 썼다면 곧바로 찍기보다 ‘콘티’(conti)를 그려 보자. 스케치북을 길쭉한 네모칸으로 나눠서 시나리오의 내용을 순서대로 잘게 쪼개 그림, 즉 숏(shot)으로 옮긴다. 잘 그릴 필요도 없다. 하나의 숏 안에 누가, 몇 명이 등장하는지 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때 명심할 것은 화면에 인물의 얼굴을 크게 잡을수록 감정을, 전신이 드러날수록 행동을 표현하게 된다. 물론 사람 대신 장소나 사물만 비춰주는 숏도 가능하다. 여러 개의 숏이 연결되어 신을 이루고, 신이 연결되어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단 하나의 숏으로만 이루어진 30초 내외의 ‘초단편 영화’도 원한다면 도전해볼 만하다. 첫 작품은 무리없이
5분 안팎으로
완성작은 주변에
많이 보여주길 삼파장 스탠드로 촬영 조명을
이제 본격적으로 촬영을 준비하자. 앞서 말한 5분 남짓 분량이라면 하루나 이틀 동안 에 다 찍을 수 있다. 배우는 가족들이 역을 나눠서 맡고, 장비는 카메라와 조명 두 가지만 준비하자. 카메라는 스마트폰도 충분하고 동영상 촬영이 되는 디지털카메라나 캠코더가 있다면 훌륭하다. 촬영한 동영상이 컴퓨터나 스마트패드의 편집 프로그램에서 불러오기가 되는지 미리 테스트해보고 카메라를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 동영상 촬영이 되는 디카가 없다고? 그러면 최후의 수단이 있다. 바로 디카로 찍은 정사진(스틸 컷)을 이어붙인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편집을 통해 마치 옛날 변사처럼 목소리 해설을 덧입히면 복고풍의 형식미가 오히려 신선한 작품이 탄생할 수도 있다. 조명의 구실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영상언어인 배우의 표정을 잘 드러나게 하는 것. 집에 굴러다니는 삼파장 스탠드에 하얀 비닐봉지를 씌워 빛을 은은하게 산란시켜 주면 충분하다. 이제 ‘레디, 액션!’을 외칠 차례다. 꼭 콘티의 신과 숏의 순서대로 찍을 필요는 없다. 배우가 대사를 외우고 연기 연습을 몇 차례 해본다. 감독이 ‘레디~’를 부르면 카메라맨이 녹화 버튼을 누른다. ‘액션!’을 외치면 배우가 연기를 시작하고 카메라도 배우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인다. 배우의 연기가 끝나고 1~3초 정도 여유를 준 뒤 ‘컷!’을 외치면 녹화를 멈춘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여러 테이크를 다시 찍어 나중에 골라 쓰면 된다. 콘티에 표시를 해가며 숏을 하나하나 정복하는 과정은 긴장감과 성취감으로 가득할 것이다. 아이무비 앱 편집 이렇게 간편할 수가
아마도 편집은 집에서 영화 만들기에 있어 가장 어렵고 까다로운 과정일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했듯, 또는 감자와 당근 등의 재료를 다듬고 썰어야 한 냄비의 카레가 탄생하듯, 촬영한 숏들을 잘 다듬고 연결해야 한 편의 영화가 비로소 완성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스마트패드가 조만간 지구상에서 가장 쉬운 영화 편집 도구의 자리를 차지할 것 같다. 특히 아이패드의 아이무비라는 동영상 편집 앱은 이 분야의 선구자 격이다. 우선 별도 판매하는 아이패드 카메라 키트를 이용해 아이폰이나 디카로 찍은 동영상 파일을 아이패드의 사진 앱으로 옮긴다. 그다음 아이무비를 실행해 촬영한 숏들을 불러온다. 숏의 앞뒤를 자르고 다듬어 순서대로 타임라인에 올린다. 해설 자막이나 분위기 있는 음악도 집어넣을 수 있다. 최종 완성된 타임라인을 하나의 파일로 출력하면 영화가 완성! 영화의 시작과 끝에 서서히 밝아지고 어두워지는 페이드 효과를 준다면 더욱 그럴듯하다. 스마트패드가 없다고? 전혀 문제없다. ‘윈도 라이브 무비메이커’라는 프로그램을 검색해서 피시에 설치하면 좀더 세밀한 편집이 가능하다. 구상-촬영-편집의 3단계를 마쳤다고 끝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창작과 예술은 보고 듣고 읽어주는 이들을 통해 존재 가치를 얻는 법. 가족들이 함께 만든 영화도 마찬가지다. 유튜브, 다음 tv팟 등의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 완성된 영화를 올려놓고 그 주소를 친지들에게 메일로 보내주자. 많은 이들의 감상을 듣는다는 것은 정말 가슴 설레는 일이다. 스마트폰에 담아 다니며 직장 동료들에게 수시로 보여주는 팔불출 엄마 아빠가 되어보는 것도 좋겠다. 가족끼리 고민하고 협동하고 때로는 아웅다웅하면서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여러분과 자녀들은 소중한 추억뿐만 아니라 소통을 통한 마법 같은 영혼의 치유를 얻을지도 모를 일이다. <잠만 자는 우리 아빠>를 제작하면서 아이들은 아빠의 피곤한 생활을 좀더 이해하고, 아빠는 휴일의 잠을 줄이고 아이들과 다정한 얘기라도 더 주고받게 된다면 말이다. 글·사진 이응일 감독·<불청객>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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