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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5.30 18:02 수정 : 2012.06.01 15:26

[매거진 esc]
도시농부를 위한 몸뻬 만들기 워크숍 체험기…과정은 단순, 부드러운 감 손질은 쉽지 않네

3주 전, 지인의 노후 대책용 나무를 심기 위해 강원도 평창으로 향했다. 5년을 묵힌 땅에서 돌을 고르고, 질기디질긴 쑥을 캐는 도중, 가운데 바짓가랑이의 실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뜯어졌다. 삽과 호미를 들고 설치는데, 달라붙는 등산복을 입고 나섰으니 자초한 일이다. 지을 땅을 찾아 도시 밖으로 나가거나, 도시 안에서도 스스로 싱싱한 제철 채소를 재배하고 싶어하는 초보 농부들이 늘고 있다. 이럴 때 입는 옷으로는 뭐니뭐니해도 몸뻬가 최고다.

농사짓기 공동체
‘오리보트’가 마련한
아마추어를 위한 워크숍

재봉틀로 몸뻬 바지의 허리 부분을 박음질하는 모습
몸뻬(もんぺ)는 일본어다. 우리말로는 ‘일바지’라고 한다. 일본에서 전통적으로 일할 때 입던 바지인데, 일제 치하에 국내에 들어왔다. 몸뻬 상륙에는 아픈 역사가 깃들어 있지만, 여성 농민들의 패션에 몸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재래시장에서 몸뻬는 소재에 따라 5000~1만5000원 정도면 살 수 있다. 사면 된다. 그리고 만들어도 된다. 수고스러운 일이긴 하다. 농민들의 시각에서 보자면 ‘애써 밥 먹고 뭐하는 짓?’이라고 볼 수도 있는 ‘잉여질’에 가까운 일이긴 하다. 그런데, 내 손으로 몸뻬 만드는 재미가 쏠쏠하다. 게다가 요사이 유행하는 ‘배기 팬츠’(엉덩이 부분에 여유가 있는 바지)와 스타일에 큰 차이 없다. 그래서 몸뻬를 지어봤다. 지난 26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통의동의 복합문화 전시공간 ‘보안여관’에서는 세번째 ‘세상의 모든 아마추어’(세모아)라는 이름의 벼룩시장이 열렸다. 보안여관 2층 한편에 ‘오리보트’라는 공동체가 여는 ‘몸뻬 만들기 워크숍’에 참여했다.

오리보트는 책 읽는 모임으로 시작해, 덜컥 농사짓기까지 손을 뻗친 9명이 일구는 공동체이다. 충북 제천에서 농사를 짓고 모여서 이야기하고, 논다. 이들에게 몸뻬 마련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바느질로 옷 짓는 방법을 숙련된 전문가인 ‘차강’에게서 전수받아, 다른 아마추어 농부에게 몸뻬 만드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자리를 마련했다.

워크숍 장소에 놓인 재봉틀을 보자, 겁부터 났다. ‘손바느질로 하는 것 아니었어?’라는 생각이 뇌리에 스치는데, “손바느질로 해도 돼요. 그런데 3일 걸려요”라고 최빛나씨는 말했다. 전기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몸뻬 만들기의 주된 과정은 4단계로 아주 간단하다. 1단계는 옷감에 옷본 그려넣기, 2단계 옷감 재단하기, 3단계 바느질, 4단계 고무줄 끼우기. 시작하기 전에는 이렇게 간단할 줄 알았다. 옷감은 올해 봄여름 트렌드에 부합하여 ‘꽃무늬 프린트’를 선택했다.

옷본은 자신의 다리 길이 등을 고려해 만들면 된다. 사진의 옷본을 4개 뜨면 바지를 만들 수 있다. 달라붙는 옷이 아니기에, 넉넉하게만 그리면 된다. 이날 오리보트 쪽에서 준비한 옷본의 허리둘레는 120㎝, 제일 넉넉한 엉덩이둘레는 140㎝였다. 길이는 90㎝로, 한국인의 체형을 잘 고려한 옷본이다. 옷감 안쪽에 완성본을 그리고 난 뒤 시접선(바느질을 하기 위해 남기는 여유분을 고려한 완성본 바깥의 선)을 그려 넣어야 한다. 허리와 밑단 부분은 고무줄을 끼울 부분을 고려해 5㎝, 나머지는 1.5㎝를 잡아 시접선을 그린다. 옷본을 그려넣을 때, 식서 방향(옷감을 잡아당겼을 때 늘어나지 않는 방향)을 세로로 두어야 한다.

처음 만진 전기재봉틀에
익숙해진 순간
허리구멍을 박아버렸네

몸뻬 만들기 워크숍에서 바느질을 가르쳐주고 있는 차강(활동명)씨와 참가자(위) 재봉틀 첫 경험은 긴장의 연속이다(아래)
옷감 재단은 가위로 자르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몸뻬인데 대충하면 될 거야 하고, 옷감을 절반으로 접어 잘라 다리 한 쪽씩을 만들었다. 웬걸. 흐물흐물, 부드러운 옷감이어서, 자르고 난 뒤 포갰더니 대칭이 안 맞는다. 그 뒤에는 바느질선도 뒤죽박죽이 돼, 일감이 두배가 됐다. 시간은 약 5분 정도 더 걸릴 뿐이니, 다리 한 쪽씩 따로 정성스럽게 재단하는 게 낫다.

바느질은 전기재봉틀을 썼다. 완성선대로 박으면 될 일이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재봉틀 사용법을 알려준 최수연씨는 “당신의 손을 믿지 말고, 재봉틀을 믿으라!”며 채근하지만, 손에 빳빳하게 힘이 들어갔다. 결과는? 재봉틀의 바느질 속도에, 부러 힘을 주어 천을 밀었더니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셔링 처리된 몸뻬”라며 웃어넘겨 버렸다. 어느새 붙은 재봉틀 자신감에 “저, 잘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순간, 사고가 났다. 다리를 넣어야 할 허리 부분을 직선으로 아주 곱게 잘 박아 버린 것이다. 일일이 쪽가위로 곱게 박은 허리 부분을 다시 터야 했다.

제대로 재단이 되지 않은 탓에, 가장 중요한 고무줄을 넣는 부분을 바느질할 때 곤란해졌다. 다행스러운 것은 화려한 옷감이어서 들쑥날쑥한 바느질선이 크게 도드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허리와 밑단 고무줄을 넣는 부분을 접어 바느질을 할 때의 원칙은 “중간에 막히지 않도록 구멍만 살려놓으면 된다”이다. 고무줄 들어갈 부분의 너비는 들쑥날쑥했지만, 구멍 살려놓기에 애를 쓴 결과 1㎝ 정도 되는 튼튼한 고무줄도 제대로 끼울 수 있었다. 밑단 부분은 그냥 두어도 되고, 고무줄을 넣어도 된다. 발목 둘레에 맞게 좁혀 재봉하면, ‘배기 팬츠’ 스타일 부럽지 않다.

2시간 정도의 몸뻬 워크숍을 마치고 나자, 역시나 어깨가 결린다. 긴장해서 입을 쭉 내빼고, 잔뜩 웅크린 채 재봉을 해서다. 바짓가랑이가 셔링 처리된 꽃무늬 몸뻬의 용도는 무궁무진하다. 잠옷으로도 안성맞춤이다. 아직 밭일을 하러 갈 때 입지는 못했다. 헐거운 바느질에 등산복처럼 바짓가랑이가 뜯어질까 걱정되지만, 넉넉한 엉덩이 품에 안심이 된다.

style tip

몸뻬 만들기를 위한 깨알 정보

옷감 구하기 서울 동대문시장에 옷감을 파는 곳이 많이 있지만, 이곳은 도매인 경우가 많다. 일바지(몸뻬)를 만드는 데 드는 옷감은 2마(약 180㎝) 정도이다. 이 정도면 자투리 옷감을 구해 만들어도 무방하다. 서울 광장시장에서 이런 자투리 천을 살 수 있다. 옷감에 따라 다르지만, 저렴한 것은 1마에 2000원이면 살 수 있다.

재봉틀 대여 일바지 한 벌 만들자고, 수십만원짜리 재봉틀을 사는 것은 어불성설. 꼭 몸뻬가 아니더라도 집에서 옷을 리폼하거나 생활용품을 만들 때 유용한 재봉틀을 빌려 쓰자. 디아이와이(DIY) 열풍에 한 달에 3만원을 내면 재봉틀을 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등장하고 있다. 전문가 수준이 아니라, 적당한 재봉 기능이 필요하다면, 미니 재봉틀로 시도를 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글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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