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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둔제로에너지하우스 외부 김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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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홍천·괴산·아산의 고단열주택 탐방기…월 10만원이면 한겨울 난방도 거뜬
국내의 패시브하우스 실태는 열악하다. 공식인증을 받은 주택은 딱 한군데, 인천 청라지구의 경로당 건물뿐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쏠려 있지만 실제로 기준에 맞춰 시공하고 엄격한 심사를 통과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시공자도 한손에 꼽을 정도다. 건축비는 일반 건축의 1.5~2배에 이른다. 그 때문에 패시브하우스는 주로 여유있는 지식인들이 선호하며 정식 패시브하우스가 아닌 ‘고단열주택’ 수준으로 시공되는 실정이다. 한 건축가는 이런 현실이 국내 건축계의 현주소라고 말했다. 기존 주택업자들이 기능보다는 인테리어에 치중해 패시브하우스 설계·시공능력이 없으며, 필요한 국산 소재가 없거나 있다고 해도 성능이 떨어져 수입재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일선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난 고단열주택 짓기 붐은 에너지 절약, 공동체 생활, 웰빙 등 제각각의 목적을 갖고 있다. 패시브하우스 취재 결과, 우리가 사는 주택의 시공이 무척 열악하며, 건축업자들이 에너지 문제에 무신경하며, 건축주들 역시 주택을 삶의 질이 아닌 외양 꾸미기에 치중하고 있음을 절감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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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둔제로에너지하우스 내부 김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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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소재 부족
인증받은 패시브하우스는 단 1곳 SIP벽체를 쓴 강원도 홍천군 내면 율전리 살둔제로에너지하우스
주인 이대철씨가 용인 ‘작가주택’에서 처절한 겨울나기를 한 경험을 거울삼아 2008년에 지은 고단열 목조주택이다. 패시브하우스의 개념을 국내 처음으로 도입해 그동안 1만여명이 다녀가고 33차례 텔레비전에 나오는 등 유명세를 치렀다. 벽체의 소재는 구조단열패널(SIP·Structural Insulated Panel). 15년 동안 헤매다 미국의 한 건축전시회에서 찾아냈다. 흑연이 섞인 스티로폼을 합성합판으로 감싼 형태다. 값싸고 단열성이 우수할 뿐 아니라 튼튼해서 구조재 역할도 겸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집의 형태는 동서로 길쭉한 남향의 직사각형. 창문의 크기는 남쪽이 바닥 대비 12%, 동쪽이 3%, 서쪽이 5%, 북쪽이 2%다. 남북의 벽면이 넓은 점을 고려하면 북쪽에는 쪽창을 두개 냈을 뿐이다. 건물 폭은 7m. 겨울철에 햇볕이 끝까지 미칠 수 있도록 했다. 바닥을 타일로 마감하고 거실과 작은방 사이에 황토벽을 쌓았다. 에스아이피 벽체가 온도와 습기를 조절하는 기능이 거의 없는 점을 고려한 보완책이다. 인상적인 것은 부엌과 거실 중간에 놓인 거대한 페치카. 일종의 ‘온돌벽’으로 방문객들이 가장 관심을 보인다. 원산지 러시아 도면대로 만들어 실내로 연기가 나지 않으며 한번 때면 실내기온을 2~3일 동안 뭉근하게 덥힌다. 장작 외에 연료비가 들지 않는데, 장작을 석유로 환산하면 1㎡당 한해 1.7ℓ라고 한다. 노부부의 만족도는 무척 높으며 손님들에게 집을 개방해 고단열주택 ‘전도사’ 노릇을 하고 있다. 독학으로 지은 만큼 시행착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폴리우레탄을 소재로 한 단열덧문. 창문 바깥에 여닫이 식으로 달았는데, 기밀성에 문제가 있어 현재는 그냥 멋으로 놔두고 있다. 또 햇볕 유입에 유리할 거라는 판단에서 택한 이중 유리문도 빠져나가는 에너지의 양이 더 많아 삼중유리로 교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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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마을의 전형적인 주택(왼쪽) 아산 단독주택과 같은 공법의 판교 주택(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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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 동문 57가구가 귀촌을 목표로 형성한 마을이다. 개울 양쪽으로 54채의 가구가 들어섰으며, 현재 35가구가 상주한다. 모두 경량목구조 주택이다. 집들은 모두 남향이며 3가지 평형 가운데 형편에 맞는 것을 골랐다. 기와로 지붕을 마무리하고 남-북향 지붕이 높이를 달리해 엇갈리는 부분에 다락창을 두어 성냥갑 같은 모양을 피했다. 벽체는 유리섬유와 미네랄섬유 두 겹으로 단열을 하고 일종의 고어텍스와 비슷한 소재의 필름으로 기밀처리하여 습기 문제를 풀었다. 화석연료를 전혀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해 바닥에 온수파이프를 깔지 않았다. 대신 5가구를 한 단위로 한 지열냉난방 시스템을 설치했다. 애초 패시브하우스를 지향했지만 적절한 시공업체를 못 찾아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마을사람들 스스로 해결하는 방식을 썼다. 단열벽 두께가 기준보다 얇고 풍압을 이용한 기밀 테스트를 통과할 자신이 없어 ‘고단열주택’이라고 자칭한다. 천창은 기밀에 문제가 있어 만들지 않았다. 이곳에서 겨울을 난 한 가구는 난방비로 월 10만원 정도 들었다고 전했다. 또 지붕 단열이 잘돼 2층 다락방이 춥거나 덥지 않아 침실이나 공부방으로 쓰는 데 지장이 없다. 입주자들의 만족도는 아주 높은 편이다. 하지만 내부에 축열체(열을 보존하는 매체)가 없어 문을 열 경우 실내기온이 급격히 변화할 것을 우려해 일부에서는 내벽을 타일이나 황토로 보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루마을이 난방비 등 유지비를 최소화한 것은 자급자족 목표에 닿아 있다. 외부단열재로 네오폴(NEOPOR), 내벽재로 경량기포콘크리트(ALC·Autoclaved Lightweight Concrete)블록(시멘트와 규사, 생석회 등 무기질 원료를 고온고압으로 증기양생한 가벼운 기포콘크리트 벽돌)을 사용해서 짓는 콘크리트 골조의 마을회관도 그 일환. 그곳에 강당, 작업장, 식당을 두어 공동작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5~6가구씩 묶어 유기농 잡곡, 표고버섯 재배, 산야초 채취 및 효소 만들기 등을 하고 그 수확물을 공동판매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기도 하다. 에너지 절약보다
중요한 건
주택 본연의 가치 회복 콘크리트 골조를 활용한 충남 아산의 단독주택
재독 한국인 건축가가 설계하고 국내 소규모 회사가 시공하는 패시브하우스다. 지하층은 콘크리트, 1~2층은 에이엘시블록으로 올리고, 지붕 단열재로 셀룰로오스를 쓰는 구조다. 현재 지하층 콘크리트 양생중 외부 방수작업을 하고 있다. 지하에 다시 묻힐 콘크리트벽에 아스팔트로 검게 칠하고 방수시트를 붙인 다음 120~200㎜ 아이소핑크(스티로폼의 일종)를 덧댈 예정으로 외벽에 먹선을 치고 있었다. 건축물리학을 전공한 설계자답게 실시설계 도면은 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재질과 수치, 시공 주의점까지 기술하고 있다. 예컨대 기본 바닥구조를 보면 터파기, 250㎜ 잡석 채우기, 버림콘크리트 50㎜, 110㎜ 스티로폼 두겹, 철근콘크리트 250㎜, 폴리에스터 필름, 50㎜ 시멘트 반죽, 20㎜ 자연석 등 7단계 840㎜ 두께로 단열한다. 외벽은 200㎜ 에이엘시블록으로 쌓고 240㎜ 네오폴을 덧댄 다음 내부는 10㎜, 외부는 20㎜ 투습미장을 한다. 벽 두께가 무려 470㎜에 이른다. 지붕 단열도 만만치 않다. 12㎜ 미송과 18㎜ 합성합판 사이를 350㎜ 두께의 셀룰로오스 단열재로 채운다. 바깥쪽은 투습방수지인 ‘프로클리마 솔리텍스 유디’로 덮고 통기층을 확보한 다음 고령토 기와를 덮는다. 안쪽은 분쇄합판(OSB) 연결부위를 투습성의 ‘테스콘 바나 테이프’로 붙이고 목재로 마감하는데 60㎜가량의 암면을 넣을 수도 있도록 했다. 모두 합치면 440㎜ 두께다. 시공자인 서충원씨는 “패시브하우스가 정밀시공을 기본으로 하지만 어떤 소재의 어떤 제품을 쓰느냐가 중요하다”며 “결국은 돈 문제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또 “패시브하우스는 웰빙이나 주택가치 확보를 위한 것이지 에너지 절약이 목표는 아니며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홍천·괴산·아산=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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