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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6.06 17:33 수정 : 2012.06.06 17:33

[매거진 esc] 독자사연 사랑은 맛을 타고

내 나이 쉰넷! 아득한 기억이지만 그때가 몇 살쯤이었을까? 40여년 전쯤? 어느 집이나 막내는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우리 집 막내의 별명은 ‘골보’(골 잘 내는 바보)였다. 형, 누나들에게 투정이란 투정은 다 부리고 성질이 까탈스러워 우리가 붙인 별명이었다. 하지만 귀엽고 잘생겨 밉지는 않았다. 우리는 가난했던 1970년대에 시골에 살면서도 부족함 없이 그런대로 먹고살았다. 점방과 자전거 가게에, 농사까지 지으셨던 부모님 덕이 컸다.

부모님이 바쁘신 탓에 우리는 곧잘 모여 비빔밥을 해먹었다. 지금의 숯불고기 집에서 나오는 그런 양푼이 비빔밥이었다. 쌀도 풍족하지 않던 그 시절 커다란 양푼 가득 밥을 산더미만큼 넣고 고사리나물이며 콩나물이며 상추, 고추장, 참기름을 듬뿍 넣고, 우리 집 암탉이 낳은 달걀프라이까지 넣어 쓱싹쓱싹 비볐다. 너도나도 머리를 박고 떠먹다 보면 우리 배는 남산만큼 불러왔다.

하지만 한숟갈이라도 더 먹고자 막판엔 치열한 경쟁이 붙었다. 그때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막내라도 봐주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몇 숟갈은 가위바위보로 정해 이긴 사람이 한숟갈씩 떠먹었다. 그런데 문제는 잘생긴 막내 동생의 입! 형, 누나들의 꼼수로 잘 이기지를 못하던 막내 동생은 어쩌다 한번 이기면 욕심껏 먹을 생각으로 형, 누나들의 숟가락 양 이상으로 떠먹었다. 입안으로 다 못 들어가고 숟가락 밖으로 떨어지는 무수한 밥알들을 보면 안타까웠다. 막내는 우걱우걱 잘도 먹어댔다.

한(?)이 생긴 건지 막내 동생은 언젠가부터 자기 주먹을 입안에 넣는 맹연습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나 제 주먹이 입안에 들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닌 법! 급기야 입가가 찢어져 피가 묻어나오기까지 했다. 그래도 우리의 비빔밥 게임이 끝나지 않는 한 막내는 그 훈련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막내가 어느덧 커서 청년이 되었을 때 나는 고생하신 엄마를 위해 싱크대를 부엌에 달아드렸다. 막내가 싱크대를 달자마자 문 안에 커다랗게 글귀를 적었다. ‘밥이 있는 곳에 인생이 있다.’ 그 글을 보고 피식피식 웃었다. 지금 우리 6남매는 각각의 배우자를 만나 각자의 비빔밥을 만들어 먹고 있지만 “오빠야! 언니야! 그리고 막내야! 그 비빔밥의 맛을 기억이나 하나? 그리고 그 글귀를 기억이나 하나? 나는 기억한다” 하고 말하고 싶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우리들의 행복했던 시간! 그리고 그 비빔밥!!

김경희/전라남도 순천시 조곡동

◎ 응모방법

‘사랑은 맛을 타고’ 사연은 한겨레 esc 블로그 게시판이나 끼니(kkini.hani.co.kr)의 ‘커뮤니티’에 200자 원고지 6장 안팎으로 올려주세요.

◎ 상품

네오플램 친환경 세라믹 냄비 ‘일라’ 4종과 세라믹 프라이팬 ‘에콜론팬’ 2종.

◎ 문의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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