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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서울 관악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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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눌러 말린 야생화로 그림 만드는 꽃누르미 주부들 인기…압화 그리며 원예치료 접목하기도
책갈피에서 후드득 떨어지는 담쟁이 이파리. 시멘트 담벼락에 번지는 생채기 빛깔과 그 위에 머문 햇살의 뉘엿함에 홀려 그 앞에 머물렀을 터. 문득 까까머리 교문 앞에서 고학생이 나눠주던 편지 한 구절이 생각나지 않았겠는가. 언제, 어디선가 우리는 손부끄럽지 않게 다시 만날 거라는…. 그 학생은 어딨을까? “꽃누르미 통해억눌린 자아를 폈어요.
일종의 속풀이랄까요?” 꽃누르미 또는 압화가 주부들 사이에 인기다. 눌러 말린 야생화의 꽃잎, 이파리, 뿌리 또는 나무껍질을 조합해 ‘만드는’ 그림으로 코스모스나 국화를 창호에 눌러 붙이던 옛 습속, 또는 말린 은행잎으로 카드를 만들던 소녀적 감성과 맞닿아 있다. 좋아하는 향유층과 만드는 과정으로 미루어 작품은 작가의 내면풍경이랄 수 있다. 꽃에 얽힌 유래와 사연, 채집할 때 날씨와 도반, 흡습지 갈피에 넣고 뺄 때의 양양함 등 길고 짧은 과거 조각들을, 시든 청춘에 대한 미련과 손끝에 밴 행주 냄새를 풀 삼아 눌러 붙인 시간의 모자이크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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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씨의 <낡은 시간에게 바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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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씨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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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채취 위해
떠나는 여행도 즐거워 “감사하고 싶은 사람을 생각하며 카드를 만들자고 했어요. 구태의연한 방법이긴 하죠. 처음에는 껄렁껄렁하던 아이들이 말린 꽃을 만지면서 점점 바뀌더군요. 만든 것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다시 만났을 때 반가워하더라고요.” 노현옥(경기도 시흥시)씨는 농업기술센터의 꽃누르미 교육과정에 인원이 부족하다고 해서 자리를 채워주러 나간 게 인연이 됐다. 남들은 다 떨어져 나갔는데 그는 10년째 푹 빠져 있다. “하나하나 조각을 맞춰가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힘들고 복잡한 것 하나도 떠오르지 않아요. 일과를 마치고 집 대문 앞에 서면 그제야 생각납니다. 밥통에 밥이 있는지, 애들은 학교를 잘 다녀왔는지….” 현재 아파트 상가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그에게 꽃누르미는 자기 정체성과 통한다. “꽃누르미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교감하는 게 즐거워요. 무엇보다 돈벌이와 무관하게 내 일을 갖고 있다는 게 좋아요. 아이들과 남편과 관계가 떳떳하죠.” 그의 머릿속에는 야생화 지도가 있다. 야생화가 어디에서 자생하고, 언제 피고 지는지 두루 꿰고 있다. 들꽃 채취를 한 해 농사라고 표현하는 그는 전국 구석구석 안 다녀본 데가 없다고 했다. 굳이 일이 아니어도 남편 또는 동료 ‘꽃마니’와의 1박2일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벗하는 기회라고 말했다. “강원도 몇 군데와 고향인 전라도 무안을 주로 갑니다. 철을 따라 찾아가 애들이 잘 있는지 확인하죠. 간혹 때를 놓치면 색다른 꽃을 만나는 즐거움이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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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누르미 만들기 (왼쪽부터) 1. 재료인 담쟁이 잎. 2. 스케치. 3, 4. 이파리의 색이 붉은 정도를 이용해 꽃의 명암을 표현한다. 5. 완성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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