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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6.06 18:17 수정 : 2012.06.06 18:17

이지연(서울 관악구)씨

[매거진 esc] 눌러 말린 야생화로 그림 만드는 꽃누르미 주부들 인기…압화 그리며 원예치료 접목하기도

책갈피에서 후드득 떨어지는 담쟁이 이파리. 시멘트 담벼락에 번지는 생채기 빛깔과 그 위에 머문 햇살의 뉘엿함에 홀려 그 앞에 머물렀을 터. 문득 까까머리 교문 앞에서 고학생이 나눠주던 편지 한 구절이 생각나지 않았겠는가. 언제, 어디선가 우리는 손부끄럽지 않게 다시 만날 거라는…. 그 학생은 어딨을까?

“꽃누르미 통해
억눌린 자아를 폈어요.
일종의 속풀이랄까요?”

꽃누르미 또는 압화가 주부들 사이에 인기다. 눌러 말린 야생화의 꽃잎, 이파리, 뿌리 또는 나무껍질을 조합해 ‘만드는’ 그림으로 코스모스나 국화를 창호에 눌러 붙이던 옛 습속, 또는 말린 은행잎으로 카드를 만들던 소녀적 감성과 맞닿아 있다. 좋아하는 향유층과 만드는 과정으로 미루어 작품은 작가의 내면풍경이랄 수 있다. 꽃에 얽힌 유래와 사연, 채집할 때 날씨와 도반, 흡습지 갈피에 넣고 뺄 때의 양양함 등 길고 짧은 과거 조각들을, 시든 청춘에 대한 미련과 손끝에 밴 행주 냄새를 풀 삼아 눌러 붙인 시간의 모자이크라는 것.

이지연씨의 <낡은 시간에게 바침>
“첫애를 낳고 산후 우울증이 심했어요. 매일 죽네 사네 하는 바람에 남편은 해 떨어지면 바로 집에 와야 했어요. 둘째를 낳고 서른살 늦은 나이에 방송개발원 작가과정을 들었어요. 방송국 일을 하고 싶었지만 애들 때문에 접어야 했어요.”

이지연(서울 관악구)씨한테 꽃누르미는 우울증과 겹친다. 1999년 유학하는 남편을 따라 미국 보스턴에 머물 때 야생초 카드를 만들며 두통을 견뎠다. 2년 반이 지나 귀국한 뒤에도 머리가 아파 병원에 가니 긴 설문 끝에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의사가 뭘 아나 싶어 그냥 나와 택시를 탔다. 시가로 가는 전철을 탈 수 있는 역까지 가자는데, 나이 지긋한 운전사가 집까지 태워주었다. 몰골이 측은했던 모양이다. “왜 힘들게 사느냐. 네 인생은 네가 살아라.” 병원에서 시가까지 가는 동안의 대화가 전기였다. 문화센터에 등록해 본격적으로 꽃누르미 교육을 받았다. 그는 제6회 대한민국 야생화 압화 공모전에서 <꽃지는 자리, 다시 꽃>으로 대상을 받았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찾았어요. 압화를 하는 대부분의 주부들이 그래요. 꽃누르미를 통해 억눌린 자아를 펴거나 내재된 채 사장된 재능을 발견하죠. 일종의 속풀이랄까요? 일상에 치여 지내지만 평범해 보이는 한국의 주부들한테는 예술적 재능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아요.”

그는 우울증을 극복한 자신의 경험을 살려 원예치료에 접목하고 있다. “원예식물을 심어 가꾸며 커가는 것을 보는 것이나 화분에 상추를 키워 뜯어 먹는 거나 모두 원예치료에 해당된다”며 최근 중학교에서 했던 꽃누르미 카드 만들기 실습 경험을 들려줬다.

이지연씨의 <숲>
머릿속에 야생화 지도 빼곡
들꽃 채취 위해
떠나는 여행도 즐거워

“감사하고 싶은 사람을 생각하며 카드를 만들자고 했어요. 구태의연한 방법이긴 하죠. 처음에는 껄렁껄렁하던 아이들이 말린 꽃을 만지면서 점점 바뀌더군요. 만든 것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다시 만났을 때 반가워하더라고요.”

노현옥(경기도 시흥시)씨는 농업기술센터의 꽃누르미 교육과정에 인원이 부족하다고 해서 자리를 채워주러 나간 게 인연이 됐다. 남들은 다 떨어져 나갔는데 그는 10년째 푹 빠져 있다.

“하나하나 조각을 맞춰가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힘들고 복잡한 것 하나도 떠오르지 않아요. 일과를 마치고 집 대문 앞에 서면 그제야 생각납니다. 밥통에 밥이 있는지, 애들은 학교를 잘 다녀왔는지….”

현재 아파트 상가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그에게 꽃누르미는 자기 정체성과 통한다.

“꽃누르미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교감하는 게 즐거워요. 무엇보다 돈벌이와 무관하게 내 일을 갖고 있다는 게 좋아요. 아이들과 남편과 관계가 떳떳하죠.”

그의 머릿속에는 야생화 지도가 있다. 야생화가 어디에서 자생하고, 언제 피고 지는지 두루 꿰고 있다. 들꽃 채취를 한 해 농사라고 표현하는 그는 전국 구석구석 안 다녀본 데가 없다고 했다. 굳이 일이 아니어도 남편 또는 동료 ‘꽃마니’와의 1박2일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벗하는 기회라고 말했다.

“강원도 몇 군데와 고향인 전라도 무안을 주로 갑니다. 철을 따라 찾아가 애들이 잘 있는지 확인하죠. 간혹 때를 놓치면 색다른 꽃을 만나는 즐거움이 커요.”

꽃누르미 만들기 (왼쪽부터) 1. 재료인 담쟁이 잎. 2. 스케치. 3, 4. 이파리의 색이 붉은 정도를 이용해 꽃의 명암을 표현한다. 5. 완성된 작품.
그는 꽃누르미를 하면서 야생화 박사는 아니지만 남들한테 빠지지 않을 만큼은 알게 되었다고 했다. 말린 꽃과 그것이 그림 속에서 어떤 구실을 하는지를 설명하면서 꽃이름을 모르는 기자를 타박했다.

꽃누르미가 꼭 주부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백송욱(부산시 해운대구)씨는 58년 개띠 남자다. 현재 풍력발전기 설치 공사가 본업인 그는 서른 즈음에 시작한 꽃누르미를 버릴 수 없다고 했다. 커피숍을 하면서 프런트를 장식할 꽃꽂이를 배웠고 자신의 전공인 디자인과 접목할 수 있겠다면서 꽃누르미 세계에 들어왔다.

“정초에 어떤 그림을 그리겠다는 목표를 세웁니다. 한 해 동안 그것에 필요한 야생화를 채취하고 말립니다. 물론 힘들지만 긴 준비기간을 거쳐 조각을 맞춰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어가는 걸 지켜보는 기쁨은 무어라 표현하기 힘들어요.”

여성스러운 일이라 주위 시선이 따갑지 않으냐는 질문에 “남자가 드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이상하게 보는 눈은 없다”고 대답했다.

“나이 들어 경로당에서 고스톱을 치며 소일하느니 채집여행을 하면서 막걸리를 마시고, 작품을 하면 얼마나 아름답게 여생을 보낼 수 있겠느냐”며 꽃누르미가 노인들한테도 좋은 취미라고 말했다.

압화를 만들면서 가르치기도 하는 방순희(강원도 속초시)씨는 꽃누르미를 두고 삶을 이야기한다.

“특강을 하다 보면 수강생들이 압화의 변색에 대해 많이 질문을 합니다. 저는 항상 압화가 변색되기 때문에 더 매력적이라고 답합니다. 이 세상에 어느 한 가지라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봅니다. 변색되어 가는 고풍스런 이미지도 무시할 수 없지만 변색되는 것을 생각하기 이전에 작품을 할 때의 그 감정을 먼저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글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사진제공 이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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