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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6.13 17:52 수정 : 2012.06.13 17:52

[매거진 esc] 디자인 큐레이팅
멋 좀 부릴 줄 아는 남자들의 이야기
➊ 남성 편집숍의 증가가 보여주는 변화의 징후들

애초에 남자란 ‘쇼핑, 취향, 멋’ 뭐 이런 단어들과는 거리가 먼 존재였다. 그들은 백화점을 몇 바퀴씩 돌고도 지치지 않는 여자들의 네버엔딩 쇼핑 에너지에 혀를 내둘렀으나 어제와 똑같은 옷을 오늘 고스란히 집어 입는(심지어 양말까지) 자신의 패션감각에는 한없이 관대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내 주변의 디자이너 ㄱ씨만 해도 검은색 라운드 티셔츠와 청바지를 일주일 내내 입고 다닌다. 스티브 잡스 덕분에 그의 패션 주관은 더욱 탄력을 받은 상태. 건축가 ㄴ씨는 얼마 전 미팅에 예쁜 헌팅캡을 쓰고 나타났다. 문제는 365일 같은 모자라는 점. 모자의 연두색 체크무늬는 이미 칙칙한 녹색으로 변했지만 매일 그의 선택을 받는지라 세탁될 겨를이 없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주변에 스타일을 고민하고 취향을 논하는 남자들이 스멀스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구축하기 위해 이런저런 패션 공부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국내에 유입되지 않은 디자인을 찾아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중 몇몇은 맞춤슈트로 ‘나만의 슈트라인’을 즐기기까지 했다. 맞춤슈트 시장이 전년 대비 20% 이상 증가했다는 통계는 그만큼 패션, 스타일에 관한 남자들의 관심이 늘어났음을 짐작하게 한다. ‘남자의 취향’은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진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선미 제공
맨 처음 양복을 입었던 그 시대의 ‘패션 리더’에 대한 기록은 18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왕조실록> <서유견문> 등의 자료를 보면 일본에 파견된 사찰단의 일원이었던 서광범(사진)이 양복을 사 입고 돌아와 사회적인 파문을 일으킨 내용이 전해진다. 하지만 양복 착용을 법적으로 공인받는 데는 무려 14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전혀 다른 복식에 매료되어 일본에서 양복을 집어든 개화기 젊은이들의 마음은 남들과 다르게 보이고 싶은 현대 남자들의 욕망과 동색이었을 것이다. 이런 욕망은 국내에 입점하지 않은 세계 곳곳의 브랜드들을 취급하는 편집숍으로 자연스레 모여들었다. 맨온더분, 샌프란시스코 마켓, 란스미어 등의 편집숍은 이미 오래전부터 ‘멋 좀 부릴 줄 아는 남자들’의 패션 아지트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패션에 관한 관심은 그에 따른 비용을 전제로 한다. 그 때문에 남성의 취향이 진화하고 있는 지점을 자본주의의 또다른 영역 확장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성 패션 시장에서 조금씩 피어나고 있는 다양성의 징후들은 분명 남자들의 새로운 인식, 태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몇 회에 걸쳐 남자들의 취향에 관한 이야기를 전개해볼 예정이다. 또 아는가, 한숨 쉬며 쇼핑을 따라다니던 남자친구 또는 남편이 조만간 해박한 패션 지식을 읊어대며 내 쇼핑의 완벽한 파트너가 되어 줄는지. 물론 나 역시 남성복 매장에서 그만큼의 시간을 할애해줘야 하는 부담을 감내해야겠지만 말이다.

김선미 디자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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