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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6.20 17:48 수정 : 2012.06.20 18:00

낭푼밥상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요리

돌우럭콩조림, 빙떡 등 제주 전통음식 조리하는 김지순씨 모자의 먹거리 이야기

 버스커버스커의 노래 ‘여수 밤바다’를 ‘여수’ 대신 ‘제주도’로 바꿔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바다의 낭만은 제주도가 더 푸르다. 하지만 먹을거리는 달랐다. 척박한 땅, 부족한 물, 태풍 등 농사짓기에는 잔혹한 자연환경이었다. “계절에 거슬리지 않고 순응하는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죠.” 2년 전 제주도 향토음식 명인 1호로 지정된 김지순(76)씨의 말이다. 지난 15일 제주시 노형동에서 그를 만나 제주도 전통음식에 대해 들었다.

 “여자나 남자나 모두 일하러 나가야 했기에 조리법도 간단하고 생채 비율이 높았어요. 요즘 사람들이 찾는 건강식이죠. 고춧가루도 거의 없었어요. 간장, 된장 문화죠.” 제주도 고추는 다른 지역보다 높은 일조량 때문에 빨리 자라고 당도도 높았다. 그것이 문제였다. 빨갛게 익기도 전에 벌레가 달려드는 통에 섬사람들은 빨리 따서 먹기 바빴다. 제주도 매운 음식은 한국전쟁 때 피난 온 호남인들한테서 시작되었다고 김씨의 아들 양용진(48)씨가 말한다. 양씨는 현재 어머니를 도와 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을 운영한다. “‘바릇 잡으러 가자’란 말 아세요?” 양씨가 툭 던진다. 그의 해석은 이렇다. ‘바릇’은 ‘바다’, 즉 ‘바다에서 나는 이것저것 잡으러 가자’란 소리다. 1960~70년대 아이들은 입에 달고 살았다.

 ‘바릇국’이 있다. 생선, 각종 해조류 등 바다와 관련된 것으로 끓인 국이다. 국은 그야말로 제주도 향토음식의 시작이다. ‘국’자 앞에는 구하기 쉬웠던 생선과 해조류의 이름이 달렸다. 톷냉국, 몸(모자반)국, 멜(멸치)국, 해삼미역냉국, 보말국, 구살국(성게국), 고등어배추국, 갈치호박국, 각재기국(전갱이국) 등. 김씨가 가족 밥상인 ‘낭푼(양푼)밥상’을 차려낸다. 신기하게 밥그릇이 하나다. 제주도에서는 가족 수대로 밥그릇을 내지 않는다. 뷔페식처럼 큰 밥그릇의 밥을 나눠 먹는다. “일손이 모자라 여자들도 일을 나가야 했기에 간편하게 차린 거죠.” 씨족 단위 마을이 발달해 이웃을 모두 삼촌이라고 불렀다. 양씨는 어릴 때 “여자삼촌 계십니까?” 소리를 자주 했다. 여자는 ‘여자삼촌’, 남자는 ‘남자삼촌’이었다. 숟가락 하나 들고 ‘여자삼촌’에게 밥 달라고 하면 한 끼는 뚝딱 해결되었다. 그만큼 인심이 좋았다.

 낭푼밥상에는 돌우럭콩조림과 빙떡이 눈에 띈다. 돌우럭콩조림은 서민들이 즐긴 음식이다. 제주 바다에서 쉽게 잡히는 못생긴 돌우럭과 콩을 갖은 양념장으로 조린 음식이다. 빙떡은 국과 채소, 젓갈, 생선조림이 올라간 소박한 옛날 낭푼밥상에는 오르지 않았지만 집안 대소사에는 늘 먹던 음식이다. 어째 모양새가 낯이 익다. 강원도 메밀전병과 닮았다. 재료도 비슷하다. 얇게 빚은 메밀에 참기름, 깨 등으로 양념한 무나물을 넣고 빙빙 말아 만든 음식이다. 씹어 먹을수록 아무 맛도 없다. 그것이 매력이다. 있고(有) 없고(無)는 동전의 양면이다. 즐겁고 중요한 날 만든 음식이 최고로 담백한 맛이라니!

 제주도 사람들이라고 해서 먹을거리가 다 같지는 않았다. 산촌, 중산간, 해변이 달랐다. 중산간에 사는 이가 버섯을 캐서 생선과 물물교환을 했다. 양씨는 “산촌이나 중산간에도 다양한 먹을 것들이 있었을 텐데 4·3항쟁 때 산촌과 중산간이 주로 당해서 남은 기록이 없다”고 전한다. 김씨가 아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반’문화를 말한다. 제사나 명절 때 음식을 만들면 무조건 ‘반’으로 나눠 먹었다. 고기의 내장, 채소의 줄기, 뿌리까지도 남기지 않았던 제주도 사람들의 음식문화를 보여주는 풍속이다. 김씨의 낭푼밥상은 제주도 해비치호텔 ‘하노루’에서 맛볼 수 있다. 건강한 식재료로 만들어 속이 편한 음식이다. (낭푼밥상 3만5000원, 세금·봉사료 별도. 064-780-8311)

글·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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