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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셰프와 원로 중식요리사들. 사진 왼쪽부터 왕육성, 여경래(위), 장홍기, 박찬일, 강레오(위), 이연복, 곡금초, 레이먼 킴, 장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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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중식과 양식계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요리사 9인이 만나 스타 셰프의 시대를 이야기하다
지난 1일 밤 9시, 영업도 끝난 서울시 중구 코리아나호텔 중식당 ‘대상해’에는 건장한 사내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들은 흰색 요리사복으로 갈아입었다. 이들은 미디어를 통해 이름이 알려진 스타 셰프들과 원로 중식요리사들이다. 양식 셰프인 박찬일(47), 강레오(36), 레이먼 킴(37)씨와 중식 셰프인 이연복(54), 여경래(52), 장입화(66), 왕육성(58), 장홍기(72), 곡금초(61)씨 등이다. 대상해는 왕육성씨가 오너 셰프로 일하는 곳이다. 시곗바늘이 밤 10시를 알리자 사진가 유창현씨가 셰프들을 찾는다. 호텔 옥상은 초여름을 알리는 후끈한 열기가 자욱했다. 요리사들의 기념사진 촬영은 선후배 요리사들 사이에서 인간성 좋기로 소문난 셰프 이연복씨의 주선으로 이루어졌다. “원로 선배님들이 더 나이 드시기 전에 후배 요리사들과 사진을 찍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존경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주방에서 땀방울 흘린 세월을 서로 이해하는, 피보다 진한 형제애를 나눈 요리사들의 사진은 명화보다 아름답다. “화려한 외양만 보고달려드는 준비생 많지만
저임금, 고된 노동이 현실이죠” 밤 11시가 넘어 흰옷을 벗어던진 요리사들은 소박한 만찬을 시작했다. 여경래 셰프가 말문을 연다. “요즘은 후배 요리사들 중에 화교는 찾아보기 힘들어요. 한국인 후배들이 매우 열심히 해요.” 여씨가 강레오 셰프에게 질문을 한다. “‘마스터 셰프 코리아’에 출연하고 있죠? 인기가 많던데요. 인생에 전환점이 되잖아요.” 강레오 셰프는 지난 4월부터 요리사 오디션 프로그램 ‘마스터 셰프 코리아’의 심사위원으로 출연해 스타로 떠올랐다. 그의 결혼이 검색순위에 오를 정도다. 세계적인 요리사 고든 램지의 두바이레스토랑 등에서 활동한 이력과 수려한 외모 등이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27일에 씨제이푸드빌의 비빔밥 브랜드 ‘비비고 런던점’ 론칭을 위해 영국으로 떠났다. 강레오 셰프와 여경래 셰프는 서로의 명성만 듣다가 처음 만났다. “강 셰프는 친근한 카리스마가 있더군요. 방송하다 보면 제작진이 그런 콘셉트를 만들어주기도 하던데 강 셰프는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여 셰프의 말이다. 강레오 셰프는 방송을 위해 두 달 반 스피치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1970년대 초에는 조리사란 호칭도 없었다. 80년대 들어서야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 대신 ‘조리사’란 용어가 쓰이기 시작했다. ‘요리사’, ‘셰프’란 호칭은 훨씬 뒤의 일이다. 여경래 셰프는 “요즘은 아이돌 스타가 부럽지 않다”고 말한다. 요리대회 심사위원으로 가면 같이 사진을 찍자는 이들이 줄을 선다. ‘스타 셰프’란 용어도 그런 현상을 반영한다. ‘스타 셰프’의 포문을 연 사람은 2009년 두바이에서 입국한 요리사 에드워드 권이다. 두바이 부르즈(버즈) 알아랍 호텔 수석총괄주방장이었다는 명패와 출중한 외모, 조리 있는 말솜씨로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그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각종 예능과 요리 프로그램 출연, 책 출간으로 주가를 높였다. 요리사는 스타 셰프로 인정을 받으면 탄탄대로에 들어선다. ‘서울 고메 2011’ 같은 국내 대형 요리행사에 초청되거나 ‘2012 마드리드 퓨전’ 같은 세계적인 식문화박람회에 한국을 대표하는 요리사로 참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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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해’의 왕육성 셰프가 낸 콩자반소스전복찜.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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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대한 이야기보다
여자친구, 키 등이 떠요. 아쉽죠” 에드워드 권은 경력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현재 직원만 70여명인 ‘이케이푸드’를 운영하고 있다. ‘더 믹스드 원’ 등 그가 문을 연 레스토랑을 찾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업계 한 관계자는 “스타 셰프가 요리사의 사회적 지위를 올리는 데 도움은 되지만 실제 요리업계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비판의 시선을 던진다. “화려한 스타 셰프의 겉모양만 보고 요리사 준비생들이 달려가는데, 실제 요리업계는 치열한 외식업계 경쟁이나 저임금, 오랫동안 접시를 닦는 혹독한 노력 등 녹록지 않은 현실을 담고 있어요.” 이연복 셰프의 날카로운 지적이다. “티브이 스타로 보는 거죠, 요리에 관심 있는 게 아니에요. 서양도 별 차이 없어요.” 박찬일 셰프가 말을 잇는다. “미디어가 발달하니까 요리 프로그램은 계속 인기를 끌 것이고 스타 셰프는 계속 배출이 되겠죠. 요리와는 별 관계가 없어요.” 박 셰프는 음식전문지 편집장을 지내다 이탈리아 요리학교 아이시아이에프(ICIF)에서 수학하고 돌아와 셰프로 일하면서 음식 관련 책도 여러권 쓴 스타 셰프다. 강레오 셰프도 비슷한 의견을 내비친다. “뭔가 새로운 종류의 스타가 나와 줬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의 바람이 반영된 거죠. 제 이름을 검색해보면 요리사로서 강레오, 제 요리의 깊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여자친구, 결혼, 키 등이 떠요. 아쉽죠. 요리사가 좀더 존경받는 직업이 되었으면 하는 게 제 희망사항입니다.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거구요.” 레이먼 킴은 “방송에 출연하는 셰프도 필요합니다. 해남 땅끝마을에서 요리하는 청소년의 롤 모델이 될 수도 있어요. 저는 방송도 재미있어서 해요. 2008년 처음 방송에 출연할 때는 부끄러웠어요. 하지만 매출이 40% 늘었어요. 저만 바라보는 직원이 11명입니다. 책임이 있죠. 요리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더 열심히 하게 돼요”라고 말한다. 강레오 셰프가 운영하는 ‘마카로니 마켓’도 매출이 늘었다고 한다. 레이먼 킴은 올리브채널의 ‘샘과 레이먼의 쿠킹타임 듀엣’을 진행하고 있다. 여경래 셰프는 외국의 사례를 든다. “미국에 유명한 중식요리사는 주변 레스토랑이 저가 정책을 쓸 때 고가 정책을 써서 미국 상류사회를 겨냥했어요. 중국요리는 싼 음식이라는 인식을 바꿨죠. 방송 출연을 해서 유명해진 것이 한몫했어요. 유명세를 제대로 활용하면 음식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진정한 스타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런두런 이야기꽃이 익어갈 무렵, 왕육성 셰프가 음식을 내온다. 돼지등갈비양념튀김, 가죽나물계란볶음, 콩자반소스전복찜 등이 차례로 나온다. 육순이 넘은 나이에도 현직에서 웍(중식 프라이팬)을 잡고 있는 장입화 셰프의 옛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자신의 요리를 먹었던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추억담이다. 역사의 한 장이다. 그런가 하면 곡금초 셰프는 “예전에는 찜 요리가 많았어요. 40분 걸리는데, 손님들이 빨리빨리 찾는 통에 지금 거의 없어졌습니다”라고 말한다. 한국 중식의 역사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까지 중식과 요리에 대한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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