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6.27 18:26
수정 : 2012.06.28 14:01
[esc를 누르며]
언젠가부터 출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보고 있는 저를 문득 발견했습니다. 전에는 흔들리는 차에서 책을 보면 멀미가 나는 통에 버스에서는 우두커니 창문 밖을 보는게 일이었는데 말이죠.
스마트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을 이용하게 되면서 틈만 나면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하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보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배터리가 나가서 이걸 쓸 수 없을 때는 신문이나 잡지나 책이라도 보게 됩니다. 멀미가 사라졌냐고요? 그럴 리가요. 토할 거 같지만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으려니 좀이 쑤셔서 괴로워도 무언가 응시하게 된 거죠.
보는 것뿐이 아니죠. 이제 길을 걸을 때 이어폰을 꽂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을 지경입니다. 음악이나 팟캐스트 방송이라도 듣지 않으면 그냥 걷는 걸 지루해서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증거입니다.
이동하는 시간은 자고 먹고 일하고 쉬는 하루 가운데 자투리와도 같습니다. 버스 좌석에 몸을 의탁하거나 바쁘게 걷고는 있지만 눈과 귀와 정신이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스마트폰에 눈과 귀가 포섭된 요즘 자투리는 ‘잉여’가 되기보다 재활용 압박에 시달립니다.
커버스토리에 등장한 밤을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 중 이런 부분이 눈에 띕니다. “차를 타고 가면 그냥 스쳐 지나가던 것들, 예컨대 풀, 돌, 물, 새소리가 생생해지고 느낌이 팍팍 와요. 무덤덤하던 사람들의 표정이 새롭고요.” 열심히 걷더라도 스마트폰에 갇혀 있다면 느낄 수 없는 것들입니다. 걷기 위해 걷는 길이든, 어디론가 도착하기 위해 걷는 길이거나 차 안이든 잠시 잉여의 시간 그 자체를 즐겨봤으면 좋겠습니다.
김은형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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