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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곡성 섬진강변 동악산 북쪽 자락의 청계동계곡(사수암골·사시암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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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섬진강 주변 덜 알려진 만큼 더 아름답고 조용한 구례 홍류동계곡·곡성 청계동계곡
섬진강은 여행자에게 ‘꽃길 따라 흐르는 강’이다. 북에서 남으로 212㎞를 굽이쳐 흐르며 봄이면 매화·산수유·벚꽃·배꽃들을, 가을이면 다채로운 단풍꽃을 피워낸다. 개발의 삽날을 어렵사리 피해가며 줄기차게 흘러왔다. 그래서 사철 아름답고 정겨운 강이다. 섬진강이 거느린 유·무명의 무수한 골짜기 중 덜 알려지고 덜 훼손된 골짜기 두 곳을 다녀왔다. 주민들만 찾아 발 담그고 쉰다는 외지고 조용한 골짜기다. 최근 가뭄으로 수량은 줄었다. 그러나 바위 경치가 꽤 볼만했고 푸른 소에 고인 물은 차고 맑았다. 주말을 피해 평일에, 도시락 챙겨 들고(취사 금지) 찾는 것이 이 바위 골짜기들을 온전히 즐기는 방법이다. 비 예보 땐 당연히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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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 지리산 자락 피아골의 한 지류인 홍류동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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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홍류동 계곡
소 아래 아담한 폭포들 구례 피아골 지류 홍류동 계곡 국내 대표적인 단풍 여행지 중 한곳이 지리산 자락 피아골이다. 반야봉 중턱에서 발원해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장장 20㎞ 길이의 멋진 골짜기다. 이 골짜기 중간쯤 고찰 연곡사 1㎞ 못미처에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평도마을이 있다. 평도마을 물길 건너편이 남산마을(내서리)인데, 이 마을 뒷산에 “웬만한 지리산 전문가도 잘 모른다”는 홍류동 계곡이 숨어 있다. 왕시루봉에서 발원해 내려오는 길이 2㎞가 채 안 되는 짤막한 골짜기로, 국립공원 바깥쪽이다. 홍류동이란 흔히 단풍이 아름다운 골짜기에 붙는 이름. 하지만 단풍철에도 피서철에도 이 골짜기는 피아골 본류의 경관에 가려 외지인들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았다고 한다. “인자 요것이 피아골 지류 중에서 가장 제대로 살아있는(훼손이 없는) 골짜기요. 우리들밖엔 모르니께.” 내동리 손윤기(69) 이장은 “소개를 하더라도 피서객은 주민 통제에 따라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시킬 것”을 주문한 뒤 안내에 나섰다. 남산마을 바로 뒷산부터 커다란 바윗돌들이 구르다 앉고 선 암반 골짜기가 시작된다. 마을 뒤 시멘트 다리 위쪽으로 경사지게 깔린 거대한 암반이 눈앞을 가로막아 눈길을 끈다. 오랜 세월 물살이 공들여 쓰다듬어 이뤄낸 부드럽고 시원하고 넓고 아름다운 암반이다. 암반 아래쪽에 발을 담그고 쉴 수 있는 물웅덩이가 만들어져 있다. 암반 위로 우뚝 선 바위에 100년 전쯤 새겼다는 ‘홍류동’이란 음각 글씨가 있다. 예로부터 선인들이 찾아 즐겨온 골짜기임을 드러낸다. 이 바위 꼭대기 돌 틈에 힘겹게 뿌리내린 소나무 한 그루가 이채롭다. 언젠가 소나무 뿌리는 바위를 가를 것이다. 경치 좋은 골짜기에 흔히 있는 ‘용소’가 이 골짜기에도 있다. 물길 옆 산길을 따라 800m쯤 올라, 작은홍골·큰홍골이 갈리는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오솔길을 헤치고 오르면 큰홍골 물길로 내려설 수 있다. 여기저기 물이 고인 커다란 암반이 펼쳐지는데, 암반 아래쪽 폭포 밑의 물웅덩이가 용이 승천했다는 용소다. 큰 가뭄이 들면 주민들은 용소를 찾아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하마, 깨끗하고 순박한 사람 셋을 뽑아 음식 장만해 가지고 용소 앞에서 기우제를 지낸거라. 그러면 마을로 돌아오기도 전에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거라. 참 영험하지.”(손윤기씨) 용소 위아래 골짜기로는 아담한 폭포들이 이어진다. 폭포 앞엔 어김없이 깊은 소가 푸른 물을 가두고 있다. 손씨가 암반 위에 파인, 돌들이 가득 들어찬 작은 물웅덩이 둘을 가리켰다. “저 작은 바위구멍이 옛날엔 명주실에 돌을 매달아 한 타래를 다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았다는 아조 깊은 구덩이요.” 깊이를 알 수 없었다는, 용소 등 물웅덩이들은 대부분 홍수 때 쏟아져내려온 돌들로 메워진 상태다. 주민들은 홍류동 상류 물길의 외지인 출입을 통제한다. 남산마을 주민들이 이 계곡물을 식수로 쓰기 때문이다. 홍류동 골짜기는 야생 차밭이기도 하다. 관리가 잘 안되고 있지만 엄연히 주인이 있는 차밭이다. 내동리 손윤기 이장집(석산녹차) (061)783-0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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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동악산 남쪽 자락 도림사계곡의 암반에 새겨진 시와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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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동 계곡물
가뭄에도 맑고 차가워 곡성 동악산 청계동 사수암골 섬진강 중류 약 36㎞ 구간, 그리고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보성강 하류 18㎞ 물줄기가 곡성 땅을 적시고 흐른다. 곡성 주민들이 순자강으로 부르는 섬진강은 곡성읍 서쪽의 동악산(곡성의 진산) 북쪽 자락을 감싸고 돌며 아름다운 강풍경을 펼쳐보인다. 남원 땅과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동악산은 해발 735m 높이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자못 장쾌한 골짜기를 여럿 거느렸다. 산 남쪽의 도림사계곡, 북쪽의 청계동계곡(사수암골·사시암골·사수곡) 등 모두 차고 맑은 물을 섬진강에 보태는 청정 계곡들이다. 특히 3㎞ 길이의 청계동계곡은 곡성 일대 주민들만 찾아든다는 덜 알려진 골짜기다. 청계동은 곡성읍 신기리 일대의 경치 좋은 섬진강 물줄기를 일컫기도 한다. 하지만 흔히 청계동계곡으로 불리는 이 골짜기의 본디 이름은 샘(시암)이 네 군데서 솟는다는 뜻의 ‘사시암골’이다. 곡성군 해설사 김경숙씨는 “옛 어르신들은 이 계곡을 사시암골·묵방골 등으로 부르며 자주 찾아 더위를 식혔다”고 말했다. ‘청계’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크게 활약한 양대박 장군의 호이기도 하다. 임란 전에 장군이 전쟁을 예견하고 이 계곡에 들어와 병기를 마련하는 등 앞일에 대비했다고 전해온다. 커다란 바윗돌 즐비한 이 골짜기는 들머리 쪽은 다소 좁아 보이지만, 오를수록 골짜기가 커지고 수량도 많아진다. 가장 볼만한 곳이 청계동폭포 주변이다. 골짜기 전체가 암반인데, 경사진 바위면을 타고 물줄기가 쏟아져내려 널찍한 물웅덩이를 이룬다. 이 와폭은 높이가 7~8m로 그리 높지는 않으나, 꼭대기에 선반처럼 내민 너럭바위가 얹혀 있어 이채롭다. 최근 가뭄에도 아랑곳없이 물은 차고 맑다. 청계동계곡 들고 나는 길에 만나는 섬진강 풍경도 인상적이다. 진초록의 강변 숲이 물빛을 맑혀주는 섬진강 물길에선, 수백년 전해오는 돌그물(어살·독살)도 낚시꾼도 다슬기 잡는 아낙네도 그대로 멋진 그림이 된다. 동악산 남쪽 자락의 도림사계곡도 물길과 바위 경치가 아름다운 골짜기다.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절 도림사 주변 계곡을 따라 경치 좋은 지점의 바위들에 선인들이 새긴 이름과 시들이 빼곡하다. 곡성 남쪽 봉두산(동리산) 자락의 태안사 계곡도 피서객 발길이 이어지는 골짜기다. ‘조태일 시 문학관’ 주변 물길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이들이 많다. 태안사 들머리의 울창한 숲길과, 물길 위에 놓인 능파각, 숲길 끝에서 만나는 고생창연한 일주문도 아름답다. 곡성군청 관광과 (061)360-8224. 곡성 구례=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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