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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7.04 18:26 수정 : 2012.07.06 14:30

아프리카 사바나의 전형적인 풍경. 우산처럼 생긴 아카시아나무 아래 얼룩말이 풀을 뜯는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케냐 최대 국립공원 마사이마라 사파리 체험기…
기다리다 지칠 무렵 지척에서 만난 사자 무리에 모두가 환호

사자와 표범을 보기 위해 예까지 왔다. 케냐 마사이마라 국립보존구역. 앞서 암보셀리, 나이바샤, 나쿠루 국립공원을 거쳐온 터. 코끼리, 버펄로는 지겹도록 보았다. 코뿔소는 나쿠루 호숫가 버펄로 틈에서 긴 뿔을 실루엣으로 확인했다.

가이드는 “사파리는 곧 빅파이브다”라고 끊임없이 말했다. 일행은 덩달아 빅파이브 노래를 부르고, 마지막으로 남은 “사자, 표범”이 후렴구가 됐다. 누(아프리카들소), 얼룩말, 임팔라(영양의 일종), 톰슨가젤은 안중에도 없다.

운이 좋으면 만난다는 사자 가족.
코끼리·버펄로·코뿔소·사자·표범
사파리의 ‘빅 파이브’

일행 7명을 태운 사륜구동 지프. 가이드에 운전기사를 겸한 현지인 지미는 여느 트랙과 다른 길을 택했다. 사자와 표범은 육식동물. 풀이 많은 물가를 헤맬 까닭이 없다. 관목들이 듬성듬성한 산허리 길이 주요 탐색로다. 멀리 대머리독수리 몇 마리가 맴돌았다. ‘청소부’가 몰리는 데는 죽음이 있는 법. 지름길로 달려가 다다른 동심원 아래. 대머리독수리들이 버캐 같았고, 절구질하는 그들의 부리와 가슴털이 붉은 피로 물들었다. 임팔라인 듯한 짐승의 다리가 보였다. 육식동물이 먹다 버린 것일 터. 면역이 안 된 사람들은 고개를 틀었다.

마사이마라로 오는 길은 험하다. 나이로비에서 승용차로 6시간. 3분의 2는 아스팔트 포장, 나머지는 비포장도로로 덜컹덜컹 ‘아프리카 마사지’를 받아야 한다. 아래위로 격렬하게 요동치는 가운데, 나이 든 이들은 다음에는 반드시 차량 앞자리에 앉을 거라고 다짐을 두었더랬다.

표범이 먹이를 걸어두고 휴식을 한다는 나무를 몇번째 살폈다. 소시지처럼 생긴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다. 이름도 소시지나무다. 반으로 갈라 설탕에 절여 발효시키면 ‘로컬 맥주’가 된다고 했다. 나무는 텅 비었고 밑동에 맹수 발톱자국만 보일 뿐이다. 전날 나쿠루에서 일행 하나가 표범을 보았다고 했다. 가이드나 원주민이나 그럴 리 없다고 했지만 사진을 들이대는 데야 행운아로 여길 수밖에. (하루 뒤에 거짓과 진실이 드러났다. 나무에 가려 궁둥이만 보이는 잘못 찍힌 기린을 두고 표범이라고 뻥친 사실, 사람들이 기린과 표범의 무늬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사실.)

이러다 공치는 거 아냐? 아프리카 케냐, 그것도 마사이마라까지 와서 표범 한 마리 구경 못 하고 돌아가는가. 지미 역시 초조해했다. 무료한 초원 드라이브가 얼마간 이어졌다. 다급한 무전. 그들끼리 통하는 스와힐리어에 긴장이 흘렀다. 사자란다. 드디어 초원의 제왕을 만나나 보다. 다급하게 핸들을 꺾어 무전 진원지로 갔다. 초원 한가운데 외로운 활엽관목. 쉬잇! 흥분한 목소리들이 잦아들었다. 사자 엉덩이가 설핏 구별됐다. 지미가 길을 벗어나 관목 반대편에 제한거리 25m 안쪽으로 바싹 차를 댔다. 두 마리다. 아직 갈기가 자라지 않아 암수를 구별하기 힘든 청소년. 찰칵찰칵. 사람들은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놈들은 엎드려 하품을 했다. 차들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는 차는 다섯 대가 최대 허용치. 그 이상이 몰릴 때는 10분 내에 보고 빠져야 하고 나머지는 100m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 이미 10분 이상 머문 우리 일행은 포만해져서 현장을 떠났다.

소과의 영양인 일런드 수컷들의 암컷 다툼.
나이로비에서 승용차로 6시간
목 빠지게 찾아 헤맨 사자
스윽 쳐다보는 눈길에 오금 저려

후렴구가 짧아져 “표범”이 됐다. 현지인 혼자서 찾기 힘들다면 함께 찾아야지.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큰 나무를 더듬었다. 다시 무료한 드라이브. 어! 저게 뭐지? 건너편 산허리에 아래쪽으로 움직이는 점 네 개가 보인다고 했다. 해상도가 낮은 나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망원경을 빌려 ‘물건’임을 확인한 독수리 눈의 지미는 트랙을 빙 돌아 점의 예상 경로로 차를 몰았다. 사자다. 막 갈기가 자란 품이 사람으로 치면 서른살쯤 된 수컷 한 마리와 그가 거느린 암컷 세 마리였다. 대박. 길을 가로지른 세 마리와 나머지 그렇지 못한 한 마리 사이에 지프가 끼어들었다. 앞길이 잘린 놈은 트랙을 따라 한참을 걸었고 지프가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고개를 숙이고 찻길을 어슬렁거리는 게 서울 여느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똥개와 다름없었다. 대박에서 똥개로 격하될 즈음 지프가 놈 곁을 추월했다. 스윽 쳐다보는 눈길에 오금이 저렸다. 창문을 다급하게 올렸다. 잠금장치는 눌렀던가?

숙소에서의 점심. 일행의 음식접시는 사자 사냥을 마친 사냥꾼의 그것처럼 수북했다. 11시께 찔끔거리던 비가 점심 내내 계속됐다. 다시 오후 사파리. 비 온 뒤 초원에는 바람이 불었다. 풀들이 일렁이고 동물들은 약속한 듯이 사라졌다. 오후에 첫 사파리에 나선 사람들은 이게 무슨 사파리냐며 지청구를 했다. 남의 불행은 우리의 행운. 룰루랄라. 사람들의 표범 타령은 쑥 들어갔다. 사자밖에 보지 못했다던 오전 사파리가 정말 운이 좋아 사자를 여섯 마리나 보았다로 바뀌었다.

사파리를 일컫는 현지 이름은 ‘게임 드라이브’. 그 의미를 비로소 알겠다. 동물을 보고 못 보고는 도박처럼 운에 달렸다는 것. 우리는 도박을 했고, 우리는 이겼다며 의기양양했다. 사파리가 단지 그뿐일까? 무엇을 보고 무엇을 깨닫는가는 본인 몫이다. 여느 여행과 다르지 않다.

마사이마라(케냐)=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사진제공 대한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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