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방. 창문 너머로 덧댄 첫아이의 방이 보인다.
|
[매거진 esc] 귀곡산장 같던 집에 93년 둥지 틀고 폐자재 등 활용해 아늑한 주택으로 변신시킨 부부 도예가 장상철·변희정 부부
나무꾼과 선녀의 집이 있다면 똑 이럴 것이다.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가곡리 256번지. 부부 도예가인 장상철(57), 변희정(43)씨의 집. 실제 생김으로나 인연으로나 두 사람을 일러 ‘나무꾼과 선녀’라고 부른다.
이들 부부가 이곳에 둥지를 튼 것은 1993년. 결혼과 동시에 공방 겸 신혼집 살림을 차렸다. 그들이 솥단지와 이불, 옷가지 등 조촐한 살림살이를 부렸을 때, 그 집은 비워둔 지 오래되어 슬레이트 지붕에 풀이 돋고 구들과 벽이 허물어져 내리고 있었다. 본래 한국전쟁 이전에 초가집으로 지어져 70년대 새마을운동과 함께 골슬레이트로 지붕을 갈았다. 원씨 종중가였다는데 같은 성을 가진 이장으로 주인이 바뀌었다가 그가 새집을 지어 이사하면서 비워둔 것이다.
|
행랑채에서 바라본 본채. 임종업 기자
|
비워둔 낡은 초가집
집안서 반대한 커플의 피난처 돼 짐을 푼 부부는 허물어진 벽을 일으키고, 깨어진 구들을 고쳐 불을 들였다. 퇴락한 집은 사람냄새를 맡으면서 되살아났다. 그로부터 20년 동안 집은 꾸물꾸물 움직였다. 우선 행랑채의 변신. 행랑채와 본채 사이의 담을 헐어 따로 대문을 내고, 대문간·아궁이·외양간을 합쳐 방으로 바꾸었다. 문간방과 그에 딸린 외양간은 공방으로 개조했다. 집 바깥쪽 경사지를 돋워 지붕을 달아내어 작품창고로 삼았다. 역ㄴ자 집이 T자 모양으로 변신한 것이다. 벽이라고 생긴 곳은 모두 짜맞춘 듯한 나무틀에 작품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안채의 변화는 견줄 쌍이 없다. 처마 끝까지 벽을 밀어내며 봉당과 댓돌과 툇마루가 내부로 들어왔다. 봉당은 마룻장을 들어낸 대청마루와 구들을 들어낸 건넌방과 합쳐 서까래가 보이는 거실이 됐다. 툇마루는 안방 옆을 지나 거실과 부엌을 잇는 통로가 되었다. 부엌은 바닥이 메워져 안방과 같은 높이의 현대식 부엌이 되고 부뚜막이 있던 곳은 통로가 되고 그 끝에 화장실이 들어섰다. 특이한 것은 세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그 과정이 구조에 고스란히 반영된 점. 95년 첫아이 도현이를 낳고 이듬해 작은방에 잇대어 지붕을 내고 방을 들였다. 맏이의 공부방이다. 역ㄱ자 본채가 행랑채와 똑같은 T자로 변신했다. 잇달아 아이 둘을 더 낳으면서 집은 좁아지고 아이들 몸집이 커가면서 자기 방을 원했다. 2003년에는 둘째 도건이를 위해 건넌방에 잇대어 또 하나의 방을 들여 안방에서 내보냈다. 얼마 전 세 아이의 통학 편의를 위해 문막으로 살림을 옮기기 전까지 새로 들인 방에 두 아들이 각각 기거하고, 안방은 부부와 막내 도휘가 함께 썼다.
|
행랑채 앞의 장상철씨 가족.
|
돌아앉는 것이어야 합니다.
상황변화에 따라 헐고 고치면서
살아 움직여야 하는 거죠” 곳곳에 놓인 가구들이 낯설면서도 정겹다. 거실탁자, 의자, 아들방 옷장, 책꽂이, 부엌 싱크대, 찬장 등등 모두 장씨가 손수 짠 것들이다. 부엌 냉장고와 가스레인지, 조명 외에 기성제품은 하나도 없다. 모두 집을 늘리면서 남은 자투리 나무와 남들이 인테리어를 고치면서 뜯어내 버린 자재로 만든 것이다. 곳곳에 못을 빼낸 자국과 잇댄 흔적이 보인다. 집의 지극함은 기이한 부부 인연에서 비롯한 듯하다. 아내 변씨가 대학 4학년 여름방학 때 경기도 덕소에 있는 선배의 도예 작업실을 찾아가는 길에 정류장을 지나쳐 종점에서 내리게 됐다. 다방에서 전화로 선배를 불러내어 함께 걷다가 도중에 아는 형네에서 물을 먹고 가자며 들른 곳이 바로 장씨의 작업실. 축사를 개조해 만든 그곳에서 마침 막걸리 파티를 하고 있었고, 선배와 변씨는 파티에 합류해 버렸다. 그 인연으로 변씨는 장씨한테서 도예를 배우게 되었다. 서른일곱 노총각과 스물셋 대학생 사이에 불꽃이 일었다. 두 집안은 난리가 났고, 두 사람은 궁벽한 시골로 몸을 감췄다.
|
안방. 지금은 벽을 터 휴게실로 꾸몄다.
|
기사공유하기